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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입시 거부” 선언한 19살 청소년에게 대학보다 중요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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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취업 안 된다고 하지 마. 모든 건 네 책임이야.”

매년 광화문 광장에서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청소년·청년들이 있다. ‘경쟁교육’, ‘서열화’에 복종하지 않겠단, 거부의 메시지였다. 그런 그들에게 누군가는 비난을 쏟아내곤 했다.

대입거부 청소년·청년들은 물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취업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가.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만 돌리는 일이 정당한가. 도대체 ‘대학’이란 제도는 얼마나 평등하길래, 이토록 신뢰하고 사람의 미래를 쉽게 단정하는가.

2018년 한국의 고등학교 졸업생 대학 진학률은 69.7%.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사회는 ‘입시경쟁’의 불안감으로 청소년을 다스려 왔고, 대학에 안착한 뒤에야 한시름 놓을 수 있게 했다.

19세이던 때, 입시경쟁을 거부하고 “대학을 가지 않겠다” 선언한 청소년이 있다. 그는 광화문 광장에 서서 “대학은 당연하지 않다”고 외쳤고, “대학진학 여부가 한 사람의 삶을 질적으로 갈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피아 씨는 2017년에 대학입시 거부를 선언했다.
피아 씨는 2017년에 대학입시 거부를 선언했다.ⓒ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제공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시민단체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활동가 피아(20) 씨를 만났다. 그는 2017년도 ‘대학입시 거부’ 선언자다.

피아 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열린 ‘스쿨미투(학교 내 성폭력 고발 운동)’ 집회에서다. 이어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지난 15일 ‘대학입시 거부 선언’ 기자회견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피아 씨는 탈(脫)학교 청소년이다. 지난해 3월, 고등학교 3학년이던 때 자신의 선택으로 학교를 벗어났다. 기억 속 학교는 답답하고, 우울한 모습이었다.

“수학여행에 가고 싶지 않아 ‘가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담임선생님은 ‘내가 너 생활기록부 담당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될 줄 알고’라며 협박했다. 한문 선생님은 ‘애들은 맞아야 큰다’며 수업 시간에 한자 10개를 주고, 주어진 시간 내에 다 외우게 했다. 못 외운 학생들은 맞아야 했다. 하루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 자퇴했을 때 나의 미래를 학교에 물은 적이 있다. ‘알려고 하지 말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 선생님은 ‘대학을 안 나오면 길거리에서 몸이나 팔고 산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학교는 학생을 억압했다. 피아 씨는 지쳐가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했다. 하루는 ‘내가 왜 여기 앉아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고 했다. 학교는 ‘나’라는 존재를 잊게 만들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학교에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피아 씨는 결국 자신의 선택으로 학교를 떠났다. 학교에서 칭찬받던 학생, 공부를 잘하던 학생, 얌전한 학생,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모범생’으로 불리던 그였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피아 씨는 학교를 벗어나서 밖을 보니 “모르는 게 많았다”고 말했다. “통장을 어떻게 만드는지, 최저임금은 얼마인지, 4대 보험은 어떻게 되는지, 내가 일하다 다치거나 혹시라도 당일 해고를 당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학교는 알려주지 않았다. 홀로 자립하는 것에 필요한 정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인권 의식, 공동체 의식도 학교에선 배우지 못했다.”

피아 씨는 지난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열린 ‘스쿨미투(학교 내 성폭력 고발 운동)’ 집회에 참여했다.
피아 씨는 지난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열린 ‘스쿨미투(학교 내 성폭력 고발 운동)’ 집회에 참여했다.ⓒ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제공

“광장이 학교보다 나았다”

피아 씨는 고2 겨울방학 때 광화문 광장의 촛불을 보았고, 스스로 “계몽했다”고 표현했다. 비슷한 공통분모를 가진 사람을 같은 반으로 몰아넣는 학교와 광장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성적이 비슷한 애들, 부모의 소득이 비슷한 애들로 학생을 분류하는 학교와 광장은 달랐다. 광장은 숨을 쉬고 있었다”고 말했다.

