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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지옥⑩] ‘직장 내 괴롭힘’ 없는 사회 만들려면 결국 노동자가 나서야

민중의소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총 10회에 걸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분석·보도했다. 피해자·전문가를 인터뷰하고, 해외 현황, 한국의 현황 등을 살펴보았다. 3개월 간의 취재 동안 파악한 내용을 정리하며, 한국 사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갈무리 해보았다.

[직장지옥⑦]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일까?
[직장지옥⑧] ‘직장 내 괴롭힘’ 당했다면 기록을 시작하라
[직장지옥⑨] ‘직장 내 괴롭힘’ 근절의 첫 단추는 ‘법 마련’
[직장지옥-영상] ‘직장 내 괴롭힘’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없음
ⓒ일러스트: 박지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

우리는 피해자 인터뷰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적잖이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직장 상사로부터 폭언, 모욕, 업무배제, 대기발령, 징계, 퇴사 종용 등을 당했다. 동료들에게는 따돌림과 외면을 받았다.

이들은 상사가 교체된 이후부터,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온 후부터, 직장 상사와 의견 충돌을 일으킨 후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시발점은 달랐지만 괴롭힘의 끝은 모두 비슷했다. 이들을 해고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피해자들은 물리적·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몸과 마음은 병들고 커리어는 엉망이 되었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고통을 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다는 점이다. 회사 내 신고센터는 유명무실했고, 인사과도 이들을 외면했다. 아픈 마음을 위로받을 곳이 없었다.

견디다 못한 피해자들은 의료기관과 법률전문가를 찾았다. 모든 것은 소송으로 귀결됐다. 이들은 노동청을 거쳐 법원으로 갔고, 소송 과정에서 괴롭힘 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느라 또 다시 고통을 받아야 했다. 어떤 피해자는 소송에 이겨 복직됐지만 또다시 해고당했다.

이같이 지난한 과정을 견디며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우선 가해자들로부터 진실된 사과를 받길 바랐다. 그 이후엔 회사와 관계를 회복하고 일터로 돌아가 정상적으로 일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고통을 준 직장인데도 이들은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설명 현지시간 기준 2018년 8월 29일 오전 9시30분, 파리 동부 몽트뢰유에 위치한 CGT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은 실뱅 골드스테인(Sylvain Goldstein) 국제부 정책관과 ‘직장 건강’ 분야에서 활동 중인 토니 프라켈리(Tony FRAQUELLI), 산업보건전문가 세르주 주르누(Serge JOURNOUD)가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
설명 현지시간 기준 2018년 8월 29일 오전 9시30분, 파리 동부 몽트뢰유에 위치한 CGT 본사를 방문했다. 사진은 실뱅 골드스테인(Sylvain Goldstein) 국제부 정책관과 ‘직장 건강’ 분야에서 활동 중인 토니 프라켈리(Tony FRAQUELLI), 산업보건전문가 세르주 주르누(Serge JOURNOUD)가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는 모습.ⓒ민중의소리

16년 전부터 ‘직장 내 괴롭힘’에 대처해 온 프랑스의 조언

‘직장 내 괴롭힘’은 프랑스. 스웨덴, 일본 등 많은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민중의소리는 그중 앞서 이 문제를 인식하고 2002년부터 관련 법을 시행해 온 프랑스를 방문해 피해자,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만난 프랑스인 피해자 레베카는 2016년 소르본대 전산실 수습직원으로 취업했으나, 여성이란 이유로 동료들의 차별과 냉대를 받아야 했다. 이에 대해 레베카가 문제제기 하자, 학교 측은 그녀를 해고하려 했다. 결국 그녀는 프랑스 CGT(프랑스노동총동맹)의 도움을 받아서야 괴롭힘을 끝낼 수 있었다.

