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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번호 미리 따놓고 전자배당인 것처럼, ‘통합진보당 소송’ 배당 조작 드러났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의 구속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의 구속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 전자배당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4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박병대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의 구속영장에 이 같은 내용을 적시했다.

전자배당 조작 의혹이 제기된 재판은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 이후 의원 자격을 박탈당한 통합진보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국회의원 지위 확인 소송 항소심이다.

법원행정처는 이 사건 항소심이 접수되기 전인 2015년 12월 초 당시 심상철 서울고등법원장에게 “법원행정처가 관심이 많은 사건”이라며 김광태 당시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던 서울고법 행정6부에 사건을 배당하도록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 요구대로 행정6부에 배당됐다. 법원행정처는 김 부장판사를 ‘대화가 가능한 우호적인 판사’로 분류해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배당 조작은 치밀하게 이뤄졌다. 항소심 접수 전부터 해당 사건에 대한 사건번호를 미리 부여해두고, 다른 사건들과 함께 전자배당을 할 때 통합진보당 사건이 순서에 따라 행정6부에 배당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외관상으로는 평범한 전자배당 형식을 띠었기 때문에 법원 내에서는 특이사항을 인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검찰 관계자는 “사건이 접수되면 접수된 순서대로 사건번호를 따는데, 특정 사건에 번호를 (임의로) 부여하는 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법원행정처가 이러한 방식으로 우호적인 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재판부에 사건을 임의 배당하도록 한 뒤, 의도대로 배당되고 나면 해당 재판장과의 교감을 통해 밀실에서 판결을 통제하는 구조가 가능했던 것이다.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 외에 다른 사건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 관계자는 “재판부 배당을 임의로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심각한 내용이라 (추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 1심 재판 과정에서도 법원행정처의 개입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1심을 맡았던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반정우 부장판사)는 2015년 11월 판결 선고 전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은 법원에 있다”는 취지의 법원행정처 지침을 전달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헌재 결정을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소송을 각하했고,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은 “어떻게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냐”며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훈 기자

법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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