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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안.여.돼’에서 총여학생회장까지, ‘영페미’의 고군분투 생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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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퇘지(메갈리아+돼지)’는 정말 ‘쿵쾅’거릴까? 온라인에선 “그렇다”더라. 그래서 직접 만나봤다. 그리고 들어봤다. 1970년대 만화 ‘똘이 장군’을 보며 이마에 뿔 달린 북한 사람을 혐오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페미니스트(페미)를 자처한 20대 여성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당당해서 멋진 ‘영페미’ 성임은(26)씨를 지난달 27일 만났다.

회사에서 '월경 콘서트'를 진행 중인 성임은 씨
회사에서 '월경 콘서트'를 진행 중인 성임은 씨ⓒ성임은 제공

임은씨는 며칠 전 신상 털이 전화를 받았다며 한숨을 내뱉었다. 모교인 동국대에서 ‘총여학생회 폐지 총투표’가 있던 날 열린 ‘총여 폐지 반대 비회원 집회’ 진행을 맡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상대방은 욕설을 퍼붓고 “회사가 어디냐”고 집요하게 물었다. “온라인에서만 겪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오니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성격이) 무딘 편이라.. 그냥 잊으려고 해요. 바쁜데 그것까지 일일이 신경 쓸 수 없잖아요” 그는 담담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임은씨는 지난해 총여학생회장으로 활동했다. “혐오의 끝판 왕이었죠. 하하” 2015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여성들은 혐오의 표적이 됐다. 여성들이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하자 시작된 백래시(backlash. 사회·정치적 변화로 기존에 있던 자신의 영향력과 권력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반발)였다.

‘세 줄로 요약 좀’ 총여학생회 온라인 게시 글에 가장 많이 달린 댓글이다. “대화가 불가능했어요. 당시(총여학생회장)에는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웃으면서 설명하려고 노력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어요” 여성들의 언어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어디 여자가 나대냐’는 생각이 밑바탕이었던 것 같아요. (말하는) 위치에서부터 약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장애물이 많았죠”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 깃발
동국대학교 총여학생회 깃발ⓒ동국대 총여학생회

‘안.여.돼’에서 총여학생회장으로

“‘안.여.돼(안경+여드름+돼지)’는 안돼여~” 임은씨는 친언니로부터 상습적인 언어폭력을 당했다. 그는 “언니는 주류의 삶을 살지 않는 동생을 걱정했지만, 언니에게 받은 억압이 컸다”고 고백했다. “외모에 대한 자기 비하가 심했어요. 제가 저를 보는 게 무서워 거울도 못 봤어요. 머릿속엔 이상적인 외모가 있는데, (제 외모는) 그에 부합하지 않았으니까요”

“저도 처음엔 앞에 ‘여’자가 붙는 총여학생회가 무서웠어요” 새내기 시절 그는 소속감에 대한 갈망으로 학생회를 시작했다. “2학년 말쯤 학생회에서 알게 된 언니가 총여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못 하겠다고, 미안하다고 하려고 나갔는데 언니가 너무 힘들어보여서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우연히 접한 페미니즘을 통해 임은씨는 지독한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역시 입문은 페미계의 바이블, 여성학자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었다. “멋있었다. 내가 아니라 사회가, 구조가, 가부장제가 문제라고 말한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었구나, 이대로도 괜찮구나,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생각하게 됐죠” 그는 그렇게 코르셋을 벗고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딛었다.

“총여하면서 ‘월경 축제’ 때가 제일 재밌었어요” 그동안 말하기가 터부시됐던 월경을 공론화시키고, 다양한 몸과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해보자는 취지였다. ‘여성의 몸 그리기’를 통해 털이 많거나 유방이 없는 등 실제 여성의 몸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고, ‘코르셋 나무 만들기’를 통해 일상 속에서 숨 막히게 하는 코르셋을 떠올렸다. ‘신체 자기 결정권 선언문’을 작성함으로써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외쳐보기도 했다.

2017년 동국대 총여학생회 '월경 축제' 사업 현장
2017년 동국대 총여학생회 '월경 축제' 사업 현장ⓒ동국대 총여학생회
2017년 동국대학교에서 간식사업을 진행 중인 당시 총여학생회장 성임은씨와 부총여학생회장 나한지씨
2017년 동국대학교에서 간식사업을 진행 중인 당시 총여학생회장 성임은씨와 부총여학생회장 나한지씨ⓒ동국대 총여학생회

“사라져” “죽어버려” 부정당하는 삶

총여학생회장을 했던 1년, 임은씨는 자신을 ‘우울 혐오증’에 걸렸다고 표현했다. “우울해지려고 하면 템포를 올렸어요. 작년엔 신나는 노래만 들었어요. 우울함을 느끼면 정말 불행해질 것 같아서 행복한 척 연기했어요” 그는 임기를 마치고 심리 상담을 20회 가량 받았다. 그가 묻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화가 너무 많이 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울증 걸린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건강하기란 어려운 상황이었다. “사라져”, “죽어버려”는 양호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매일같이 들어야 했다. 온라인에서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공격은 오프라인의 삶도 무너뜨렸다. 강의실 뒷자리에 남학생이라도 앉으면 식은땀부터 흘러내렸다. 학생 식당은 꿈도 못 꿨다. 그들의 존재는 부정되고 훼손됐다.