프랑스 노동 전문가들은 16년 간 ‘직장 내 괴롭힘’ 관련 법을 진전시켜 온 경험에 비추어 유익한 조언을 해주었다. 일단 법이 마련되고 사건의 입증책임을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지게 되자 사회적으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한다. 법으로 회사 인사부서, 직장 내 협의체(위생안전근로조건위원회,CHSCT) 등을 통해 문제 해결이 가능하게 하고, 이같은 조치가 어려울 때는 노조가 피해자를 대신해 소송에 참여할 권한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법이 노동자의 신체 건강을 위협하는 괴롭힘 수준에서 규제했지만, 개정을 거듭하며 ‘정신적 괴롭힘’도 막을 수 있게 돼 시대 변화에 대처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직장 내 협의체와 연계된 산업의(의사)가 노동자들의 건강을 자주 체크하고, 문제가 발생되면 조치할 수 있게 돕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지부장 손동신)가 구례자연드림파크 측 의 직장 내 괴롭힘 중단을 촉구하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2018.06.22
공공운수노조 광주전남지부(지부장 손동신)가 구례자연드림파크 측 의 직장 내 괴롭힘 중단을 촉구하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있다.2018.06.22ⓒ김주형 기자

괴롭힘 당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대응해라

한국 전문가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주로 사용자에 의해 구조조정, 배치전환, 인력감축, 조직통제를 위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벌어지는 양상은 정신적 괴롭힘에 집중되고 있다고 밝혔으며, 성별과 나이, 지위고하,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강조했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면, 그동안의 괴롭힘 양상을 기록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국가로부터 상담이나 조력을 받을 수 없다며, 하루 빨리 관련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0월 현재 관련법들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김근주 연구위원
한국노동연구원 김근주 연구위원ⓒ사진 제공= 김근주 박사

‘직장 내 괴롭힘’을 만드는 것은 사회 구조
법 마련에 그치지 말고 시스템을 바꿔야

민중의소리가 이번 기획취재동안 만난 많은 사람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특정 개인이나 한 사업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가 만들어 낸 문제라고 지적했다.

[직장 내 괴롭힘 실태와 제도적 규율 방안]을 집필한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업장, 더 나아가 사회 전반 구조의 문제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업무량을 통한 괴롭힘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직장 내 괴롭힘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장시간 노동 관행이 그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노동조합연맹 CGT의 토니 프라켈리(Tony FRAQUELLI) 역시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로만 봐서는 안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낳는 구조적인 문제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해자 한 사람이 처벌을 받고 교체가 된다고 하더라도,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김승현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은 대부분 조직의 필요에 의해 생긴다”며, 괴롭힘이 연봉 삭감·정리해고·조직통제 등 경영의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말은 모두 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노동자의 인권을 경시하는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기본적 노동인권을 보장받고, 사업주를 상대로 불편부당함을 따질 수 있으면 괴롭힘이 생기더라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김근주 연구위원은 “정부가 (직장 내 괴롭힘 재발 방지에 대한) 일반적 의무를 기업에 부여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절차를 마련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업의 역할”이라며, “기업 내 ‘갑을 관계’를 탈피하려는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KT 새노조와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노동과 인권 관련 시민단체들이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T 직장 내 괴롭힘으로 유발된 산업재해 인정과 KT 직장 내 괴롭힘 중단‧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KT 새노조와 인권단체연석회의 등 노동과 인권 관련 시민단체들이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T 직장 내 괴롭힘으로 유발된 산업재해 인정과 KT 직장 내 괴롭힘 중단‧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그러나 수많은 노동사건에서 봐 왔듯이, 사업주들이 ‘직장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에 자발적으로 나설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돈’이 가장 우선인 이들에게 ‘괴롭힘 없는 일터’를 만들어 달란 요구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결국 나서야 하는 것은 노동자 ‘자신’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럿이 모여 노조를 만든다면, 노조가 해결해야 할 주요과제로 ‘직장 내 괴롭힘’을 정해 행동에 나선다면 기회는 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사업주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처리‧예방 조치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운영하도록 규율할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지금 ‘직장 내 괴롭힘’에 직면했다. 그리고 문제 해결의 첫 단계로 입법을 선택했다. 없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나으니, 법은 꼭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이 모여 정부와 사업주를 상대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투쟁해야, ‘직장 내 괴롭힘’ 에 대한 사회적 인식, 시스템 개선을 통한 근본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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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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