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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아직은 남들을 빛내주는 역할이지만 ‘16년차 단역배우’ 민지혁
없음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누구나 그래요. 뜨고 안 뜨고가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나 자신을 볼 때 행복해요. 그때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배우라고 하면 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들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는 단역배우들이 더 많다. 사람들이 알아주진 않지만, 주연들이 더 빛날수 있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배우 민지혁
배우 민지혁ⓒ민지혁 제공

단역배우들은 아직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지만, 이들도 엄연히 배우라는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민지혁 배우(본명 김대훈)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는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통해 데뷔한 16년차 배우다.

우직하게 자기 길을 가고 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아 아직 빛을 보지 못했다.

댄스가수로 먼저 데뷔할뻔 했던 사연

원래 지혁 씨는 대학 때 댄스 동아리 회장을 할 정도로 춤을 잘 춰서 댄스가수가 되려고 했었다. 허나 당시 법적으로 그는 미성년자였고 계약서를 쓰려면 부모님 동의서가 필요했다. 그러나 집안의 복잡한 사정 때문에 결국 첫번째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을 다니며 군대를 갔다 온 후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 하지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친구를 통해 사장님 한 분을 소개받았어요. 그분이 ‘너는 아직 아마추어니 프로에게 춤을 배워와라’고 하셔서 부산까지 내려가서 춤을 배워왔어요. 그런데 그사이 사장님은 잠적하셨어요. 사실 그때 반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집까지 나왔던 상황이라 딱히 갈 곳이 없더군요. 일단 제가 머물 곳과 돈이 필요해서 숙식 제공해주는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했습니다”

“그렇게 번 돈을 들고 방송국 근처에 있는 스튜디오로 가서 프로필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그 당시 70만원을 내라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기를 당했던 거죠. 아무 지식이 없었으니까요”

전도연-조인성 주연의 드라마 ‘별을쏘다’에 출연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연기를 해보는 것이기도 했고 첫 현장경험이기도 해서 그에게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이어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출연할 기회도 얻었다. 이 작품은 그의 첫 필모그래피에 올라간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에서 장동건, 원빈과 한 소대에 있던 군인 역할을 맡았다. 자신의 연기에 집중하는 한편, 누구든 현장에서 마주치면 공손하게 인사했고 스태프들이 하는 궂은 일들도 도와주며 친해졌다. 이 덕분인지 주연 배우들부터 스태프들까지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전투신 촬영이 끝나고 회식을 한번 했었어요. 늘 저를 꺽다리라고 부르시던 강제규 감독님이 ‘꺽다리 이리 와봐’ 하시더니 저를 다른 스텝분들에게 ‘다들 인사 잘하는 꺽다리 알지’ 하면서 ‘이름이 김대훈이란다. 알아줘라’ 하면서 인사도 시켜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감독님 인정을 받은 탓에 영화 촬영이 끝날 때까지 주연배우보다 더 많은 회차 촬영을 한 배우로 기억됐어요”

방송영화산업계에서 보조출연이라고 하면 상처를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지혁 씨도 그런 경험을 하기도 했다.

“보조출연을 했을 당시 연출팀 중 아는 형님이 동기 모임 있는데 소개해주겠다 해서 갔어요. 저는 ‘연기 시작하는 동생인데 잘 좀 봐줘’ 라고 소개했으면 했는데 ‘보조출연하는 애’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조출연자분들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지만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배우가 아닌 열심히 하는 보조출연자라는 이미지로 남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그 이후로 보조출연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혁 씨는 영화가 끝나고 알게 된 연예계 관계자가 차린 신생 기획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신인배우들만 있는 기획사라 섭외가 들어오긴 힘들었다.촬영 때 알게된 지인들로부터 오디션 소식 등을 듣긴 했으나 소속사의 허락없이는 할 수 없었다. 일을 못 하니 자연스럽게 수입도 없어지고 생활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생활비를 벌려고 다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클럽 댄스가 유행이어서 춤 강사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저한테 배우시던 분 중에 네일아트를 하시는 분이 있었고, 모델 일 해 볼 생각을 물으셨고 유명한 원장님과 미팅을 잡아주셔서 원장님을 뵀는데 경험이 없으면 따로 비용을 내고 배워야 한다고 하셨어요. 제가 돈이 없어서 포기하려고 했는데 소개해주신 분이 수업료를 다 내주시며 도와주신 덕분에 모델로 무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패션쇼에 꾸준히 서면서 돈을 벌었고 금전적인 문제가 조금은 해결되니 내가 정말 하고 싶은건 배우라고 생각해서 다시 열정을 가지고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연극 공연을 함께한 배우들과 찍은 민지혁씨
연극 공연을 함께한 배우들과 찍은 민지혁씨ⓒ민지혁 제공

