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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30년 동안 써내려간 노동자의 노래를 다시 부르다

음악인 김호철을 아시는지. 김호철과 그의 노래를 안다 하면 세대가 보인다. 최소한 30대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정치 성향도 보인다. 진보적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거나 했을 수 있다. 학생운동을 했거나 이런저런 사회운동에 참여했을 수도 있다. 김호철은 1980년대 중반부터 활동 중인 노동가요 전문 창작자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노동자라 하지 못하고 근로자라 부르던 나라

대부분의 성인이 자신의 노동을 팔거나 직접 가게/회사를 운영하며 살아가야 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노동자인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 노동자는 오래도록 자신을 노동자라 부르지 못했다. 대신 근로자라는 이름만 써야했던 나라에서 노동자는 인간답게 살기 어려웠다. 세계 최장 시간 수준의 노동시간, 부실한 임금, 위험한 작업환경뿐만 문제가 아니었다.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지켜지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아야했다.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찾고, 생존권을 보장받기 위해 싸우고 또 싸워야만 했다. 자본과 지배 권력이 한 패가 되어 노동자를 외면하고 짓밟을 때 노동자는 맨 몸으로 맞서고 버티며 죽어갔다. 1970년대부터 본격화한 한국의 노동운동은 1987년을 지나고 나서야 겨우 사회적 실체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 후로도 여전히 과격, 폭력, 집단 이기주의 등등의 누명을 감당해야 한다. 노동자임에도 스스로를 노동자라 말하지 않고,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를 짓밟는 이들의 편에 서는 이들이 훨씬 많은 나라. 자발적으로 노동자 정체성과 삶을 외면하게 만드는 나라에서는 노동을 더럽고 부끄럽거나 불온하게 여긴다. 자신의 권리를 찾는 일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는 노동과 예술의 거리도 멀다. 고상하고 우아하거나 세련되고 기발한 세계, 그러나 노동이 빠진 세계만 주목하는 나라에서는 노동이 예술이 되지 못한다.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음반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음반ⓒ박지영

그래서 김호철의 존재는 각별하다. 오직 그만이 노동가요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 외에도 여러 민중가요 뮤지션들이 노동가요라는 길을 함께 다지고 걸었다. 그럼에도 김호철이 각별하다 말하는 이유는 그가 만든 작품과 활동 때문이다. 그는 1984년 ‘쏘주’를 시작으로 1985년 ‘x에게’, ‘단순조립공’를 발표한 후, ‘노동악법 철폐가’, ‘노동조합가’, ‘단결투쟁가’, ‘딸들아 일어나라’, ‘잘린 손가락’, ‘파업가’, ‘구속동지 구출가’, ‘꽃다지’, ‘무노동무임금을 자본가에게’, ‘전노협 진군가’, ‘참사랑’, ‘포장마차’. ‘민중권력 쟁취가’, ‘민중의 노래’를 비롯한 수많은 노동가요를 만들었다. 노동자노래단, 노래공장, 박 준 등의 민중가요 뮤지션들이 부른 김호철의 노래는 노동가요가 드물었던 1980년대 중반부터 단순명쾌한 노랫말과 강력한 멜로디로 여기 노동자가 있다고 선언했다. 단순히 일하는 사람으로서 노동자가 아니라 사회적 계급으로서 노동자임을 깨닫고, 자신의 권리를 지켜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는 이들은 김호철의 노래를 품고 달려나갔다. 얻어맞고, 내쫓기고, 감옥에 끌려가더라도 노동자의 삶을 지키며 노동해방의 새날을 만들려 한 수많은 이들에게 김호철의 노래는 진군의 나팔소리였고, 승리의 낙관이었으며, 미더운 다짐이자 약속이었다. 김호철은 자신의 노래로 노동자의 피눈물과 웃음을 담으려 고군분투했고, 그 노래들 덕분에 노동자는 덜 죽고 덜 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노동자는 직간접적으로 김호철 노래에 빚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해외의 반문화에 열광하지만 정작 이 땅의 반문화는 드문 나라에서 노동가요와 민중가요는 가장 뜨거운 반문화로서 수많은 이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게 했다.

