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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가정 유지’ 아닌 ‘여성 인권’ 관점에서 해결해야”

매년 11월 25일부터 12월 10일까지는 ‘세계 여성폭력추방 주간’이다. 11월 25일은 1960년 도미니카공화국 세 자매가 독재에 저항하다 숨진 날이다. 여성 운동가들은 1991년 11월 25일부터 세계인권선언일인 12월 10일까지를 ‘세계 여성폭력추방 주간’으로 선포하고 여성 인권 관련 행사를 진행해왔다. 국내 여성계 역시 이를 기념해 지난 27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여성폭력 관련 토론회를 진행했다. 이 모습을 총 3회에 걸쳐 기사로 연재한다.

1. “가정폭력, ‘가정 유지’ 아닌 ‘여성 인권’ 관점에서 해결해야”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한국여성의전화(한여전) 등 주최로 ‘가정폭력을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 해결한다는 것’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한국여성의전화(한여전) 등 주최로 ‘가정폭력을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 해결한다는 것’ 토론회가 열렸다.ⓒ한국여성의전화

세계 여성폭력 추방주간을 맞아, 여성들은 가정폭력 문제를 ‘가정 보호’가 아닌 ‘폭력 종식’의 관점으로 볼 때 해결할 수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에 따라 ‘가정 유지’를 입법목적으로 둔 가정폭력처벌법 개정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7일 한국여성의전화(한여전) 등 주최로 열린 ‘가정폭력을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 해결한다는 것’ 토론회에서 가정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이 지목됐다. 김수정 한여전 여성인권상담소 인권부장은 “가정폭력처벌법 전반에 피해자의 ‘인권 보호’보다 ‘가정의 유지와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은 “가정폭력 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것을 “피해자와 가족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보다 앞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인권부장은 “가정폭력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범죄행위이며, 이로 인해 여성의 인권과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또 해당 조항은 가해자에게 법적 처벌이 아닌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내리도록 규정해 가정폭력을 형사적 범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보호처분은 상담 위탁, 접근금지, 보호관찰 등이다. 김 인권부장은 “가해자에게 가정폭력이 처벌돼야 할 범죄가 아니라 상담과 교육으로 교정이 가능한 행위 정도로만 인식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실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미미한 실정이다. 가정폭력 범죄율은 높아지고 있지만 기소율은 평균 10%를 밑돌고, 나머지는 대부분 불기소나 가정보호 사건으로 송치 처리된다. 김 인권부장은 “(해당 법의 ‘가정 유지’ 관점은) 가해자에게는 폭력과 살인에 대한 면죄부가 되고 피해자에게는 폭력적 상황에 대한 탈출보다는 가정 유지를 위해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는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며 “이는 피해 여성을 죽음에까지 내몰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날 오전 여성가족부·법무부 등 관계부처가 함께 마련한 ‘가정폭력 방지대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관련 기사:“가정폭력 가해자 현행범 체포, 접근금지 어기면 징역형”) 김 인권부장은 “(‘가정 유지’ 관점을 담고 있는) 목적 조항 개정 이야기가 안 나왔다”며 “정부 대책이 매번 새로운 것처럼 발표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폭력처벌법에서 ‘가정 유지’ 관점을 폐기하지 않는 한 가정폭력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의 전화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0.29.
한국여성의 전화가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8.10.29.ⓒ뉴시스

가정폭력 가해자 솜방망이 처벌
피해자를 가정파탄 가해자로 만들어

가정폭력처벌법의 ‘피해자 의사 존중’ 규정이 가해자에 대한 형사처벌과 가정파탄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근거로 사용된다는 문제도 지적됐다. 해당 법 제9조는 가정폭력 범죄를 가정보호사건 등으로 처리할 때 검찰과 법원은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가해자로부터 보복당할 우려가 높고, 가해자와 경제공동체로서 벌금형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는 등 피해자의 현실을 고려하면,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김 인권부장은 “가해자 처벌 여부를 피해자의 의사에 맡기는 것은 피해자에게 ‘이혼할 생각 있으면 고소하고, 아니면 그냥 참고 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 의사 존중’ 규정 때문에 모든 가정폭력 범죄가 반의사불벌이 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원은 “가정폭력 범죄 중 형법상 피해자 의사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지는 범죄는 폭행·협박·명예훼손·모욕죄뿐”이라며 “현실은 강간·특수상해·학대 등도 피해자의 의사를 물어 처벌을 면제할 수 있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부연구원은 “(경찰·검찰·법원이 피해자의) 진정한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고 있지 않다. 확인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형사처벌할 거예요?”, “가정 유지 안 할 거에요?”와 같은 질문을 가해자가 있는 자리에서 묻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폭력 피해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처벌 여부를 묻고 있으며, ‘가정 유지’를 전제로 사건을 처리한다는 것이다.

또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가 가정폭력처벌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문제 제기도 나왔다. 2008년부터 본격 시행된 해당 규정은 검찰 단계에서 가해자에게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해 주는 것인데, 김 인권부장은 “사회적 범죄에 대해 응당한 처벌이 아닌 상담과 치료만으로 접근하고 있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아 결국 폭력은 심화되고, 피해자가 다음에는 신고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해결하거나 포기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들과 여성단체가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란 특례법’을 피해자 중심으로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과 여성단체가 12일 국회 정론관에서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란 특례법’을 피해자 중심으로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가정폭력을 은폐하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이날 토론에 참석한 이들은 ‘정상 가족’ 규범을 지향하는 사회에서 가정폭력은 해결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 인권부장은 “남녀라는 ‘양성’의 혼인으로 가족이 구성·유지돼야 한다는 정상 가족 규범은 가정폭력처벌법 목적 조항을 비롯해 국가 가정폭력방지정책을 관통하며, 가정폭력 범죄에 대한 사법처리를 막고 피해자에게 가해자와의 관계 회복을 주문하며 가정폭력 근절을 가로막는 핵심 근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가족 구성원을 혼인과 혈연관계 중심으로 협소하게 정의함으로써 다양한 가족 및 생활공동체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에 개입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삶의 자립과 인권의 관점에서 가족의 ‘정상성’을 해체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는 “가정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가족을 떠나도 자립할 수 있고, 다양한 가족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고미경 한여전 상임대표는 ‘여성 인권 실현을 위한 전국 가정폭력 상담소 연대(상담소 연대)’가 공식 발족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상담소 연대는 여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아 친밀한 관계 내 발생하는 여성폭력의 특성을 충분히 반영한 지원 체계를 구축·보완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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