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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한없이 부드러운 소리의 빛으로 나아간 허클베리 핀

당신에게 허클베리 핀은 어떤 모습인가. 지금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이라면 허클베리 핀에 대한 이미지가 있으리라. 1990년대 후반부터 20년 이상 활동 중인 록 밴드 허클베리 핀을 이야기 하면, 어떤 이들은 그런지한 초기의 사운드를 떠올리고, 또 어떤 이들은 댄서블한 곡들을 떠올릴 것이다. 광장의 무대에 곧잘 올랐던 허클베리 핀이나 서울특별시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 라이브 클럽에서 보았던 허클베리 핀을 떠올릴 수도 있다. 20년 이상 활동하는 동안 적지 않은 멤버들이 허클베리 핀을 거쳐 갔고, 다섯 장의 정규 음반과 한 장의 라이브 음반이 쌓였다.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다거나,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여러 번 거명되었다는 사실은 20년 동안 허클베리 핀이 뿜은 광휘 중 일부일 뿐이다. 한 번이라도 허클베리 핀의 음악을 들어본 이라면 음악의 아름다움과 아우라에 자신을 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함께 새로운 신을 일구었던 밴드들 중에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이름이 더 많다. 허클베리 핀이 여전히 현재의 밴드로 남아있기 위해 어떤 노력과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지에 대해 나는 끝내 알지 못하고, 그러므로 말할 수 없다. 다만 2011년에 정규 5집을 발표하고 다시 새로운 곡들을 내기까지, 그리고 다시 정규 음반을 내기까지 걸린 시간은 모든 대답을 대신한다.

정규6집 ‘오로라피플’로 돌아온 허클베리 핀
정규6집 ‘오로라피플’로 돌아온 허클베리 핀ⓒ제공=튜나레이블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꿔버렸다. 수많은 밴드들을 볼 수 있었던 골목의 클럽, 무대에 올랐던 뮤지션, 박수를 보냈던 사람들 그 중 어떤 것도 똑같지 않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우리의 귀에는 이제 다른 노래가 흐른다. 허클베리 핀의 노래도 달라졌다. 2018년 11월 12일 발표한 정규 6집 [오로라피플]은 이제 우리에게 다른 허클베리 핀을 기억해달라고 요청한다. [오로라피플]의 허클베리 핀은 록킹하지 않다. 그런지 하거나 댄서블 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오래된 밴드에게 더 이상 새로운 사운드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통념, 허클베리 핀에 대해서는 알만큼 안다는 자신감을 모두 접어두고 다시 허클베리 핀을 만나야 한다.

예전부터 담지해온 아릿하고 은밀한 정서를 전면에 내세운
20년을 넘긴 밴드 허클베리 핀

10곡의 노래와 연주곡을 담은 [오로라피플]에서 허클베리 핀은 예전부터 담지해온 아릿하고 은밀한 정서를 전면에 내세운다. 록킹했던 사운드의 한 켠에 항상 빠지지 않았던 서정성이 도드라지는 음반의 수록곡들은 좀처럼 비트를 부각시키지 않는 미디엄 템포의 곡들이다. 이 곡들은 일렉트릭 기타가 숨을 죽인 자리에 해무처럼 깔리는 건반과 신디사이저 사운드로 채워진다. 일렉트릭 기타의 낮은 리프가 도드라지는 ‘누구인가’ 같은 곡이 있지만 이런 곡은 오히려 예외다. 음반의 타이틀과 커버로 지명한 오로라 같은 파장은 대부분 신디사이저와 키보드에서 흘러나온다. 신디사이저와 키보드는 첼로와 관악기를 동반해 일렉트릭 기타를 대체하고, 거칠고 록킹한 사운드는 영롱하고 공간감 넘치는 시공간으로 바뀌었다.