노동해방을 꿈꾸던 이들에게 각별했던 김호철
34년째 노래를 만들며 노동자들 곁에 서다

그렇다고 김호철이 자신의 노래를 통해 돈을 벌거나 유명해졌을 리는 만무하다. 애시당초 영화로운 삶을 꿈꾸지 않은 김호철은 34년째 노동자의 목소리로 노래를 만들 뿐이다. 모든 노동자의 꿈을 대변하지 않고, 음악적으로 새롭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그는 여전히 노래를 만든다. 그는 한결같이 노동자의 편에서 화살 같은 노래를 쏘아 올릴 뿐이다. 세상이 좋아졌다 해도 날마다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계속 싸워야 하는 나라에서 노동가요를 만들고 부르는 뮤지션은 여전히 적다. 표현의 자유를 주창하고 자유로운 예술혼을 강조하는 뮤지션들조차 주목하지 않는 노동자의 사랑과 삶과 투쟁.

그래서 노동자 곁에 우직하게 머무는 그의 노래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지 아는 이들은 최근 한 장의 음반을 내놓았다. 파업가 30주년을 기념한 김호철 헌정음반이다. 김호철의 가족이자 음악 동료인 황현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 자연스럽게 음반으로 이어졌다. 민중가요 진영의 보컬 곽경희, 김영, 김은희, 류금신, 문진오, 박란희, 박영순, 박은영, 박일규, 박준, 백자, 손병휘, 송순규, 엄광현, 연영석, 이광석, 이수진, 이혜규, 임정득, 정윤경, 정혜윤, 조성일, 지민주, 차준호, 최도은, 한선희가 노래했다. 4·16 합창단과 노동자 노래패들도 거들었다. 꽃다지의 음악감독 정윤경이 음악 감독을 맡았고, 민중가요를 잘 아는 연주자 고명원, 박우진, 신희준, 이소라, 이지은, 이찬욱, 이혜지, 장석원이 결합했다. 소식을 들은 이들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1,000여명이 힘을 더한 덕분에 순조롭게 제작 비용을 마련했다. 노래의 힘이자, 김호철의 한결같은 삶에 대한 뒤늦은 대답이었다.

김호철 헌정음반 공동 제작단 기획팀과 음악 감독 정윤경, 박은영 등은 2018년 7월부터 두 달 이상 선곡 회의를 진행했다.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고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면서 수많은 김호철의 곡 중에서 21곡을 추렸다. 그 후 제작단은 모든 녹음, 펀딩, 제작 과정을 조율하고 진행했다. 정윤경과 박은영은 고심하며 노래를 다듬었고, 참여한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하고 불렀다. 10년마다 한 번씩 나왔어야 할 헌정음반을 30년만에 완성했다.

[김호철 헌정음반]의 수록곡들은 김호철이 만들고 노동자들이 부른 노래에 배어 있는 김호철의 마음과 노동자의 더운 가슴을 생생하게 되살리는데 집중했다. 노동자의 절망과 열망과 분노를 기록한 원곡에 배어있는 정서를 복원하는데 집중한 음반은 원곡을 크게 뒤바꾸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래 전에 발표한 곡의 어법을 그대로 따라가지는 않았다. 원곡에 담은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간결하고 담백한 편곡을 더했다.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음반 녹음하는 뮤지션들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음반 녹음하는 뮤지션들ⓒ박성훈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음반 녹음하는 뮤지션들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음반 녹음하는 뮤지션들ⓒ박성훈

