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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이제 그만 헤어져] 혁명을 꿈꾸는 것도 안되는가

1. 부활한 ‘막걸리 보안법’

국가보안법의 별명 중 하나가 ‘막걸리 보안법’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국가보안법 적용상에서 나타난 인권 실태>(2003)에 나타난 실태를 보자.

△ 1969년 피고인 김쌍근(직업:구두닦이)은 파출소에 연행되어 방범대원 등 6명이 있는 자리에서 “박○○ 도당 개새끼다. 김일성 동무를 지지한다. 김일성은 참 정치를 잘한다. 내가 이렇게 잡혀올 줄 알았다”고 발설하여 북괴를 찬양하였다. (69고38279 반공법 위반, 재판결과 징역2년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
△ 1968년 요리사인 김종천은 파출소에 연행되자 “선량한 국민을 왜 못살게 구느냐. 공화당은 공산당만도 못하다. 공산주의가 민주주의보다 살기 좋으니 북한으로 가겠다”고 한 일로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2심에서 집행유예로 출소했다.
△ 피고인 이득춘(직업 다이야 공원)은 주석(酒席)에서 “이북에는 김일성이가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은 거짓투성이다. 박○○는 쏴 죽여야 한다. 이북으로 가자”고 고함을 치는 등 북괴에 동조하였다. (69고46201 반공법 위반사건, 재판결과:1심 징역8월 자격정지 8월, 2심 징역8월 집행유예 2년)

누군가 “다 옛날 일이다”라고 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라 답하고 싶다. 바로 2017년에 벌어진 <노동자의 책> 사건이야 말로 막걸리 보안법이 되살아난 사건이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 이진영 대표 무죄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노동자의 책>에 게재된 사회과학서적이 전시되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거나 사료로써의 의미가 있는 책이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 이진영 대표 무죄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서 <노동자의 책>에 게재된 사회과학서적이 전시되고 있다. 시중에 판매되거나 사료로써의 의미가 있는 책이다.ⓒ정병혁 기자

2. <노동자의 책 사건> 개요

이 사건의 사실관계는 비교적 간단하다.
80년대 대학교를 다닌 이진영씨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서 자본주의를 폐절하고 대한민국에 혁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어떻게 혁명을 하자고 구체적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80~90년대 사회 변혁을 추구하였던 인문사회과학적 고민과 사상들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고, 그 결과 <노동자의 책>이란 인터넷 사이트(www.laborsbook.org)를 만들어 80~90년대 사회주의나 노동운동에 관련된 각종 사회과학 서적이나 출판물 3,979종을 pdf 파일 형태로 업로드하여 일종의 ‘전자도서관’을 만들었다. 대부분 절판된 책이었다. (이진영씨가 왜 <노동자의 책>사이트를 만들었는지는 해당 사이트 취지문에 잘 나온다.)

<노동자의 책>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4천여종의 출판물에는 북한에서 발간된 소설이나 책이 있었다. 검사(수사 조아라(曺娥羅) 검사, 공판 신동원 검사)는 이걸 걸고 넘어졌다. “이진영씨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북한을 찬양·고무·선전·선동할 목적으로 이적표현물 74종을 소지·반포·판매했다”면서 이진영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으로 처벌하려고 했다. 그런데 검사의 주장은 터무니없었다. 바야흐로 21세기가 되고도 17년이 지났는데, 검사가 이렇게 억지를 부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3. 혁명을 꿈꾸면 안되는가? 왜 사람의 양심과 내면을 심판하려 하는가?

사실 이 사건에서 이진영씨가 북한 서적이나 사노맹 문서들을 <노동자의 책> 사이트에 업로드 한 것은 핵심이 아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이나 다른 도서관에서도 거의 다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74종 중 사노맹 발행물 4종만 입수 불가능했다.)

핵심적인 문제는 검사가 이진영씨의 양심과 사상을 심판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검사는 일관되게 “이진영씨가 북한 책을 소지·반포한 내면의 목적을 봐야한다. 이진영씨는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하려고, 북한을 이롭게 하려고 이런 책들을 소지․반포한 것이다. 이진영씨는 북한의 주체사상에 동의하거나 혁명을 통해 국가변란을 일으키려는 사람이 틀림없다”라고 주장했다. 검사의 주장은 “당신이 막걸리에 취해 ‘대한민국은 거짓투성이다. 박○○는 쏴 죽여야 한다. 이북으로 가자’고 한 걸 보니,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사람이 틀림없다”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검사는 무슨 권한으로 한 사람의 양심과 사상을 심판하려 하는가? 이진영씨는 평소 주체사상에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진영씨가 주체사상에 동의한다고 해도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주체사상’ 대신 다른 용어를 넣어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자본주의에 동의한다”, “기독교사상에 동의한다”, “자유민주주의에 동의한다”, “신자유주의에 동의한다”, “아나키즘에 동의한다”, “모택동주의에 동의한다”.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왜 유독 “주체사상에 동의한다”만 금지되는가?

이에 대해 누군가는 “남북분단 및 군사적 대치 상황에서 온 국민이 사상적으로 통일되어야 전쟁이 나도 북한을 이길 수 있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상적 통일’을 가장 강조한 사람은 바로 히틀러다.

