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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전기·물 끊긴 노량진수산시장, 그 사이 켜진 작은 촛불 하나
7일 오전, 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회를 썰고 있는 상인의 모습.
7일 오전, 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회를 썰고 있는 상인의 모습.ⓒ민중의소리

구(舊) 노량진수산시장에 전기와 물이 끊긴 지 4일째, 어두컴컴한 시장 안에는 적막감이 흘렀다. 물건을 팔던 상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줄어들었고, 손님들의 발걸음으로 활기 넘치던 시장은 멈춰 버렸다. 비릿한 생선 냄새와 축축하게 젖은 바닥은 그대로였지만, 상인들은 넋놓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다른 상인들은 생선이 상하지 않도록 연신 얼음을 채워 넣으며, 들어오는 몇몇 손님들의 발길을 잡기 위해 가게 앞을 서성거렸다.

7일 오전, 민중의소리는 48년의 역사를 간직한 구 노량진수산시장을 찾았다. 이날 만난 한 상인은 불이 들어오지 않는 구석에서 촛불 하나에 의지해 회를 썰고 있었다. 30년 간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장사해 온 박 모(65,여)씨는 "손 다치는 건 괜찮다"며 "깜깜하니까 잘 안 보여서, 뭐가 묻었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가 헌 집이라고 해서 파는 물건까지 더럽지는 않다"며 "가족들이 먹는 것이라 생각해서, 소독도 하루에 두 번씩 하고 깨끗하게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단전·단수 4일째인 7일 오전, 구 노량진시장의 모습
단전·단수 4일째인 7일 오전, 구 노량진시장의 모습ⓒ민중의소리

세간의 "상인들은 '현금 부자' 아니냐"는 시선에, 그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 중에서는 잘 사는 분들도 일부 있겠지만, 나는 물건을 떼와서 팔고 나면 다시 갚아야 하는 형편"이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박 씨는 "여기 대부분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이다. 나도 도저히 장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물건을 못 가져오는 상황"이라며, "어떻게 장사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신(新) 시장에 대해 박 씨는 "우리가 장사하기에 자리가 좁고, 임대료가 비싸다"며 "여기서 30년이 넘게 장사를 해왔다. 상인들을 배려하지 않는 그런 곳에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나. 그래서 3년을 싸워 왔다"고 말했다. 신 시장은 구 시장에 비해 가게마다 면적이 좁은 편이었다.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 탓에 결로 현상이 일어나 천장 일부분엔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옮겨가지 않는 상인들이 '욕심만 부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박 씨는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 권리를 지키는 거다. 반대로 보면 수협이 임대사업으로 생각하고 잇속을 챙기고 있는 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말 상인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1%라도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면서도, "수협 측 입장도 듣고, 우리 입장도 들어라. 그리고 보고 들은 대로 공정하게 써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수족관은 비어 있었고, 파닥파닥 생기 넘치던 생선들은 가만히 누워있었다. 상인들은 손님들이 살펴 볼 수 있도록 빛이 들어오는 곳으로 생선을 옮겨놓기도 했다. 깜깜한 시장에 켜놓은 촛불만이 곳곳에서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단전·단수 4일째인 7일 오전, 구 노량진수산시장의 모습
단전·단수 4일째인 7일 오전, 구 노량진수산시장의 모습ⓒ민중의소리
7일 단전·단수 조치로 발전기를 돌리고 있는 모습
7일 단전·단수 조치로 발전기를 돌리고 있는 모습ⓒ민중의소리

25년간 시장에서 장사해 온 정 모씨(65, 남)는 휴대전화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월셋방에 살아도 단수랑 단전은 안 한다"며 "최소한 장사는 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상인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정 씨는 "노량진수산시장은 상인들과 여기를 찾아와 주시는 국민들이 48년 동안 만들어 놓은 곳"이라며 "그런데 어느 날부터 수협 직원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우리가 수협 종업원이냐"고 토로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시설 노후화 등으로 지난 2004년부터 현대화가 추진됐다. 신(新) 시장은 지난 2016년 3월 경 문을 열고 생선 경매 등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상인 중 일부는 비싼 임대료와 좁은 면적 등을 이유로 가게 이전을 거부해 왔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명도집행이 시작되며 갈등이 본격화 됐다. 지난달 23일까지 총 4차례 명도집행이 진행됐다. 계속된 명도집행 시도에도 상인들이 구 시장에서 나가지 않자, 수협은 5일 오전 9시부터 노량진 수산시장에 단전·단수 조치를 시행했다.