외부로부터 공격받는 상황 속에서 안정과 의미, 행복을 찾아야 했다. “생존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어요. 당시 집행부에 (차별과 혐오로) 아픈 친구들이 많았어요. 분위기가 처지면 (백래시에) 지는 것 같으니까 ‘괜찮다’ 금방 지나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었죠. 그러다보니 제 감정을 잘 보지 못하게 됐어요. 내가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몰랐죠”

“아프지 않으려고 총여를 했는데 아프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우리 손으로 (총여를) 없애는 것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런데도 임은씨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뭐였을까. “(문제를) 내버려 둬도 아픈 건 마찬가지니까. 해도 아프고 안 해도 아프다면 똑똑하고 멋진 ‘영페미’들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동국대 '총여 폐지 반대' 여학생총회 포스터와 총여 백래시 연말정산 포스터
동국대 '총여 폐지 반대' 여학생총회 포스터와 총여 백래시 연말정산 포스터ⓒ동국대 여학생총회 성사단 '여쏘공'
동국대 '총여 폐지 반대' 여학생총회 현수막
동국대 '총여 폐지 반대' 여학생총회 현수막ⓒ동국대 총여학생회

‘여성의 정치’를 위해
총여는 여전히 필요하다

대학 내 총여학생회는 왜 필요할까? “여성들이 정치할 수 있는 기구이기 때문에 필요해요” 그의 대답은 간결했다. 임은씨는 “질문하는 위치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설명해도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더라고요. 그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질문을 던지기로 했어요. 권력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억압이 될 수밖에 없어요”

‘여성들이 왜 정치해야 하나’, ‘사회가 평등하지 않다고 보는가?’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총학생회 산하 성 평등 위원회로 충분하지 않냐’는 그들의 논리에, ‘매년 이뤄지는 선거에서 당선자의 성향과 의지에 따라 소수자 의제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충분치 않다’는 답을 하며, 그들의 논리를 따라갈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입장에서 논의의 흐름 자체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최근 대학 내 총여학생회가 재학생 총투표를 통해 폐지되고 있다. 사실상 서울 내 마지막 총여였던 동국대 역시 지난달 21일 폐지 절차를 밟았다. 이에 임은씨는 “숫자의 논리로 소수자의 가치를 무시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총여는 젠더권력 속에 약자의 위치에 있는 여성을 위해 마련된 기구입니다. ‘소수자를 위한 기구’라는 특수성과 독자성을 가지고 탄생했는데,다수가 이를 민주주의라는 절차만을 빌려 부정하고 있습니다”

총학생회 등 남성 중심 단위가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문제 제기는 통하지 않았다. 임은씨는 ‘여성의 정치’를 강조했다. “내 의도를 어떻게 관철시킬까 고민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에요. 여성에게 정치는 낯선 개념이잖아요. 뭘 해도 여성으로서의 위치는 꼭 지켜야 하니까 그 전형성이 걸림돌이었죠. (여성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고, 실현시켜보고, 책임져보고, 그런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어요”

“저도 ‘날 무시하면 어떡하지’란 생각에 말하기 전에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낯설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총여학생회장하면서 남성의 것으로 상정된 정치를 내 방식으로 해보니 정말 짜릿했어요. 실패든 성공이든 무언가를 해보고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네, 내가 이런 것을 너무 잘 하네’를 느껴봤으면 좋겠어요. ‘여성의 말하기’가 많이 필요해요”

'페미니스트 선언'에 참여한 성임은씨
'페미니스트 선언'에 참여한 성임은씨ⓒ동국대 총여학생회

‘자연사’가 소원이에요

임은씨는 졸업 후 동물 실험을 하지 않고 식물성 원료로 콘돔·생리컵 등 섹슈얼 헬스 케어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다. 평소 동물권에 관심이 많았던 탓이다. 학교 바깥에서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계속됐다.

“회사에서 동물 실험을 대체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어요. 대체 실험으로 안전성을 검증하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실험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식약처와 정부는 동물 실험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해요”

“콘돔·생리컵 이외에도 이른바 ‘여성 청결제’로 불리는 제품도 팔아요. 하지만 저희는 ‘외음부 세정제’라고 부르죠. 여성 청결제라는 명칭 자체가 여성은 항상 청결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비롯됐어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외음부 세정제라고 검색하지 않잖아요.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것부터 어려움이 있죠. 저희 제품에는 많은 가치가 집약돼 있어요”

무엇보다 그는 회사에서 ‘성임은’ 그 자체로 있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제가 어떤 모습이든, 뭘 하든 서로를 존중하는 사내 문화가 있어요. 오히려 총여 때보다 더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사람과 만날 때 꾸밈새가 필요 없다는 것을 배웠어요. ‘노브라’까지 시도해봤다니까요”

페미니스트를 자처한 임은씨는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 “자꾸 제동을 걸게 되요” 그의 가슴 한편에는 ‘혐오의 끝판 왕’ 시절이 뿌리 내려있었다. “그 때 전 (병이 든) 저를 못 봤는데, 지금도 못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서도 임은씨는 웃어 보인다. “아무 일 없었으니 아무 일 없을 거에요” 그의 소원은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자연사’ 하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맞고, 죽임을 당하는 세상에서 참 어려운 일이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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