영화 ‘S 다이어리’(김선아 주연) 그리고 몇몇 작품과 가수들 뮤직비디오에 출연하기도 하고 광고도 찍으며 조금씩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년 가지 못하고 촬영중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2007년에 광고를 한번 찍었는데 공중에서 땅으로 착지하면서 발을 내딛는 장면에서 잘못해서 십자인대가 끊어졌어요. 이후에 잡힌 광고들이 다 취소되어 아쉽기도 했지만, 더 큰 문제는 재활치료를 몇달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당시 생활고를 조금이라도 해결 하기 위해 걸으면서 할 수 있는 패션쇼 무대에 다시 섰고 그 후에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영화를 찍었던 거죠. 충분한 재활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영화 출연기회를 놓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2008년 4월부터 그는 영화 ‘쌍화점’(조인성-주진모 주연)에 왕을 호위하는 건룡위 소속 무사 역을 맡아 촬영을 시작했다. 사극이어서 한복 안에 무릎 보호대를 차도 티가 나지 않아 승마나 액션 장면을 찍는 데도 큰 무리는 없었다. 그러나 이후 찍은 영화 ‘런닝맨’은 정장 속에 보호대를 차면 티가나서 보호대 없이 찍었다. 촬영중 달리는 장면을 찍을 때면 통증을 참아가며 촬영에 임했다.

배우 민지혁
배우 민지혁ⓒ민지혁 제공

또 영화에서 비중 있는 씬이 있었지만 나중에 영화가 편집되면서 통편집 되는 일도 겪었다. 당시 ‘친구2’에서 김우빈의 친구 역을 맡아 연기를 했고 편집본을 대표님이 보여주면서 “지혁이 얼굴 잘나오네” 해주어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영화가 개봉하면 제 연기를 보신 다른 감독님들께 저의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어요. 그런데 시사회때 통편집 되어 볼 수가 없었어요. 뒤풀이 자리에서 곽경택 감독님이 저를 먼저 보시고 ‘미안하다’ 하시며 친구 1편과의 연계성으로 마지막 편집이 이뤄졌다고 말씀하셔서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죠”

그는 16년차 배우이지만 스스로 자만하지 않고 연기 레슨을 받으며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저는 연극영화과를 나오지 않아 오디션이 있을때는 친분이 있는 배우들끼리 모여서 상대역을 해주며 서로의 연기를 봐주기도 했고 아는 감독님 앞에서 제 연기를 보여드리고 고쳐야 할 점이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나아질 수 있도록 고민을 하고 준비합니다”

아직 비중 있는 배역을 맡은 경험은 별로 없지만 배우 생활이 오래되니 그를 관심 있게 보는 팬들도 생겼고 공연 때 간식이나 선물을 보내주는 팬들도 생겨났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때 가장 행복”

아직 해보지 못해서 해보고 싶은 배역도 있을 정도로 의욕도 넘쳐난다.

“예전에 웹드라마 ‘행복한 인질’ 권남기 감독님은 저를 보시고 ‘눈매가 선한데 무서운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 배우’라고 하셨어요. 착하고 선한 이미지의 남자친구나 싸가지 없는 재벌2세 역할 등 많이 해봤습니다. 제가 해보고 싶은 역할은 악역으로 안 보이는데 알고 보니 악역이거나 사이코패스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지혁 씨가 배우로서 일하는 이유가 궁금해져서 왜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주변에서 저를 늘 좋게 봐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가 더 노력해서 잘되면 다들 더 좋아하지 않겠어요. 더 잘되는 것이 이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누구나 그렇겠지만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나 자신을 볼 때 행복해요. 그때 내가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이걸 찍어서 뜨고 안 뜨고를 떠나서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고 또 나를 촬영에 불러줄 때 ‘나는 배우구나’ 하는 존재감 같은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죠”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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