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리뷰]당신도 떠나고 싶지 않나요? 영화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스틸컷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을 만나 내가 지나온 시간과 다른 낯선 시간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간을 열 수 있다. 하지만, 낯선 그 길이 열어줄 새로운 시간이 어떤 모습일지 아무도 모른다. 장률 감독의 2년만의 신작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속 주인공들도 그러했다. 윤영(박해일)과 송현(문소리)이 어느 날 갑자기 군산으로 왔다. 하지만 두 남녀가 어떤 사이인지, 왜 군산으로 왔는지 관객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러저런 설명은 없이 영화는 두 사람이 막 군산에 도착한 시점부터 시작하고 있다.

“우리 여기서 며칠 있어 볼까?”라고 제안하는 송현에게 “그럴까요? 누나”라고 윤영이 대답하며 두 사람은 군산에 머물게 된다. 갑자기 떠나온 군산에서 두 사람의 대화와 여러 분위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을 조금씩 던져준다. 그리고 관객들은 마치 퍼즐을 맞추듯 이야기를 엮어가게 된다. 전직 시인 윤영은 한때 좋아했던 선배의 아내 송현이 돌싱이 되어 기뻤고, 함께 술을 마시다 술김에 군산으로 내려와 일본풍 민박집에 묵게 된 것이다. 송현이 과묵한 민박집 사장 남자(정진영)에게 관심을 보이자, 윤영은 자신을 맴도는 민박집 딸(박소담)이 궁금해진다.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스틸컷

군산에서의 둘의 마음과 시간은 서울과 달리 자꾸 어긋나기만 하면서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 흘러간다. 영화 구성도 아예 아이러니하게 얽혀있다. 영화는 전체 이야기의 중간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군산에 도착한 것부터 시작한다. 회상 등의 방법을 통해 과거를 전달하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이 영화는 아예 중간에서 결말로 이어진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영화의 타이틀도 아예 중간에 배치돼 있다. 영화가 끝난 듯 시점에 그 두 사람이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왜 이곳에 오게 됐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공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말에 이르게 됐는지 순서대로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이곳에 와 있는지 모르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추측할 조금의 단서를 던져주며 관객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다가 결말을 보여준다. 그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영화는 아무런 의미 없는 대사로 여겨진 것과 상황이 이런 이유가 있었음을 밝혀준다. 그렇게 맞추지 못했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지면서 비로소 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본 뒤에 마치 그들의 지난 일기장을 뒤지듯 한 묘한 매력이 영화의 시간 배치를 통해 전해진다.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
영화 ‘군산:거위를 노래하다’ⓒ스틸컷

아이러니하게 얽힌 이야기는 한중일의 역사로도 이어진다. 한중일의 역사적인 인식이라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일상으로 풀어낸다. 윤영은 지금은 싱글이 된 선배의 아내, 송현을 우연히 연변동포의 인권 향상을 위한 시위 현장에서 만난다. 오랜만의 술자리에서 송현은 윤영에게 1930년대에 만주에 가셨던 할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조선족이었을 거라며, “이게 다 우연이야, 우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송현은 자신이 조선족으로 오해받자 불쾌해한다. 윤영의 아버지는 중국을 싫어하면서도 자식은 화교 학교에 보내 중국어를 익히게 한다. 윤영은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연변 출신 가정부 순이의 이름도 몰랐지만, 그녀가 윤동주 시인의 증조부의 사촌이라는 걸 알게 되자 호들갑을 떨며 그녀를 달리 본다. 1930년대의 일본풍 가옥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이국적인 거리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윤동주 시인이 운명한 후쿠오카에서 온 재일교포 민박집 사장을 만난다. 먼듯하면서도 가까운 한중일의 관계는 그렇게 얽혀있다.

이 영화는 마치 농담을 던진 듯 조선족 동포들을 향한 이질적 시선과 차별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향해 연변 출신인 윤동주가 연변에서 쭉 살았다면 윤동주도 조선족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게 다 우연”아라는 송현의 말처럼 국적도 정체성도 관계도 모두 우연은 아닐까? 영화는 이렇게 삶과 사회 시간 등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잔잔하면서도 의미 있는 군산으로의 여행을 제안하고 있다. 당신도 떠나고 싶지 않은가? 영화는 8일 개봉한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