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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양심적 병역거부’와 ‘신사참배’
지난 11월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1일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오승헌(34) 씨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지난 11월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법 위법 관련 선고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1일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오승헌(34) 씨가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나서며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지난 10월31일 개봉한 영화 ‘바울’이 다양성 영화 부문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개봉 5일 만에 4만 관객을 훌쩍 넘기면서 개신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만만치 않은 관심을 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바울’의 인기 배경엔 로마의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지키며 결국 기독교를 전 세계에 전파한 바울과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바울’의 엔딩크레딧도 ‘이 영화를 자신의 신앙(Faith)을 위해 박해받는 이들에게 바친다’며 신념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들을 칭송하고 있다.

이렇게 개인 또는 집단의 종교적 또는 정치적 신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다. 영화 ‘바울’에 등장하는 초기 기독교 신자들처럼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들도 많다. 많은 국가들은 이러한 개인의 양심과 신념의 자유를 헌법적 가치로 정해 보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헌법에 19조에 ‘모든 국민은 양심(신념)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런 헌법규정에도 불구하고 양심과 신념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정치범들의 사상을 ‘전향’시키겠다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은 고문을 가하는 등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사상전향제도’는 1933년 일제에 의해 시행된 제도로서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존재했다. 일본에선 이미 폐지된 지 오래지만, 우리나라에선 해방 이후 독재정권을 거치며 더욱 강화됐다. 특히 박정희 정권은 ‘사회안전법’을 만들어 전향을 거부한 재판도 없이 구금하고 무자비한 고문과 폭력으로 ‘전향서’를 받았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수백 명의 수감자들이 전향서에 도장을 찍었고 끝내 거부한 94명은 ‘비전향장기수’라는 이름을 얻은 채 감옥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들 가운데 18명은 자신의 가족이 있는 북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남한에 아직도 남아있는 등 양심과 신념의 자유는 보장되지 못했다.

참여연대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1월 5일 오전 서울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3년 교정시설 합숙 복무, 심사기구 국방부 설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또 다른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2018.11.05.
참여연대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1월 5일 오전 서울 국방부 앞에서 '정부의 양심적 병역거부 징벌적 대체복무제안 반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3년 교정시설 합숙 복무, 심사기구 국방부 설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또 다른 처벌'이라고 주장했다. 2018.11.05.ⓒ뉴시스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처벌해온 것도 바로 이런 과거와 무관치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지난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다가 병역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 씨의 상고심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은 의미가 크다. 재판부는 “모든 국민이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고 정하고 있는 헌법 19조는 인간 존엄성의 조건이자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라며 “국가가 개인에게 양심에 반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불이익에 대해 형사처벌 등 제재를 가해 개인의 양심 실현을 제한하는 건 기본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데 이어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무시되기 일쑤이던 양심과 신념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개신교계, 특히 보수 개신교계는 이를 주로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자신들이 ‘이단’으로 여기는 ‘여호와의 증인’들이라는 이유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개신교계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종교적 병역기피자에 대해서 대법원이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병역거부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사건은 법의 잣대가 소위 ‘마음대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심각한 판결”이라며 “병역거부는 병역기피의 일환일 뿐이며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표현보다 ‘특정 종교의 병역기피’라고 해야 한다. 집총 및 군사훈련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기총은 이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가의 안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마땅하며, 더욱이 대한민국의 남자는 내 가족과 우리의 이웃, 그리고 나라를 지킨다는 확고한 마음으로 국방의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 전쟁을 위해 군대가 존재하지만 오히려 강력한 군사력으로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면 집총과 군사훈련을 이유로 병역을 기피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신념일 뿐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기총을 비롯한 개신교계는 과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가의 안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마땅하다”며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을까? 개신교계는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를 금지하는 교리적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며 신앙적 양심과 민족적 양심 모두를 저버리는 결정을 한 과거가 있다. 1938년 9월9일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선 “아등은 신사는 종교가 아니요, 기독교의 교리에 위반하지 않는 본의를 이해하고, 신사참배가 애국적 국가 의식임을 자각하며, 이에 신사참배를 솔선려행하고 추히 국민정신 총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하에 총후 황국신민으로서 적성을 다하기를 기함”이라는 치욕적인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후 일제에 대한 장로교의 협력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해 1941년엔 일제의 전쟁을 돕기 위해 총회에서 비행기 헌납을 결의하고 이를 위해 전국에서 헌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심지어 ‘금속품 공출’을 결의하고 교회의 종을 떼서 바쳤다는 기록까지 등장할 정도로 장로교의 친일행위는 극에 달했다. 장로교뿐 아니라 성결교회, 감리교회 등 다른 개신교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일제와 손잡기 시작한 개신교는 해방 이후에도 독재정권에 부역하는 등 양심과 신념을 버리고 권력과 손을 잡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1943년 일본 나라(奈良)신궁 참배 후 한국 목회자들이 신궁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1943년 일본 나라(奈良)신궁 참배 후 한국 목회자들이 신궁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CBS-TV

개신교계가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일제의 전쟁에 협력하며 비행기까지 바치던 시기에 개신교가 이단이라고 낙인찍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선택은 달랐다. 일제가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청년들을 향한 강제징집에 거세게 저항했다. 개신교계가 친일 협력에 한창이던 1939년, 일제는 전쟁 수행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대 입대를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38명을 체포했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의 여호와 증인들의 교세는 크지 않았고, 이런 숫자는 거의 모든 남성 신자들이 구속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이들 가운데 5명은 옥사했고, 나머지 33명은 1945년 해방 뒤에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등대사(燈臺社) 사건’이라 부르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이 사건은 정부가 편찬한 독립운동사에도 항일운동으로 기록됐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독재정권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군대에 복무하지 않겠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지켜왔다. 이에 반해 일제 강점기 시절에 신념을 버리고, ‘신사참배’와 친일을 결의했던 치욕의 역사를 가진 보수 개신교계에게 있어 ‘양심’과 ‘신념’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종교적 양심과 신념을 위해 목숨을 던졌던 바울과 초기 기독교인들에서 보듯이 양심과 신념은, 특히 종교인에 있어 양심과 신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가진다. 그 양심과 신념이 나의 그것과 다를지라도 그것을 바꿀 것을 강요하거나, 그 양심과 신념을 이유로 처벌하고 탄압하는 야만은 이제 끝내야 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는 이번 판결에 대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게 존중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백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법원의 옳은 판결을 환영한다. 이는 더 이상 전쟁을 위한 무기를 들지 않겠다고 결심한 젊은이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며 “이 판결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양심적 신념을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하는 옳은 결정이다. 또한 한국사회의 평화정착과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 증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기총은 교회협 인권센터의 이 성명을 깊이 새겨듣길 바란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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