‘항해’에서 시작해 ‘남해’에서 끝나는 이번 음반은 바다와 나눈 교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빛’과의 교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음반의 수록곡에는 ‘빛’이라는 단어가 거의 다 들어있다. 빛은 외부의 거대한 에너지이고, 노래 속 주인공을 찌르며 통과하는 에너지이다. 또한 지금 사방에 존재하는 어둠을 알려주는 거울이다. 어둠이 없다면 빛은 빛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빛이 없다면 어둠도 어둠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오로라피플]의 빛은 지금 노래 속에 가득한 어둠을 드러내고, 지워지고 흐릿해져가며 남은 시간을 드러낸다. 그 속에서 감당하는 외로움과 절망과 그리움, 아득한 희망과 간절한 의지가 모두 빛이다. 처음부터 한결같이 하염없이 넘치는 빛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힘겹게 찾고, 발견하고, 기대고, 의지하는 빛이다. 이 한 장의 음반은 어둠 속에 잠겨 다시 빛을 찾고 발견한 누군가의 기록이다. 온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빛을 발견할 수 없을만큼 암담한 고통의 시간을 감당하며 이미 곳곳에 빛이 있었음을, 항상 빛이 내게 향하고 있고, 빛과 어둠이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음악의 기록은 삶에 대한 고투 속에서 스스로 발견해낸 깨달음처럼 간절하다. 반드시 고통을 겪고 절망의 시간을 거쳐야만 깨닫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어도, 때로 삶은 한 줌의 진실을 얻고 아로새기기 위해 쓰라린 좌절의 무게를 요구한다. 긴 시간을 살아가며 때로 무력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이는 필연적으로 제 안팎의 어둠을 만나고 어둠을 거쳐 빛으로 나아가며 어둠과 공존할 줄 안다.

정규6집 ‘오로라피플’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여는 밴드 허클베리 핀
정규6집 ‘오로라피플’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여는 밴드 허클베리 핀ⓒ제공=튜나레이블

허클베리 핀의 [오로라피플]은 삶의 순간마다 깃든 빛과 어둠만큼의 명도와 채도와 색채로 음악을 채운다. 첫 곡 ‘항해’는 천천히 스미는 빛 혹은 파도처럼 철썩이며 “다른 세계”를 만난다. 잔잔한 건반 연주에 대비시킨 드러밍과 신디사이저 연주는 항해 같은 생의 격렬함과 고요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공간감 가득한 이소영의 보컬은 시종일관 고요하게 일렁인다. 허클베리 핀 특유의 리프 미학을 보여주는 ‘누구인가’는 허클베리 핀의 멜로디 메이킹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우수에 찬 목소리와 단순한 비트, 서걱이는 사운드 메이킹으로 빛과의 조우를 표현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를 통해 짙은의 목소리로 발표했던 ‘너의 아침은 어때’는 “모든 걸 겪고서 맞이한 아침”의 고요 속에 담겨 있는 빛의 파동 같은 마음의 격동을 껴안고 다독인다. 신디사이저와 보컬의 농도가 조화롭고, 멜로디는 자연스럽다. ‘영롱’도 허클베리 핀의 변화를 보여주는 담백하고 아름다운 곡이다. 찌르는 소리가 하나도 없이 부드럽게 밀려 들어오는 곡은 이소영의 보컬을 몽환적으로 겹쳐 더 많은 시공간을 껴안는다. 허클베리 핀의 기존 곡과 닮은 ‘Darpe’도 부드러운 질감으로 교감하고, 리듬으로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이번 음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인 ‘라디오’는 빛과 어둠의 교감을 담은 음반의 수록곡들 중에서 가장 은밀하고 정교하다. 길에 깃든 시간과 추억을 호출하는 ‘길’ 역시 몽환적인 사운드를 기반으로 추억과 비밀을 소환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노래는 그 자체로 삶의 기록이다. ‘오로라’와의 만남 혹은 자신 안팎의 깊고 강렬한 체험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곡 ‘오로라’는 ‘Aurora people’로 이어지며 이번 음반의 주제와 서사를 아우른다. 이번 음반의 마지막 곡이자, 유려하고 묵직하게 음반의 완성도를 빛내는 곡 ‘남해’ 역시 허클베리 핀의 음악 역사가 얼마나 치열한 노력으로 채워졌는지 부정할 수 없게 한다.

20년을 넘긴 밴드 허클베리 핀이 스스로 만들어낸 또 다른 세계가 이렇게 우리에게 왔다. 감싸고 껴안고 견디며 위로하는 음악의 오로라. 치밀하지만 한없이 부드러운 소리의 빛으로 허클베리 핀은 나아갔다. 환골탈태라는 말 정도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음악은 눈부시고 가슴 시리다. 얼마나 다듬고 만지고 끓여야 가능한지 아득한 작품으로 허클베리 핀의 역사가 계속 이어진다. 아직도 작품으로 말하는 이 고집스러운 우리 시대의 예술가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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