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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파리 : 거리를 채운 건 68혁명의 낭만이 아닌 ‘절망’이었다
개선문 주변에서 프랑스의 폭동진압 경찰이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2018.12.1
개선문 주변에서 프랑스의 폭동진압 경찰이 노란 조끼를 입은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다. 2018.12.1ⓒAP/뉴시스

편집자주/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항의한 시위는 지난 주말 ‘절정의 폭력’으로 번졌다. 파리에서는 1968년의 혁명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소요사태가 벌어졌다. 프랑스 정부가 유류세 인상을 잠정적으로 취소했지만 시위가 가라앉을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22년 간 프랑스에서 거주해 온 저널리스트가 가디언에 보내온 기고문을 소개한다. 존 리치필드는 이 글에서 지금 거리를 메우고 있는 건 1968년의 낭만이 아니라 좌절과 분노라고 지적했다. 원문은 Never before have I seen blind anger like this on the streets of Paris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랑스는 대중의 폭력에 의해 수립된 공화국이다. 프랑스보다 ‘거리의 정치’가 많이 이뤄지는 서구 민주주의는 없다.

나는 지난 22년 동안 프랑스에서 살았고 수많은 거리 시위를 목격했다. 노동자, 농민, 와인 생산자, 트럭 운전사, 철도노동자, 대학생, 입시생, 교사, 다인종이 거주하는 교외지역의 청년, 요리사, 변호사, 의사와 경찰들의 시위 말이다. 그렇다. 프랑스에선 경찰들도 거리로 나온다.

하지만 지난 12월 1일 파리의 가장 번듯한 거리에서, 그리고 내가 있던 곳 주위에서 이뤄진 고의적인 파괴같은 것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무차별적이고 히스테리에 가까운 분노를 실은 채, 그리고 진압경찰을 향해서만이 아니라 개선문과 같은 프랑스 공화국의 상징물을 향한 폭력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12시간 이상 지속됐던 전투는 시위나 폭동을 넘어, 내란 또은 내전을 방불케 했다.

1968년 노동자와 학생들의 5월 혁명 이후 파리 시내에서 이 정도의 폭력이 벌어진 적이 없다. 당시엔 가장 심하게 폭력적이었던 건 경찰이었다.

프랑스 전체로 넓혀봐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프랑스 마을과 도시 교외 지역의 대부분을 강타했던 2005년 소요사태 이후 이런 대대적인 파괴 행위가 벌어진 적은 없다. 그러나 2005년에는 도시 외곽에 있는 빈민촌에서의 폭력이 부유한 프랑스 도시들의 시내로 번지지는 않았다.

지난 토요일의 광경은 이와 매우 달랐다. 대체적으로 평화 시위를 벌이는 “노란 조끼” 운동의 일부가 프랑스 수도의 가장 부유하고 웅장한 지역을 때려 부순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전 이 운동이 시작됐던 SNS에서는 이번 주말에 다시 한번 파리를 공격하자는 주장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1968년과도, 2005년과도 다르다

비싼 유가 때문에 한 달 전에 시작된 평화 시위가 어쩌다가 마크롱 대통령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정치체제 전체에 대한 적대감을 불러일으켰을까?

어떤 분석가들은 노란 조끼(yellow vests; gilets jaunes)를 파시스트 폭도로 낙인 찍고 그들을 “노란 셔츠”(yellow shirts; 이건 파시스트에게 붙이는 딱지다. 나치는 브라운 셔츠라 불렸다)라 불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는 위험하고도 오해를 부추기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노란 조끼의 극단적인 일부가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모든 민주주의 제도, 성공과 부의 모든 상징들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토요일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의 대부분이 백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 운동은 인종차별주의나 극단적 민족주의의 색채를 띠고 있지는 않다. (‘노란 조끼’에는 흑인과 유색인종도 많다.)

노란 조끼 운동은 대체로 실제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을 겪으며 번영하는 ‘도시’들로부터 멸시받고 착취당한다고 주장하는 프랑스의 주변부와 중간 계급을 대변하고 있다. 이건 어느 정도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시위 다음날 개선문의 낙서를 지우는 노동자. “마크롱 퇴진”이라는 글씨가 스프레이로 적혀있다. 2018.12.2
시위 다음날 개선문의 낙서를 지우는 노동자. “마크롱 퇴진”이라는 글씨가 스프레이로 적혀있다. 2018.12.2ⓒAP/뉴시스

일부 프랑스 언론은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극우와 극좌 세력이 침투해 토요일의 시위를 주도했다고 하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에투알(Etoile)과 그로부터 뻗어나가는 대로들에 모여 있던 5000여 명의 사람 중에는 일부 복면을 쓴 청년들이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내가 보기에 대다수의 시위자들은 프랑스 북부와 서부 농촌 지역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파리 외곽의 교외 지역에서 온 30대와 40대 남성과 일부 여성이었다. 이들이 전투를 치를 복장과 무기를 갖추고 파리에 집결한 것이다.

2018년 폭동과 학생들이 중심이 되었던 ’68 혁명, 그리고 2005년의 파리 교외 소요사태는 비슷한 점이 꽤 있다. 이 세 사건에는 뚜렷한 지도자가 없었다. 명확하고 광범위하게 합의된 정치적 목표나 선언문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 세 사태의 유사성은 이것으로 끝난다.

’68혁명에는 뭔가 ‘신나는’ 측면이 있었다. ’68 혁명은 자본주의만큼이나 권태로웠던 2차 대전 이후의 사회적 보수주의(social conservatism)에 대한 반란이었다. 여기에 노조들이 개입했고, 보편적인 임금 인상과 여름 휴가 제공으로 혁명이 마무리 됐다. 무엇보다, 1968년은 프랑스가 경제적으로 번영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2018년에는 다르다. 프랑스 일부가 번창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이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2005년 소요사태는 경찰의 폭력과 경제적 박탈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당시 일부 프랑스와 외국 언론은 이 사태가 종교-정치적 “인티파다(intifada)”라 주장했지만 절대 그렇지는 않았다. 젊은 참가자들은 분노를 다 푼 후 각자의 일상생활로 돌아가 버렸다.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는 폭동진압경찰. 2018.12.1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는 폭동진압경찰. 2018.12.1ⓒAP/뉴시스

파리는 다시 불타오를 것이다

노란 조끼의 요구는 다양하지만 모두가 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노란 조끼의 요구는 다음 달로 예정돼 있는 유류세 인상 계획의 폐지부터 마크롱 탄핵 국민투표, 그리고 모든 법을 국민투표로 결정하도록 개헌을 하는 것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다.

노란 조끼에도 비공식적인 지도자와 대변인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들이 등장하자마자 다른 노란 조끼 세력이 이들을 거부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고 폭력적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노란조끼 세력의 일부는 마치 마오주의자들처럼 정치 그 자체를 너무 증오해 자신들 안에서도 정치인이 될 법한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노란 조끼는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를 만날 협상단을 꾸리기 위한 두 번째 노력을 금주에 할 것이다.

하지만 협상 의제들이 정리된다 하더라도 지난 주말에 파리 거리에서 봤던,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로 분노했던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파리는 다시 불타오를 것인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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