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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전후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 가토 슈이치 ‘언어와 탱크를 응시하며’
가토 슈이치 ‘언어와 탱크를 응시하며’
가토 슈이치 ‘언어와 탱크를 응시하며’ⓒ돌베개

“언어는 아무리 날카로워도 또한 아무리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도 한 대의 탱크조차 파괴하지 못한다. 탱크는 모든 목소리를 침묵하게 만들 수 있고 프라하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프라하 길거리에 있는 탱크의 존재, 그 자체를 스스로 정당화하는 일만은 불가능할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어떻든 언어가 필요하다. 언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가지고 해야만 한다. 1968년 여름, 보슬비에 젖은 프라하 거리에서 마주 서 있던 것은 압도적이지만 무력한 탱크와 무력하지만 압도적인 언어였다. 그 자리에서 승패가 정해질 리 없었다.”

1968년 여름, 소련군 탱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를 침공해 ‘자유의 외침’을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그 탄압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일본의 지식인 가토 슈이치(加藤周一)는 ‘언어와 탱크’라는 글을 통해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했다.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 가토 슈이치는 지난 2008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문학·사상·예술·역사·정치 등 전방위 분야에서 예리하고도 깊이 있는 저술 활동과 발언을 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에 대한 생생한 논평인 ‘언어와 탱크’를 비롯해 1946년에 발표한 격렬한 외침 ‘천황제를 논하다’부터 일본 문화의 습속을 통찰한 ‘일본 문화의 잡종성’, 일본 정치의 교묘한 ‘말 바꾸기’ 수법을 갈파한 ‘교과서 검열의 병리’, 헌법 9조를 지키는 ‘9조 모임’을 이끌며 만년에 발표한 ‘다시 9조’까지 가토 슈이치가 일본과 세계 정세에 대해 무슨 생각과 어떤 발언을 계속해 왔는지 조감하는 논고들을 한 권에 모은 ‘언어와 탱크를 응시하며’가 출간됐다.

침략전쟁과 패전이라는 실패의 경험을 곱씹으며 일본 사회를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어 가고자 했던 정신, 이를 통해 ‘인권’, ‘민주주의’, ‘평화’라는 ‘인간적’인 보편 가치를 사회 전체에서 실현해 가겠다는 이상주의의 시대를 ‘전후 민주주의’라 부른다. 이때 등장한 일본 전후 지식인들을 대표하는 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토 슈이치다. 당시 지식인이라 나섰던 이들 다수가 체제에 편입되어 냉소와 회의로 돌아섰지만, 가토 슈이치는 흔들림 없이 평화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일관되게 주장했고 헌법 9조를 지키는 운동에 만년의 나날을 바쳤다.

가토 슈이치는 전후 일본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날렸다. 가토 슈이치는 전쟁의 원인이 천황제 자체에 있다고 밝히고 말했다. 그는 1946년 ‘천황제를 논하다’에서 “나는 결론짓는다. 천황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그것도 가능한 한 빨리 그만두어야만 한다. 나는 봉건주의의 암담한 황혼에, 인민과 이성과 평화가 찾아올 아침을 향해 소리친다. 무기여, 천황제여, 인민의 모든 적이여, 잘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11년 후에 발표한 ‘천황제와 일본인의 의식’(1957)에서 천황 개인에 관한 일본인의 태도와 감정을 분석 시도한다. ‘천황제와 종교의식’을 설문해 ‘천황에 대한 네 가지 사고방식’을 추출해 고찰한다. 그는 메이지유신 이래 천황제는 ‘권력의 지배기구’였으며 전쟁의 천황 책임을 단언한다. 나아가 그는 일본 ‘대중’의 천황 개인에 대한 감정으로부터, 천황과 신민이 각각에게 기대되고 있던 역할을 연기했다는 가설을 세운다. ‘천황제’를 ‘대중 내부에 침투해 있는 무엇’으로 파악하면서 일본의 정신사적 고찰을 시도한 것이다.

