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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일했는데...” 갑자기 ‘일자리 도둑’된 서울교통공사 노동자의 울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2주기 서울 광진구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김 군을 추모하는 메세지가 담긴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 군은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달리는 열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2주기 서울 광진구 구의역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김 군을 추모하는 메세지가 담긴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지난 2016년 5월 28일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 군은 홀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달리는 열차와 스크린도어에 끼어 사망했다.ⓒ김슬찬 인턴기자

“구의역 사고 직후, 김 군을 잃고 마음의 짐을 떨치지 못한 우리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은 큰 위안이었다. 시민들이 김 군과 같은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과 위험을 하청업체에 떠넘기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 와 일부는 ‘너희의 잘못이야’라고 말한다. 우리를 김 군을 이용해 채용잔치를 벌인 파렴치한, 일자리 도둑으로 내몰고 있다. 갑자기 너무나 혹독하고, 무섭다.”
(구의역 사고로 숨진 김 군과 같은 스크린도어 정비용역업체에서 일한 박 모(29) 씨)

서울시의회에서 서울교통공사 행정사무 감사가 열리는 8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이 [‘고용세습’, ‘무기충’이라구요? 우리얘기도 들어주세요’] 기자회견을 열었다. 쌀쌀한 바람에 찬 빗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조합원들은 우산 대신 마이크를 잡았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와 정규직 전환 직원들이 8일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정규직 전환자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중단해달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와 정규직 전환 직원들이 8일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정규직 전환자에 대한 비난과 공격을 중단해달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서울교통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식당 조리원, 전동차 정비원, 스크린도어 정비원은 준비해 온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이들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직영화·정규직화됐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이 쏟아낸 '채용비리' 의혹 이후 수많은 악플 세례를 받으며 ‘식당 찬모’, ‘무기충’(무기계약직을 벌레에 비유한 혐오 표현) 등 갖은 비하에 시달리고 있다.

조합원들은 발언 내내 무거운 표정이었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들은 ‘채용비리’ 의혹에 답답함을 호소했고, 근거 없는 비난으로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21년 차 식당 조리원 최 모(55) 씨는 1997년 서울교통공사 차량기지 구내식당에 입사했다. 최 씨는 최근 쏟아지는 각종 비난 기사와 댓글을 보면, 억울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는 “아무런 욕심도 없이, 새벽같이 출근해 열심히 설거지하고 밥 지으며 살았다. 비정규직으로 20여 년 일했고, 정규직이 된 뒤 나아진 것도 없다”며 “다리가 부서질 정도로, 허리와 손이 굳어져 펴지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한 저희에게 무슨 죄가 있나. 하루아침에 ‘청년 일자리를 약탈’하는 흉악범이 돼 사회적 지탄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21년 근무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지금, 연봉을 다 합쳐봐야 기껏 3,200만 원 남짓이다. 신문에선 (내가) 7,000만 원이 넘는 고액 연봉자로 둔갑해 있었는데 기가 찰 노릇”이라며 “‘식당 아줌마’라는 오명을 써가며 묵묵히 일해 왔다. 서울교통공사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을 비리 당사자로 낙인찍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서울 지하철 자료사진
서울 지하철 자료사진ⓒ뉴시스

스크린도어 정비원 박 씨는 “무기계약직이 되고 나서도 우리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에 머물렀고, 하청업체 시절과 다를 바 없이 일했다”며 “무관심과 차별 속에 안전 장구조차 입사 3개월이 넘도록 받지 못했고, 몇 개 가지고 직원들끼리 돌려쓰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자유한국당은 김 군이 사망한 지 1년이 되던 지난해 5월, ‘노동시장에 대한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질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며 “하청업체 직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진행된 정규직화를 ‘일자리 도둑’으로 내몰며 ‘을과 을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인지 되묻고 싶다. 김 군의 동료인 우리가 왜 직영화, 정규직화됐는지 어떤 절차를 통해 정당하게 입사했는지 들여다봐 달라”고 강조했다.

지하철 6호선, 7호선의 전동차 정비를 담당하는 12년 차 정비원 한 모(36) 씨는 “좋아하는 일을 같은 자리에서 성실히 해왔다. 전동차를 다루는 이 일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 씨는 “평소 왕래가 없는 5촌 친척이 5~8호선 기술 분야에서 일하고 있었다. 채용비리 사건이 터지고 어머니가 놀라 ‘너는 괜찮냐고’ 물으시더라”며 “그때 나도 ‘고용세습’ 당사자가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과 정치인은 연일 무서운 이야기를 했고, 5촌이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아무 잘못 없이 마음을 졸이게 됐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감대책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감대책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비정규직 양산한 적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막으려 한다”

서울교통공사노조는 “우리는 채용비리를 감쌀 의도도, 이유도 없다”며 “여러 번 밝힌 바와 같이 어떤 방식으로든 최대한 빨리, 명명백백히 진상을 규명해 ‘조금이라도 비리가 있다면 엄벌을’, ‘근거 없는 명예훼손에는 철저한 명예회복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의혹이 제기되는 과정에서 공사의 최고위직을 포함한 간부들의 분명한 실수, 납득하기 어려운 처신이 여럿 밝혀졌다. 보도된 인사처장, 기술계획처장, 수서역장, 동작 승무소장의 사례가 그렇다”며 “이들은 모두 비조합원이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 보수언론 등은 엉뚱하게 노조 혐오를 조장한다.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을 좌초시키기 위해 애꿎은 노조와 당사자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공동 주최한 정의당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은 자유한국당 등 비정규직을 양산한 집단, 비정규직을 쉽게 사용한 적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막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며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한국 사회가 만든 (비정규직의) 불평등, 노동소외, 노동자 탄압의 해결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은 지금까지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 ‘구의역 사망 재해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 김종민 위원은 “구의역에서 김 군의 죽음 이후 비정규직 청년들이 직영화, 정규직화됐다. 매년 있었던 스크린도어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이젠 일어나지 않는다”며 “위험의 외주화로 노동자들이 죽어갔음이 밝혀진 것이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외주의 직영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막을 순 없다”고 강조했다.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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