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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죽음, 그 영원한 단절과 고통을 견디는 음악
싱어송라이터 카코포니(Cacophony)
싱어송라이터 카코포니(Cacophony)ⓒ플럭서스뮤직

리뷰를 쓸 수밖에 없는 음악이 있다. 무슨 말이든 하게 되는 음악,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지는 음악이 있다. 리뷰라는 게 별 게 아니다. 들은 대로 쓰는 일이고, 들으면서 떠오른 말들을 옮겨 적는 일이다. 음악도 사람의 일이고, 사람의 말이라 들으면 자극받는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장이 퍼져나가듯 음악을 들으면 마음은 물결친다. 마음 물결은 그때 그때 다르다. 물기둥이 치솟고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파도가 있고, 살랑거리다 잔잔해지는 물결이 있다. 분명한 것은 음악 앞에서 마음은 항상 속수무책이라는 사실. 꽤 의연하고 평화로운 척 하지만 음악이 스며든 마음은 순식간에 흔들리고 요동친다. 아무런 정보 없이 카코포니(Cacophony)의 음반 [화(和)]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만 알려주는 카코포니의 노래를 듣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부대꼈다. 음악 때문이다. 아니, 나 때문이다. 내 마음이 곧잘 부대껴서 음악이 흐를 때 더 흔들렸다. 음악 탓이 아니다. 내 안에서 누군가 소리 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울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발버둥치고,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아무 음악 앞에서나 머리를 풀어헤치지는 않는다. 아무 음악 앞에서나 맨발로 뛰어나가 거리를 헤메이지 않는다. 아무 음악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심장을 꺼내 보여줄 듯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 아무 음악을 듣고서도 이야기를 털어놓다 잠들고 잠들었다 깨어나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지는 않는다. 급소를 찔러야 숨이 멎듯, 슬픔을 찔러야 눈물을 흘린다. 깊이 찔러야 하고 정확하게 찔러야 한다.

정확하게 찌르고 깊이 찌르는 음반

카코포니의 음악은 정확하게 찌르고 깊이 찌른다. 그리고 계속 찌른다. 카코포니의 목소리, 발성과 호흡, 음색부터 날이 서 있다. 그 날은 선명하거나 단정하지 않다. 자신을 뒤흔들어버린 사건과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목소리는 편안하지 않고 안정되어 있지도 않다. 좋은 예술 작품이 반드시 감정을 억누르거나 승화해야 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감정을 곧이곧대로 토해내는 방식이 가장 정직하거나 진실한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순간,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카코포니는 애절하고 간절하고 다급한 목소리의 톤으로 그 자신이 보여주려 하는 정서와 서사를 거의 다 보여준다. 이 목소리가 평화와 여유와 안정을 담을 리는 만무하다. 이 목소리는 이미 상실과 상실로 인한 아픔과 그리움, 불가능 쪽에 서 있다. 아니 그 곳에서 비틀거리며 겨우 걸어왔다.

음반의 크레딧에 쓰인 “Memento Mori’라는 말처럼 카코포니의 목소리는 죽음의 기억으로부터 왔다. 이 음반은 어머니의 죽음을 모티브로 한 음반으로, 수록곡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카코포니에게 스쳐간 숱한 물결의 기록이다. 카코포니는 ”지금 그대 평온히 주무시나 있나“를 묻기도 하고, ”지금 나는 그대를 품고 있어요“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의 고통을 담담하게 노래하며 ”내 안에서 살아계세요“라고 이별로도 끊어지지 않은 영원한 교감을 노래하는 노래만이 전부가 아니다. ”피 진통“이나 ”숨 고통“ 같은 노랫말은 병원에서 급박하게 오가는 신호처럼 들리는 노이지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함께 떠나는 이와 지켜보는 이의 고통을 모두 터트린다. 간절하게 바랐으나 막을 수 없었던 이별의 고통과 원망의 밀도는 ‘kk’나 ‘결국’ 같은 여러 곡에서 좀처럼 숨겨지지 않는다. 아니, 카코포니는 그 고통을 실제처럼 재현하면서 듣는 이들도 기진맥진해질만큼 생생하게 되살린다.

눈물 흘리는 이 곁에서 함께 우는 카코포니의 노래

템포가 다르지만 대체로 건반과 일렉트로닉한 사운드 중심의 음악은 노래 속 적막과 혼돈을 표현하기에 효과적이다. 드라마틱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노랫말과 멜로디로 만들고, 노래하는 목소리로 실체화하는 감정을 부풀려 누군가 겪고 감당했을 감정에 근접한다. 정박하지 못한 감정, 혼돈 속에서 부유하는 감정이 겹치고 떠다니고 엇갈리는 소리들로 재현된다. 공간감 넘치고 강렬한 노래 속 모든 소리들은 노래 속 주체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혼란스러우며 헤어 나올 수 없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 소리의 밀도는 듣는 이들이 경험했던 유사한 순간들로 데려가거나, 경험이 없는 이들도 금세 공감할만큼 간절하다. 간절하기 때문에 더 슬프고 더 안타깝고 더 지울 수 없다. 고통이 배인 처연한 목소리와 건반, 현, 프로그래밍, 기타를 조합해 만들어낸 음악은 강렬하게 날이 서고 적막하거나 영롱한 사운드로 화가 난 카코포니의 내면을 드러낸다.

어떤 이별은 떠나지 않으려는 발버둥과 보내지 않으려는 몸부림 속에서 강제로 벌어진다. 그 순간 원망과 안타까움과 미안함과 죄책감이 쉴 새 없이 교차한다. 아무도 원하지 않음에도 벌어지는 이별은 인간의 연약함과 삶의 무상함을 소스라치게 일깨운다. 특히 남은 이들은 그 빈자리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잠에 들 수도, 깨어 있을 수도 없”을만큼 그립고 원망스럽고 좀처럼 헤어나올 수 없는 감정의 수렁을 다독이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또한 인간의 삶이다. 피하거나 건너 뛰고 싶다해도 불가능하다. 우연히 태어나 반드시 죽을 때까지 대부분의 인간은 숱한 이별을 견디고 감당해야 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죽음을 기억하며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인간의 몫이다.

그때마다 어떤 음악은 그 사실을 속이지 않음으로 삶을 이해하고 견디는 힘을 만들어낼 수 있게 도와준다. 카코포니는 이별의 시간을 견디고 통과하는 이의 난자당한 내면을 드러냄으로써 동병상련의 극진한 위로에 도달한다. 사랑했던 사람을 아픔 없이 보낼 수 없고, 찢겨져 피 흘린 후에야 비로소 새 살이 돋아난다. 그 사실도 모른 채 눈물 흘리는 이 곁에서 어떤 가르침도 주려하지 않고 함께 우는 일보다 큰 위로는 없다. 오늘 카코포니의 노래가 함께 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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