첫 곡 ‘꽃다지’는 피아노 반주만으로 처연한 정서를 담담하게 드러냈다. ‘파업가’는 선동적인 신디사이저와 드러밍에 대규모 합창으로 노동가요의 미학을 당당하게 펼쳤다. 이것이 김호철을 비롯한 노동가요 창작자들이 만들어낸 고유한 미학임을 자랑스럽게 선언한 대규모 합창곡들은 ‘전선은 하나’, ‘전노협진군가’, ‘구속동지 구출가’, ‘민중의 노래’, ‘또다시 앞으로’, ‘단결투쟁가’, ‘민주노조 사수가&노동악법 철폐가’, ‘깃발가’ 등의 행진곡에서 여전히 뜨겁다. 군가풍이라거나 거칠다는 비판으로 쉽게 폄하할 수 없는 노동가요의 어법을 변형하지 않은 이유는 이 노래들의 미학과 역사와 가치가 소중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음반의 행진곡 풍 노래들은 매끈하고 화려한 음악 언어에만 가치를 부여하고, 김호철의 노동가요에는 음악적 가치를 두지 않은 일군의 세태에 대한 묵묵한 반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노래 속에 계속 나오는 트럼펫 연주는 꾸준히 트럼펫 연주를 하면서 노동가요를 만들어온 김호철에 대한 묵묵한 존경처럼 느껴진다. 동료이자 선배인 창작자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그저 음악으로만 담아낸 것이다. 이 음반은 이 노래들이 유일무이한 노동가요의 어법이 아니라 해도 노동가요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김호철과 몇몇 노동가수에게만 물어서는 안 된다고, 김호철의 방식과 어법에 대해 재평가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파업가 30년의 역사 돌아보는 음반
다음의 역사는 누가 이을 것인가, 묻는다

전통적인 포크의 따뜻하고 섬세한 어법을 잘 구사하는 프로듀서 정윤경은 드럼과 건반의 단출한 연주로 ‘들불의 노래’에 담긴 서정성을 이끌어냈다. 김은희의 애틋한 목소리가 탁월한 곡 ‘공장 가는 길’은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노동자들의 삶과 슬픔을 잊지 않게 할 뿐 아니라 현재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김은희와 정혜윤이 목소리를 낮추고 예쁘게 부른 ‘희망의 노래’는 다정하고 정겨운 오늘의 위로로 되살아났다. 피아노와 현에 건반을 더한 ‘세월’은 김호철의 노래가 얼마나 깊고 서정적인지 일러준다. 연영석의 노래로 구수하고 질박하면서도 날렵해진 ‘단순조립공’은 이번 음반에서 가장 인상적인 곡 중 하나다. 민중가요 진영의 록 보컬 조성일은 로킹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와 함께 ‘포장마차’의 어법을 확장한다. 4·16 합창단이 부른 ‘노동은’은 김호철이 꿈꿔온 노동가요의 정신을 감동적으로 응축했다. 곡의 무게감과 굳건한 신념을 담백하게 복원한 ‘또 다시 앞으로’에서도 정윤경은 악기 소리가 보컬을 압도하지 않는 방식으로 곡의 뼈대를 온전히 전달한다. 다시 김은희가 부른 ‘힘들지요’는 따뜻하고 포근하다. 블루지하게 다시 부른 ‘잘린 손가락’과 서러움을 꾹꾹 누른 ‘가리봉 오거리’는 담백한 연주와 압도하지 않는 노래로 노동가수들의 지난 시간까지 되짚어 보게 한다.

파업가 30년의 역사는 김호철만의 역사가 아니다. 수많은 노동가수들과 노동자들이 함께 쓴 역사가 이 한 장의 음반에 담겼다. 기억과 현실과 삶의 총체로 생생한 노래들. 이제 젠트리피케이션을 기록하거나 여성의 삶을 담은 노래들로 이어지는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전투적인 정신과 노동가요의 고유한 가치와 미학이 이 한 장의 음반에 모였다. 김호철과 노동민중가수들이 여기까지 해냈으니 그 다음 역사는 다른 이들이 잇고 써야 하지 않을까. 이 음반은 지금 누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 말없이 묻는다.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음반 구매 사이트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음반 발매 안내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음반 발매 안내ⓒ박지영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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