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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아름다운 소리의 집합체로 담아낸 인간의 고결함

편집자 주 - 이번 글로 서정민갑의 수요뮤직이 200번째를 맞았습니다. 2014년 2월 2일부터 지금까지 4년 10개월 동안 좋은 글 써주시는 서정민갑님과 글을 아껴주시는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서정민갑의 수요뮤직은 계속됩니다. 감사합니다.

황푸하 2집 ‘자화상’
황푸하 2집 ‘자화상’ⓒ황푸하

많은 창작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라는 존재는 창작자 본인이 가장 잘 아는 존재이다. 가장 구체적으로 알고 가장 생생하게 안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부터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화가들은 자화상을 그리고, 작가들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변용해서 쓴다. 우물 속 한 사나이가 미워졌다 가엾어졌다 그리워졌다 말하는 윤동주의 ‘자화상’과 김중식의 ‘황금빛 모서리’에 담은 시들, 렘브란트의 ‘자화상’ 연작은 자신을 담은 대표작들이다. 이 작품들은 한 인간이 감당해낸 인생에 대한 기록으로 애틋하거나 처절해서 묵직하다. 대중음악에도 몇 곡의 자화상이 있다. 뜨거운 감자, 비와이, 이수만, 이씬, 현아 등의 ‘자화상’이다.

황푸하
황푸하ⓒ황푸하

황푸하의 삶을 복기한 앨범 ‘자화상’

지난 10월 31일 포크 싱어송라이터 황푸하는 두 번째 음반 ‘자화상’을 내놓으며 자화상 제목의 작품 수를 늘렸다. 황푸하가 음반에 담은 곡은 9곡. 이번 음반에서 황푸하는 현재 시점에서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는 시간여행을 감행하며 자신의 삶을 복기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마들렌 향기가 촉발한 과거여행 이야기였는데, 황푸하는 첫 곡 ‘망각’에서 “왜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지 물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곧장 자신의 옛 이야기로 진입하지 않고, 지나온 삶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는 이유를 묻고, “생각하기엔 힘이 드나요”라고 묻는 노랫말은 이 음반이 단순한 회상과 추억만 담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좋은 자기 기록 작품은 자신을 미화하지 않는다. 자신이 아는 자신의 모습을 가감하지 않고 드러낸다. 쭈글쭈글한 주름살 같은 삶의 우여곡절과 헤어 나오지 못하는 욕망의 허방까지 감추지 않고 응시해 기록할 때 한 인간의 실체가 온전히 채워진다. 기억이 나지 않는 모습도 자신의 진실이다. “내가 누군지 몰라”하는 모습 또한 자신의 진실이다. 잘 알고 멋지고 근사한 모습만 담지 않고 모르겠다 쓰는 음반의 첫 곡은 이 음반이 과거에 대한 복기일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질문과 대답임을 밝히는 진솔한 도입부이다.

두 번째 곡 ‘시계 보는 법’은 시계 보는 법을 처음 배웠던 어린 날들로 돌아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만나는 모든 시간은 모두 다 놀라운 시간이었”던 날들, “내 다리로 걷는 법을 처음 알았을 때” 세상은 사랑을 가르쳐주었다. 첫사랑 이야기이거나 세상을 배워가는 날들의 기록이다. 그는 이렇게 세상을 배우고 세상과 교감한다. ‘혼자 하는 사랑’에 담긴 태도처럼 그는 기다리고 바라보고 혼자서 반갑다고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다. 마음에 품었던 이에게 마음을 보내거나 세상과 친근해지려는 태도를 담는 것처럼 느껴지는 곡은 그 자체로 성장의 기록이다. 음악을 만드는 행위의 기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곡의 서사는 다른 존재와 교감하거나 창작하는 주체로 성장하는 기록으로도 느껴져 중의적이다.

살아가며 그는 또한 “시간이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배운다. 노래 속에서 황혼에서 새벽의 사이를 보는 이유는 쉽게 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어두운 밤 같은 시간을 만나며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황푸하는 자신이 겪은 고민과 사건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은유적인 표현을 활용해 상황을 서술한다. 자신에 대한 은유적인 기록은 같은 제목의 곡 ‘자화상’에서도 이어진다. “무언가에 갇혀 있고”, “내가 그린 적도 없는” 자화상은 자신이 느끼는 자신에 대한 소외감과 답답함이다. 게다가 다른 이들은 나에 대해 다 알지 못한 채 또 다른 자화상을 그려버린다. 자신은 하나인데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만큼 자신을 알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나그네’이다. “그 어떤 계획도 신발도 없이” 세상에 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아무런 아쉬움 하나 없이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떠”나는 일이 삶이며, 그 일을 해내는 과정이 성장이다. 노래 속 자아의 성장은 나그네임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자신이 원래 말이었음을 알고, “이제 난 그 누구도 아니”라고 선언하는 발화 속에 삶과 예술에 대한 자의식을 담는 노래는 한 사람의 예술가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경쾌한 곡 ‘사랑을 한다는 건’은 인간의 삶과 성장에서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타자와의 관계에서 최고의 단계인 사랑에 대한 성숙한 태도를 드러낸다. 그는 “그대를 내 길에 데려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너만의 공간을 빼앗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 뿐 아니다. “사랑은 한다는 건 당신과 함께 싸워나가는 거”라고, “너의 맘이 외로워진다면 오 나는 언제라도 너한테 갈래”라고 이야기하는 노래는 ‘자화상’ 음반의 가장 튼실하고 깊은 모습이다.