검사는 무슨 권한으로 혁명을 꿈꾸는 자를 처벌하려 하는가? “이놈의 세상, 확 뒤집어져야 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가? 프랑스 혁명에 동참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처벌’되어야 하는가? 1894년 3월에 봉건체제를 개혁하기 위하여 1차로 봉기하고, 같은 해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들은 ‘범죄자’인가? OECD 자살률 1위, 산재사망자 1위, 노인빈곤율 1위, 가계부채 1위의 대한민국에서 혁명이 필요하다고 하면 왜 안되는가?

누군가 “나는 주체사상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한다면, “당신의 사상은 존중하나, 하나도 매력없소”라고 말할 것 같다. 또한 누군가 “나는 혁명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면, “당신의 생각은 존중하나, 공허하게 들릴 뿐이오”라고 말할 것 같다. 물론 상대방은 필자에게 매력이 없고, 공허하다고 말할 수 있고,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양심과 사상은 토론 또는 무시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 이진영 대표 무죄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 이진영 대표 무죄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정병혁 기자

4.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이 사건은 여러 가지 ‘억지’ 에피소드를 남겼다.

▷ 검사는 전체 3,979종 중 74종이 ‘이적표현물’이라고 기소하면서, 나머지 3,900여종은 ‘체제전복의 진정한 의도를 숨기기 위한 위장’이라고 주장했다. 어찌되었든 간에 검사의 눈에 이진영씨는 ‘범죄자’였다. (구속영장 청구 단계에서는 파울로 프레이리 「페다고지」, E.H 카 「러시아 혁명」, 마르크스 「독일이데올로기」등 고전 서적도 ‘이적표현물’이라 하였으니, 교양이 부족했던 것 같다.)
▷ 검찰이 이진영씨를 수사한 이후 여러 단체들이 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는데, 언젠가 범민련 누군가 참석한 적이 있다. 검사는 “기자회견에 범민련 소속 사람이 온 걸 보면 이진영은 북한을 동조하는 사람인 걸 알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진영씨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 이진영씨 이메일 기록 중 ○○○에게 보낸 것이 있었다. 검사는 ○○○이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했는데, 사실은 동명이인이었다. 이진영씨는 검사가 말하는 ○○○을 전혀 알지 못했다. (동명이인 두 사람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난다.)
▷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반포’란 이적표현물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배부하여 지득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이다. 이진영씨는 수신자를 1명으로 해서 그 사람한테만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는데, 검사는 그 이메일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첨부파일을 보내면 결국 반포가 된다면서, “1사람한테만 이메일을 보내도 반포다”라고 우겼다. 이메일을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보내든 말든 그건 그 사람의 행위이지, 이진영씨의 행위가 아니다. 검사는 ‘행위책임의 원칙’이라는 형법의 기본도 가볍게 무시했다.
▷ 검사는 인터넷을 통한 확산 용이성에 비춰보면, <노동자의 책> 사이트가 국가안보에 큰 위협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학생과 일반 네티즌들에게 이 씨가 게시·반포한 이적표현물들이 지속적으로 유포되게 방관하는 것은 우리사회에 끼칠 해악이 너무도 크므로 조속한 격리가 필요하다.”면서 구속을 청구했다. 그런데 <노동자의 책> 사이트는 2002년부터 시작되었고, 2010년경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검사의 말대로라면 공안기관이 그토록 위험한 사이트를 십 수년간 몰랐다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남부지검은 2014년에 내사에 착수했는데, 2016년에서야 압수수색을 하고 2017년에서야 기소를 했다. 그토록 위험한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에게 2년의 시간을 준 것이다.

검사의 억지스럽고 모순된 주장을 대응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었다. 동시에 “도대체 왜 이렇게 무리한 주장을 하면서까지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려 할까?”란 의문이 들었다. 정말로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진실로 국가안보를 염려한다면,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부정부패자들에 대해 수사하고 처벌하는게 더 절실한 것은 아닐까? 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까?

5. 더 이상 국가보안법은 안돼

시대가 변하면서 <노동자의 책> 사이트에 올라온 대부분의 책은 역사적 사료로써의 의미가 더 강해졌다. 그러나 이진영씨의 개인적 양심과 사상은 ‘국가보안법’에 의해 발가벗겨 진채로 심판대에 세워져야 했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증거도 없이 사실을 꿰맞추는 검사의 주장은 ‘억지’였고 ‘모순’이었다. 검사가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아랑곳 하지 않은채 서슴없이 “이진영씨의 내심의 의사는 이러저러 한 것이다”라고 함부로 발설하는 모습은 분노스러웠고, 고장난 레코드처럼 “북한은 언제나 남침 야욕을 불태우고 있다”는 식의 냉전시대에나 통용되었을 법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비애를 느끼게 했다.

시대는 달라졌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은 과거의 망령을 끊임없이 소환하는 힘을 준다. 그리고 언제든 국가권력이 양심과 사상을 심판대에 세울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한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도 국가안보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확신한다. 사람을 괴롭히기만 하는 이런 악법은 철폐하는 것이 답이다.

김종보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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