“광장에 와서 내가 알고 있던 삶의 패턴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 처음, ‘굳이 원치 않는 대학에 왜 가려 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개성이 넘쳤던 광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피아 씨는 그때 비로소 ‘살아있는 사람’을 마주한 기분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황교안 즉각 퇴진 15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서 촛불과 피켓들이 보이고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황교안 즉각 퇴진 15차 범국민행동 촛불집회에서 촛불과 피켓들이 보이고 있다.ⓒ양지웅 기자

광장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소리칠 수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자칫 잘못 말했다가 ‘벌점’ 받을 수 있는 말들을 광장에선 편하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수업 도중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손을 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용건에 대해 허락받아야 했다. 광장에서는 중간에 화장실에 가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광장의 사람들은 서로의 생각을 들어줬다. 경쟁에 내몰지 않았고 성과를 강요하지 않았다. 함께 대화를 이어갔고 끊임없이 좋은 자극을 주었다. 광장에선 억지로 배우는 게 없었다. 피아 씨는 “광장이 학교보다 훨씬 나았다. 배울 점도 더 많았다”고 강조했다.

그가 대학을 거부한 것은 결코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이제야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그는, 또다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회원들이 대학 입시 거부 선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경쟁에 내몰리고 불안에 쫓기는 삶을 멈추고 다양한 삶을 존중받기 위해 대학 입시를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회원들이 대학 입시 거부 선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경쟁에 내몰리고 불안에 쫓기는 삶을 멈추고 다양한 삶을 존중받기 위해 대학 입시를 거부한다고 주장했다.ⓒ김슬찬 기자

대학만능주의 사회에서 ‘대학입시 거부자’로 살아가기

피아 씨는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활동가로 지내며 ‘청소년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걸 페미니즘’이란 책을 냈다. 동료 활동가들과 여성·청소년이 사회에서 겪는 여성 혐오 문제에 대해 다뤘다. 장애인의 인권, 난민의 시민권 등 다양한 문제를 논의하는 토론회와 강연회를 들으러 가고, 직접 토론회 발제자로 참석하기도 했다.

집회를 찾아다니는 것은 일상이 됐다. 2년 전, 광장의 ‘박근혜 탄핵 촛불 집회’를 시작으로 꾸준히 집회에 발걸음을 했다. 많은 이론이 현장에 녹아있었다. 그가 만난 현장 하나하나가 곧 학교였다.

피아 씨는 최근 ‘숙명여고 시험 문제 유출 사건’을 보며 사람들이 “부정행위를 했다”, “신성한 경쟁에 해를 끼쳤다”며 경쟁에만 주목하고 있는 점이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시험지에 나오는 문제만 중요하게 가르치는 교육. ‘어떻게 평가할까’, ‘어떻게 잘 줄 세울까’에만 사람들이 몰입돼 있다. 학생들에게 뭘 가르쳐야 할지, 교육의 형태가 어떤 문제점을 가졌는지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회원들이 대학 입시 거부 선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경쟁에 내몰리고 불안에 쫓기는 삶을 멈추고 다양한 삶을 존중받기 위해 대학 입시를 거부한다고 주장했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회원들이 대학 입시 거부 선언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경쟁에 내몰리고 불안에 쫓기는 삶을 멈추고 다양한 삶을 존중받기 위해 대학 입시를 거부한다고 주장했다.ⓒ김슬찬 기자

피아 씨에게 대입거부를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멈추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답했다.

“이미 대학에 다녀온 사람,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 학교 밖 청소년 등 누구라도 삶의 의욕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대학입시를 영원히, 무조건 거부하라는 게 아니다. 그냥 잠깐 멈추고, 조금 쉬어가라는 의미다. 사람들이 경쟁을 잠깐 멈추고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잃어버린 생각을 함께 고민하고 찾아오는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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