전쟁을 방관했던 일본의 지식인들을 가차 없이 들추었던 가토 슈이치의 지식인론은 ‘전쟁과 지식인’(1959)에 총괄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가토는 많은 지식인들이 ‘파시즘 권력’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인 전쟁 지지자들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든 적든’ 자진해서 전쟁에 협력했다는 점을 논파한다. “우리의 자유가 완전히 박탈당한 후에는 어떤 항의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한다면, 자유를 빼앗겨 가는 과정 어딘가에서 항의가 필요하고, 또한 가능하며, 그것에 의해 마침내 자유를 완전히 잃게 될 과정의 진행을 막을 수도 있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을 것이다.”

또 언어에 민감한 가토 슈이치에게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역사의 은폐와 말살이며, 언어의 ‘말 바꾸기’에 의한 ‘시나브로’ 수법이다. ‘위기의 언어학적 해결에 관하여’(1981)와 ‘교과서 검열의 병리’(1982)에서 그는 일본 사회에서 항상 정치권력과 결탁된 자들에 의한 매스미디어에서 ‘위기’가 부추겨지고, 이런 ‘위기’의 ‘해결법’으로 즐겨 ‘언어학적 대책’이 발휘됨을 지적한다. ‘패전’을 ‘종전’으로, ‘점령군’을 ‘진주군’으로, ‘침략’을 ‘자위’로, 정부 각료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개인 자격’으로 전도하는 등 말 바꾸기 수법은, 최근 한국 대법원의 ‘한국의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 판결’이 나온 이후 일본 정부가 ‘징용공’을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바꿔 부르는 것에서 보듯 고질적이다. 가토 슈이치는 이러한 ‘언어학적 대책’(인상 조작)이 일본 정치권력의 존재양식과 때에 따른 정책적 선택과 논리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가토 슈이치의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죽는 날까지 계속됐던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은 오늘의 일본을 향해, 나아가 오늘의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2012년 ‘전후 레짐 탈각’, ‘일본을 되찾자’를 슬로건으로 출범한 2차 아베 신조 내각의 ‘전체주의화’는 계속 되고 있다. 아베는 자신의 임기말을 앞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헌법 9조의 부전(不戰) 조항을 무효화하는 개헌을 실현하겠다고 공공연히 발언하고 있다. 서경식 도쿄대 교수는 이 책 추천사를 통해 이대로 가다가는 “아베 정권의 반동화 프로젝트는 완성되고 끝내 ‘전후 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무덤에 들어가게 될 것”아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중과 매스미디어, 지식인층까지도 휩쓸린 이 조류를 사회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역병’이라 칭한다. 이 역병으로 “일본은 ‘감시사회’ ‘치안국가’로 굴러 떨어지고, 그 대신 이익과 힘만이 신봉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 또한 이런 진단에서 그리 안전하지 않다. 오늘 우리가 가토 슈이치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녕 ‘일본’을 이해하는가. 고정되고 본질화한 ‘일본상’을 만들어 그것을 찬미하거나 동일화하거나, 반대로 무조건적으로 부정하고 자기만족에 그치고 있지는 않은가. 역사적 문맥으로 일본을 비판적으로 파악하고 그 부정적 측면을 극복해가야 한다면, 스스로 ‘일본’이라는 난문에 맞섰던 가토 슈이치의 명석한 시선은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는 데 큰 창이 될 것이다. 서경식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인간’은 이제 풍전등화다. 하지만 그 가치를 포기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 이 가치를 옹호하는 것은 보편적 요청이며, 그 요청은 우리들 한민족에게도 향해 있다. 가토 슈이치가 남긴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우리가 인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다. 그것은 동시에 전 세계가 현재와 같은 기세로 점점 더 비인간적 차원으로 전락해 가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저항인 것이다. 가토 슈이치라는 지적 자산은 인류, 즉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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