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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정말, 수능은 공정한 입시제도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 년이 지나지 않아, 재학시절 짝사랑했던 수학선생님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선생님은 자신은 곧 학교를 그만 둘 거라고 했다. 고등학교 교사, 그것도 꽤 괜찮은 사립학교, 게다가 시골 출신인 그는 자신이 서울의 명문 사립학교 교사가 된 것에 대해 고향의 부모님이 무척 자랑스러워하신다는 말을 종종했던 터였다. 그래서 그가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말은 나에겐 다소 충격적이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을 잘 알리가 없는 제자에게 털어놓는 선생님의 고백은 이랬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 학원에서 다 배워오는 거지. 그러니 학교선생 알기를 뭘로 알겠니. 나도 학원가서 돈이나 많이 벌려고”

딱 25년 전이었다. 지금처럼 사교육이 활발했던 시기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다. 그로부터 몇 년을 거슬러 올라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중간고사 성적이 나오고 담임선생님이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남으라고 했다. 한 손에는 내 성적표를, 다른 한손에는 출석부를 손에 든 그녀는 내 머리를 (예전 그 딱딱한 검정색) 출석부로 ‘탁탁’치며 말했다.

“예전 같으면 너 같은 애는 우리 학교에 들어오지도 못 했어”

아마 고등학교 평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절 이 학교에 다녔던 그 교사 입장에서 나같이 ‘뺑뺑이’로 들어온 제자이자 후배였던 내가(또는 우리들이) 곱게 보이지 않아 독설을 날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이런 좋지 않은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 글쓰기의 즐거움을 처음 알려준 곳은 학교에서 오랜 역사를 가졌던 ‘신문반’이었고, ‘스스로 비둘기라 믿는 까치에게’(김진경)라든지 ‘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 같은 주옥같은 도서를 소개해준 독일어 선생님도 있었다. 그리고 넓은 체육관과 탁 트인 캠퍼스, 무엇보다 야자시간 월담을 하다가 치마가 철조망에 걸려 찢어지는 줄도 모르고 찾아갔던 학교 앞 ‘코끼리분식’의 떡볶이 맛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런데 요즘 그 학교가 많이 유명세에 시달리고 있더라.

‘유명세’에 시달리는 모교의 논란을 보며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
서울 강남구 숙명여고ⓒ사진 = 뉴시스

나는 바로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오르내리는 그 여자고등학교 졸업생이다. 그 학교는 아다시피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해 있는 학교다.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사립학교이고, 서울 8학군에 포함되는 학교이다. 학교 주변에는 유명한 은마아파트, 타워팰리스 같은 주거지가 있다. 은마아파트 주변으로는 유명한 고액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그 학교 학부모들이 이번 ‘교내 부정사건’을 계기로 현재 입시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이런 것 같다.

“내신점수(등급)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대학에 갈 수 있는 수시전형은 학교 내부의 비리, 주관적 요소들이 너무 많으니 축소하고 전국의 모든 아이들을 동일한 시험, 수능으로 평가하는 정시전형을 늘리자. 그것이 공평, 공정하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봤다. ‘공정’이란 무엇일까? 그 학교 학부모의 입장에서 학교라는 집단, 교사라는 집단은 더 이상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데에 어떠한 평가도 해서는 안 되는 집단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공정한’ 수능에 따라 대학진학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수능이라는 것이 길게는 12년, 짧게는 6년의 교육과정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든, 학원에서 이루어지든, 한 번의 시험 결과에 따라 아이들의 능력치를 결정해버리는 제도이다. 이런 제도가 강화되면 될수록 사실상 공교육은 설 곳이 없다. 좋은 점수를 위해 족집게 과외, 고액의 사교육 선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물 흐르듯 당연하다. 그런데 그 당연한 방법은 철저하게 재력에 의거한다.

공정이란 무엇인가?
수능은 과연 공정한가?

나의 그 시절 수학선생님이 다시 떠오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울 생각이 없어, 학원에 가서 돈이나 벌어야겠어.”

내가 이해하는 ‘공정’은 이런 것이다. 부모의 직업이나 재력이 달라도 공정한 교육의 기회를 갖는 것, 글을 잘 쓰는 아이, 체육을 잘 하는 아이, 노래를 잘 하는 아이, 토론을 잘 하는 아이, 영상을 잘 만드는 아이, 게임을 잘 하는 아이, 이런 아이들의 다양한 재주를 골고루 평가하는 학교. 그렇게 다양한 분야의 아이들을 공교육에서 발굴하고, 더 공부할 수 있도록 공교육을 통해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고, 단 한 번의 시험점수만으로 전국의 아이들을 1등부터 서열을 매겨 서울대부터 지방대까지 줄 세우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서울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입실을 마친 뒤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서울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입실을 마친 뒤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김슬찬 기자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때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중학교 때 이미 선행학원에서 고등학교 진도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반복해서 문제를 풀며 수능을 대비하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엄마에게 학원에 보내달라는 이야기도 눈치 보며 해야 하는 아이들의 경쟁이 공정한가?

그 여고의 비리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칫 수능은 공정하다는 환상을 심어줄까 두렵다. 공교육을 약화시키고 다시 아이들을 시험으로 서열화 시킬까 두렵다. 그래서 사교육 시장에 끼어들지 못하는 아이들이 이미 저만큼 앞서 나간 상위 1% 아이들을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교육불평등 대한민국 더더욱 고착화시킬까 두렵다. 빈대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없길 바란다.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고, 공교육은 강화되어야 한다.

엄미야 금속노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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