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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조선학교 방문기]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지바조선초중급학교
지바조선초중급학교ⓒ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우리학교와의 첫 만남은 영화 ‘60만번의 트라이’였다. 2014년 어느 날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에게 받았던 감동은 이후 살아가는 나날에 묻혀 감춰졌다. 그러다 올해 우연히 영화 ‘하늘색 심포니’를 보게 되었다.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수학여행으로 조국 ‘조선’을 방문하는 이야기는 묻혔던 감동을 다시 일깨워주었지만 ‘우리학교를 방문해야겠다’, ‘우리학교가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우리학교 방문에 대한 결심은 고국과 이역만리 떨어진 카자흐스탄에서 이어졌다. 지난 7월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이하 전농 부경연맹)이 진행한 카자흐스탄 해외농업연수를 참가하였고 그곳에서 만난 고려인과 그 분들의 역사를 만났다. 조국과 떨어져 타향 땅에서 토굴을 집으로 삼아 살기 위한 투쟁했던 삶, 개인의 안락보다는 민족의 교육을 중요시해 학교를 먼저 세웠던 고려인들의 역사는 해방되자마자 ‘국어강습소’를 세우고 우리의 얼과 말을 이으려고 했던 우리학교의 역사와 닮아 있었다. 카자흐스탄에서 ‘민족’을 지키며 기억하려는 삶에서 느꼈던 감동은 나를 첫 우리학교 방문으로 이끌어주었다.

‘전농 부경연맹 조국통일위원회’에서 우리학교방문을 올해 꼭 진행하겠다는 사업계획서를 내었고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의 ‘11차 금요행동참가단’과 만나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첫날 지바조선초중급학교 방문에서부터 마지막 날 아오야마 묘지참배까지 알찬 일정 준비해준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과 양심적인 일본인, 재일동포, 학생, 교원 분들의 환대에 감사를 전한다. 40여명의 이남 그리고 해외동포들이 함께한 참가단에도 감사한다. 다시 떠올려도 한 장면 장면들이 감동이었고 눈물이었다.

“우리학교 아이들이 쓰는 말은 북쪽도 남쪽도 아닌 재일조선인말”

우리학교와의 첫 인상은 ‘인사’였다. ‘인사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는 말처럼 지바조선초중급학교와 조선대학교에서 느꼈던 교원과 학생들의 반가운 인사는 나의 마음을 한층 뜨겁게 해줬다. 첫날 지바조선학교에서 수업을 자유롭게 참관할 때 아이들이 들려주었던 노래, 그리고 방문단을 위한 학생들의 공연과 다같이 손잡고 춤추며 불렀던 노래, 꼭 사진이 아니라도 뇌리에 깊게 각인 되듯이 떠오른다.

지바조선학교 김유섭 교장과 함께한 좌담회에서 인상에 깊게 남은 것은 말교육, 문화예술교육이었다. “우리학교 아이들이 쓰는 말은 북쪽도 남쪽도 아닌 재일조선인말”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한국 어머니 밑에서 자라 이남말을 유창하게 쓰던 전학생이 결국은 재일조선인말을 배우게 되었다는 일화에서 우리말을 지키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을 통해서 민족을 배우고 이어나가는 노력에 감명을 받았다.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특기나 공부에 더 집중을 하자는 의견을 간혹 내는데 교원들이 설득을 통해 문화예술교육 시간을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일본 도쿄도 고다이라시에 위치한 조선대학교
일본 도쿄도 고다이라시에 위치한 조선대학교ⓒ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조선대학교를 찾은 것은 둘째 날이었다. 당연히(?) 참가단을 반겨주는 학생들의 인사와 함께 들어온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동무는 미래를 위하여 오늘 무엇을 바쳤는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민족교육의 감수성에 감화되었을까? 가슴 한 켠을 찌르는 알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조선대학교는 1956년 창립되었다. 조선학교에서 중등교육까지 마친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이 필요했고 초기 교원과 학생들은 직접 건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정부의 숱한 방해에도 민족교육을 지켜온 힘은 우리 일은 우리 스스로 한다는 자주성이 아니었을까? 조선대학교의 역사,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보았다. 이날 전농 부경연맹은 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 학생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일본이라는 타국에서 끊임없는 탄압과 자본의 유혹, 무한경쟁사회를 겪으면서도 민족교육을 지키며 신념을 가지고 당차게 꿈을 키우는 학생들을 보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았다. 시간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다음날 진행되는 금요행동에 정치경제학부 학생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로 아쉬움을 뒤로했다.

일본 도쿄 문부과학성 앞에서 열린 금요행동
일본 도쿄 문부과학성 앞에서 열린 금요행동ⓒ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조선학교 고교무상화를 위해 싸우는 ‘금요행동’

이번 ‘11차 금요행동참가단’의 또 하나 중요한 목적은 이남과 해외에서 직접 받은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를 탄압하는 아베정권 규탄 국제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은 일본 중의원 제3회의실에서 열렸다. 몇몇 참가단의 발언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왜 한국에서 조선학교를 도와주려고 하는지 일본사람들은 이해를 못한다는 취지의 질문이었다. 같은 조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포가 다른 나라에서 핍박을 받는데 그것을 모른채 하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일까? 이러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정말로 존재하는 걸까? 답변의 가치도 없는 질문이었다.

기자회견 이후 관련 부처 공무원들과의 교섭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교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공무원들에게 참가단과 학부모들의 성토가 진행되었다. “탄압과 핍박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며 살았다”는 어머니회 소속 학부모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렸고 함께 이길 때 까지 싸우겠다는 이야기에 박수를 보냈다. 자기 부처의 입장이 아닌 한명의 인간으로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오늘 이 자리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라는 참가단의 요구로 마무리되었다. 재일조선인 위안부 송신도 할머니의 재판을 다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영화가 떠올랐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날 ‘일본 정부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 위법’ 항소가 도쿄 고등법원에서 기각 되는 일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 날 저녁 어머니회에서는 같이 해준 참가단에게 힘을 받았다는 절절한 감사를 전했다. 또 한번 눈물을 흘린 시간이었다.

문부과학성 공무원들과의 교섭
문부과학성 공무원들과의 교섭ⓒ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매주 문부과학성 앞에서 열리는 조선학교의 고교무상화 적용을 요구하는 금요행동에 100여명의 사람이 모였다. 항상 2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와 후배들을 위해 금요행동을 진행하는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집회를 진행했다. 참가단의 발언과 조선대학교 학생들의 발언, 구호 등이 주를 이루었고 참가단 중 한 명인 민중가수 이수진씨의 공연도 함께 했다. 노래공연 중 다함께 비춘 휴대폰 불빛은 아름다웠다. 민족교육을 지키는 것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박탈당하며 차별 받고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 조선학교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국내에서 어떻게 알리고 활동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참가단으로써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국평사 방문, 돌아오는 날 아오야마묘지 김태일소년열사 참배 등 모두 모두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총련에서 활동하는 청년들과의 만남도 감명 깊었다. 조선학교로 맺어진 인연들을 통일된 조국에서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갖는다.

전농 부경연맹 거창군농민회 김재영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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