황푸하 2집 ‘자화상’
황푸하 2집 ‘자화상’ⓒ황푸하

음악으로 써낸 문학이자 인문학이라 해도 좋을 음반

그는 계속 살아가며 세상과 교감한다. 세상을 외면하지 않고 울부짖는 땅의 목소리를 듣고, 절망하는 ‘해변에서’의 모습은 그가 세상과 사람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알게 한다. 그리고 음반의 마지막 곡 ‘합일’은 ‘자화상’ 음반의 대미를 이루는 곡이다. 음반의 주체가 태양이나 바다 혹은 그 어떤 대상과 충만하게 교감하면서 자신의 설움을 해소하는 이야기는 ‘자화상’ 음반의 종착역 같은 서사를 완성한다.

이 같은 자화상의 서사를 위해 황푸하는 어쿠스틱 기타, 드럼, 베이스, 피아노, 바이올린, 일렉트릭 기타를 적절하게 활용한다. 노랫말로 그려놓은 서사의 시선과 깊이를 음악으로 완성하는 것은 그가 악기를 들고 빼거나 속도를 빠르게 했다가 늦춰가면서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서사이다.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시작하는 첫 곡 ‘망각’은 돌연 속도를 올리며 드라마틱하게 과거 여행으로 빨려가듯 인도한다. 두 번째 곡 ‘시계 보는 법’에서도 성장의 속도처럼 리듬을 바꾸며 활기를 만들어낸다. 어쿠스틱 악기를 주축으로 한 소리의 질감은 맑고 낙관적인 성장기의 정서를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리듬을 늦추고 보컬을 부각시키는 방식을 더하는 음악 연출은 자화상의 서술을 더 풍성하게 해준다. 평면적일 수 없고 다층적이며 모순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에 대한 서술 방식으로 매우 효과적이다. 기타와 바이올린, 드럼으로 구성해 ‘혼자 하는 사랑’은 서정성이 도드라진다. 어쿠스틱 기타와 베이스의 이중주로 구성한 ‘노을’은 제목에 담은 시간만큼의 어두움을 충분히 드러낸다. 각각의 곡들이 다른 서사를 담고 있는만큼 다른 사운드 서술방식을 사용한 감각은 황푸하의 음반이 얼마나 공들여 만든 작품이고, 완성도 있는 작품임을 잘 보여준다.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를 이어가는 ‘노을’에서도 황푸하는 리듬을 바꿔가면서 더 많은 드라마를 쌓는다. 이 과정에서 황푸하는 노이지한 사운드를 사용하거나 강력한 사운드를 폭발시키지 않고, 정갈하고 간결한 사운드의 질감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이 음반이 스스로 자신을 단정하게 다듬어낸 이의 기록임을 웅변한다. 따뜻하고 고운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자화상’과 ‘나그네’는 편안하면서도 느슨하지 않다. 고운 소리의 결 안으로 파고드는 기타 연주는 몽환적이고 따뜻하다. 피아노 연주를 앞세운 ‘사랑을 한다는 건’에서도 바이올린과 휘파람 소리 등을 연결해 풍부한 소리의 파장에 이른다. 재지한 질감을 더하는 곡은 차별성과 재미를 동시에 완성한다. 불안함을 부각시킨 ‘해변에서’의 피아노 연주와 건반 연주에 더한 일렉트릭 기타 트레몰로 연주는 어쿠스틱 포크에 한정되지 않는 확장성을 보여준다. 느리게 이어가다가 속도를 당기고 영롱한 소리와 노이즈를 장엄하게 더해 노래 속 자아의 변화와 환희를 표현해낸 ‘합일’은 소리의 드라마를 만끽하기 충분한 곡이다.

정직하고 진실한 고뇌와 성찰이 만들어낸 음반의 자아상은 소비가 실천을 대신하고, 무지가 배려를 압도하는 시대에 아름다운 소리의 집합체로 인간의 고결함을 담아냈다. 과거 김민기, 조동진 등으로 이어진 포크 음악의 어법과 정신이 오늘 황푸하의 손으로 다시 피어났다. 음악으로 써낸 문학이자 인문학이라 해도 좋을 음반은 묻는다. 너의 자화상은 어떠하냐고, 어떤 자화상을 만들어가고 있느냐고. 혼자 들으며 스스로 답할 일이다.

*필자 사정으로 글이 하루 늦어진 점 독자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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