'드르륵 드르륵' 시장 안은 발전기 소리로 가득했다. 단전이 되자, 시장 상인들은 기름을 사 발전기를 돌리고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발전기 하루 돌리는데 20~30만원이 들어간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수족관 물고기들의 폐사를 막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산소통도 들여놓았다.

'신 시장에서 좋은 자리 얻기 위해서 싸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한 상인은 기가 차다는 듯 헛 웃음을 지었다. 그는 "여기라고 다 장사가 잘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골목으로 가면 장사 안 되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7일 오전, 구 노량진수산시장의 모습
7일 오전, 구 노량진수산시장의 모습ⓒ민중의소리

구 시장 상인들과 수협 측의 갈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신 시장 건물 쪽에서는 구 시장에 남아있는 상인들에 대한 경고와 이전 요구 방송이 들려왔다. 맞은 편 구 시장에 세워진 차량 스피커에서는 투쟁가가 울려퍼졌다.

시장 입구에는 "본 건물은 서울시 도매시장 지정 해제에 따라 상행위가 금지된 사유지로서 식품위생, 시설물 안전이 보장되지 않습니다"라는 수협 측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밑에는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강제집행을 즉각 중단하라"는 시장 상인들의 요구를 담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오전 11시 30분쯤 붉은 조끼를 입은 상인들이 삼삼오오 신 시장 맞은 편으로 모였다. '생존권 쟁취'라는 글자가 적힌 붉은 조끼를 입은 상인들이 스티로폼 상자와 의자를 들고 나와 자리에 앉아 "같이 살자"고 외쳤다.

45년 동안 장사를 해온 임 모(75, 여)씨는 집회에 참석해 "한 평생 이곳에서 장사를 해 왔다"며 "여기서 계속 장사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일손을 놓고 나온 상인 중 일부는 집회를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7일 오전, 구 노량진수산시장 앞에서 상인들이 집회하는 모습
7일 오전, 구 노량진수산시장 앞에서 상인들이 집회하는 모습ⓒ민중의소리
수협 측과 충돌에 폭행당한 윤헌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공동위원장의 모습.
수협 측과 충돌에 폭행당한 윤헌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공동위원장의 모습.ⓒ민중의소리

6일에는 수협의 단전과 단수 조치에 항의하며 구 시장 상인들이 신 시장으로 들어가는 경매 차량의 통행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구 시장 상인들과 수협 측과의 충돌이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상인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윤헌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공동위원장은 "단수와 단전 조치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상인들이 수협에 들어오는 경매차를 항의 표시 차원에서 막고 서 있었다"며 "그때 20명 가까운 수협직원들이 저를 못 들어가게 제지하다가 넘어뜨리고 집단 폭행했다. 경찰들이 있었지만, (내가)맞고 나서야 말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수협 측과 지난 2009년 7월 8일 체결한 양해각서 내용 중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수협과 시장유통종사자간 상호협력하여 문제해결에 공동노력하기로 한다"
수협 측과 지난 2009년 7월 8일 체결한 양해각서 내용 중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수협과 시장유통종사자간 상호협력하여 문제해결에 공동노력하기로 한다"ⓒ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비상대책총연합회 제공

윤 공동위원장은 "수협 측은 (구 시장) 상인들과 전혀 대화하지 않는다"며 "일단은 전기를 넣고, 현대화 사업을 멈추면, 원점에서 한 번 더 상의해보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대화 사업의 양해각서 부분에 상인들이 동의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문제점이 있으면 공동 노력하겠다는 절차도 있다. 그런데 그것을 무시하고 (절차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수협 측은 구 시장 상인들에게 오는 9일까지 모두 신 시장으로 이전하라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날린 상태다.

6일 수협은 보도자료를 통해 "9일 오후 5시까지 입주 희망자에 대해서는 신청서를 접수해 이전을 지원할 것"이라며, "신청 종료 후 현대화 시장 잔여 자리는 어업인과 일반인에 배정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협 측은 이달 9일부터 15일에 걸쳐 구 시장 자리를 철거하겠다는 방침이다.

7일 노량진수산시장 앞에 대기하고 있는 용역들의 모습.
7일 노량진수산시장 앞에 대기하고 있는 용역들의 모습.ⓒ민중의소리
노량진수산시장비상대책총연합과 민중당이 7일 국회 정론관에서 노량진수산시장 단전·단수 중단을 촉구하며 상인들을 상대로한 수협의 집단폭행을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량진수산시장비상대책총연합과 민중당이 7일 국회 정론관에서 노량진수산시장 단전·단수 중단을 촉구하며 상인들을 상대로한 수협의 집단폭행을 증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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