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명숙 칼럼] 이정희 등 명예훼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놓친 것

지난 10월 30일 대법원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와 심재환 변호사 부부가 변희재씨의 글과 그 글을 인용한 뉴데일리·조선닷컴·조선일보 언론사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원심 승소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2012년 3월 변씨나 위 언론사들은 ‘종북 주사파’, ‘경기동부연합의 브레인이자 이데올로그’ 등 표현을 사용했을 뿐 아니라, 이 전 대표에 대해 “남편 등이 대중선동 능력만 집중적으로 가르쳐서 아이돌 스타로 기획”,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건, 김정일이 미녀응원단 돌리는 것과 똑같은 발상”, “남편이 머리고, 부인이 입 역할을 하죠”라며 이 전 대표를 주체적 판단능력이 결여된 사람으로 폄훼하였다.

1심과 항소심은 변씨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담긴 글을 올리고 위 언론들이 그 글을 인용한 기사를 게재한 것은 명예훼손이라며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변 씨의 표현 등은 사실 적시가 아니라 의견표명으로 볼 수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단순 의견표명일 경우 명예훼손이 아니라 모욕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법체계에서 사실적시 여부는 명예훼손과 모욕죄를 가르는 근거다. 형법은 모욕죄(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 형법 제311조)와 명예훼손죄(사람의 사회생활에 있어서의 일반적인 인격에 대한 평가를 침해하는 행위, 형법 제307조)를 나누고 있다. 누군가에게 욕을 할 때 그냥 욕을 하면 모욕죄이고 그 사람과 관련된 어떤 사실(근거)을 대고 욕을 하면 명예훼손죄이다. 그 근거가 사실이냐 아니냐에 따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나뉘어 적용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다수 의견은 공직자 등에 대해 비판하거나 정치적 반대의견을 표명하면서 사실의 적시가 일부 포함된 경우에도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신중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종북’이나 ‘주사파’라는 표현은 ‘사실적시라기보다 수사학적 과장에 불과한 의견표명’이라고 보았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며 “표현의 자유를 위해 법적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중립적인 공간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주사파나 종북은 의견표명이므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될 영역에 속하며 불법행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극우단체의 '종북척결' 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변희재.
극우단체의 '종북척결' 대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변희재.ⓒ뉴시스

소수자혐오 제재에 대한 공백

이번 파기환송 판결은 두 가지 점이 문제라고 본다. 하나는 소수자혐오를 생산하는 보수언론 등으로 공론의 장이 점점 더 기울어지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명예훼손 소송이 제기되는 경향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 유엔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등은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시정할 것을 한국정부에 권고한 바가 있다. 필자도 공익을 위해 어떤 사실을 발표하거나 공인을 비판하는 일이 명예훼손죄라는 국가형벌권으로 규율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제인권기준은 줄곧 형사법 상의 명예훼손죄 폐지를 주장해왔다. 물론 아직 민사상의 명예훼손을 어떻게 다룰지는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형사소송이 아니라 민사소송이었다. 즉 국가형벌권이라는 공적인 제재를 가하는 형사사건이 아니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데 대한 개인적 책임을 묻는 민사사건이다.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한국 사회에서 명예훼손은 여러 복잡한 결이 있다. 과거에는 명예훼손 소송을 주로 일정한 지위와 부를 지닌 권력층이 했다면, 지금은 사회적 소수자들도 명예훼손 소송을 한다. 과거에는 단순하게 표현의 자유 옹호라는 입장에서만 사건을 볼 수 있었다면 지금은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 옹호라는 측면에서도 명예훼손을 다뤄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넘쳐나지만 이를 제재하는 법·제도가 전무하기 때문에 혐오표현에 대해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소송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은 일부 권력자들이나 주류 세력이기 때문이다. 이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질문은 더 구체적이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누가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누구의 표현의 자유(수단, 매체, 세력 등)가 박탈됐는가, 그리고 혐오표현도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있는가 등으로 구체적으로 질문하고 구체적으로 해법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겪었듯이,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 등이 행한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무자비한 혐오를 목도했으며, 얼마 전에는 태극기부대 등이 대한문에서 쌍용차노동자들을 모욕하는 발언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했다. 그리고 지금도 극우기독교 반동성애 그룹들이 가짜뉴스까지 동원하며 시도 때도 없이 성소수자들을 향한 입에 담지 못할 혐오발언을 대놓고 하고 있는 현실이다. 힘 가진 주류의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라고 인정하는 순간,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는 위축된다. 그래서 국제인권규약 등 국제인권기준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전쟁선동과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번 대법원 판결의 소수의견(김선수·노정희·민유숙·박정화·이동원)도 비슷한 취지로 의견을 냈다. “우리 사회에서 ‘종북’, ‘주사파’,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용어는 그러한 입장으로 규정된 사람들을 민주적 토론의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한 공격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온 측면도 있다”며,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변씨 발언이 불법행위라고 판단했다. 배제와 매도는 민주적 토론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며,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관용하는 민주주의의 전제에 맞지 않으며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하여 위와 같은 극단적 표현들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남북화해 분위기 속에서 북한을 따른다는 것, 즉 종북이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 같지 않게 느껴지지만, 얼마 전만 해도 종북은 반사회세력, 폭력세력의 이미지를 담고 있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2012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종북혐오가 보수언론을 장식하던 때다. 소수의견이 지적했듯이 “국가보안법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던 소위 보수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시기에 특정인이 ‘종북’, ‘주사파’로 낙인찍히게 될 경우 느끼는 두려움이나 공포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따라서 변씨의 행위를 판단하려면 “집권세력과 다수가 소수의 정치세력을 공격하기 위해 이 사건 표현행위들을 했다”는 맥락을 고려해야 했어야 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은 혐오세력이 발호하고 있지만 그들의 혐오표현에 대항할 현실적 수단이 없는 상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적어도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할 법·제도의 공백이라도 언급했어야 했다.

박사모의 박근혜 탄핵반대 집회에 참석한 박사모 회원이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박사모의 박근혜 탄핵반대 집회에 참석한 박사모 회원이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피상적인 표현의 자유를 넘어서야

이번 판결과 최근 가짜뉴스에 대한 정부 대책을 보면, 국가기관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다층적 이해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듯 보인다. ‘모 아니면 도’식으로 규제 여부로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혹시 보호할 법익이나 누구의 인권을 옹호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고민 없이 피상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깃발만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무엇을 보호할지, 누구를 보호할지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다층적인 제도와 법이 없는 상태에서 피상적인 ‘표현의 자유’나 ‘가짜뉴스 제재’만으로는 어느 것도 달성하기 어렵다.

게다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는 법·제도는 전무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없고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제도도 없다. 그저 공론은 ‘표현할 권리’가 많은 세력(힘)이 장악하기 쉽게 됐다. 그 결과 소수의견이나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드러나지 않는다. 국회라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마련해야 하는데, 국회는 여론이랍시고 표현할 권리가 많이 보장된 주류의 눈치만 보고 있지 않은가. 면전에서 소수자를 혐오해도 당사자는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은 사회적 소수자들의 힘을 뺀다. 믿을 곳도 의지할 수단도 없다. 이번 판결이 혐오의 자유를 인정한 것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국회와 정부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