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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는게 두려워” 세상 등진 30대 철거민의 마지막 편지
세상을 뜬 철거민 박 씨가 남긴 마지막 편지
세상을 뜬 철거민 박 씨가 남긴 마지막 편지ⓒ사진 제공 =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 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서울 아현2구역 철거민 박○○의 유서 중 일부)

현재 서울 마포구 아현 2구역은 재건축 사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이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던 30대 청년이, 11월 말 살던 집에 강제집행을 당한 후 거리를 떠돌다 지난 3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와 전국철거민연합 등은 서울 마포구 아현2구역 세입자 박 모씨(37)가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박 씨는 3일 오전 11시경 마포구 망원 유수지에 옷과 가방 유서 등을 남긴 채 사라져, 경찰이 수색에 나선 상태였다.

빈민단체들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 8~9월 동안 이루어진 2회의 강제집행으로 살던 집에서 쫓겨났고 어머니와도 헤어지게 됐다. 이후 그는 홀로 개발지구 내 빈집을 돌며 노숙인 생활을 해야했다. 그러다 지난달 30일 강제집행으로 임시로 살던 집에서도 쫓겨난 후, 3일동안 거리를 전전하다 끝으로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선택을 했다.

5일 오후, 빈민해방실천연대,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등 단체들은 서울 마포구청 앞에서 '마포 아현동 철거민 사망사건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참사 10주기를 한 달여 남긴 시점에서 발생한 박○○님의 안타까운 죽음은 살인개발이 불러온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단체들은 박 씨의 유서를 공개했다. 그는 편지 서두에서 "저는 마포구 아현동 572-55호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그런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다"라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했다.

박 씨는 극단적 선택을 앞두고도 어머니를 걱정하며, "어머니가 전철연(전국철거민연합) 회원과 고생하시며 투쟁중이라 걱정이다. 어머니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저희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달라"며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빈민해방실천연대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구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거민 박**씨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지난 4일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 한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18.12.05
빈민해방실천연대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는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마포구청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거민 박**씨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주장했다. 박씨는 지난 4일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 한강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18.12.05ⓒ사진 = 뉴시스

이날 기자회견에는 박씨의 어머니(60)도 참석했다. 그는 "임대주택 필요 없다. 나의 활력, 나의 전부를 잃었다. 임대주택 필요 없으니 내 외아들을 살려달라"며 울먹였다.

박 씨의 어머니는 "착하고 꿈도 많은 아들이었다. 형편이 안돼 가게를 하겠단 꿈을 들어주지 못했다"며 먼저 간 아들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했다. 또 "마지막 철거일인 11월 30일에 아들에게 5만원을 줬다. 추우니까 찜질방에 가 있으라고 당부했는데, 다른데 가서 3일 동안 엄마 걱정만 하다 죽은 것 같다"며 탄식했다.

이날 단체들은 박 씨의 죽음이 "아현2구역의 인·허가권자이자 관리·감독권자인 마포구청이 살인적인 강제철거를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용역들이 철거민을 폭력적으로 몰아붙였고, 강제집행 일부 시점엔 관리 감독을 하는 집행관이 없었고, 경찰과 담당 공무원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0월 30일에 120명의 용역들이 철거민의 집을 에워싸서 차단한 뒤, 폭력적으로 강제집행을 했다"며 "11월 1일엔 100명의 용역이 60대 철거민을 밀치고 90세 노인 철거민에게 10통이 넘는 소화기를 난사했다"고 말했다. 또 11월 1일의 강제집행이 서울시 공문과 다른 시기에 시작됐으며, 현장에 집행관도 없었고, 경찰, 담당 공무원, 인권지킴이도 없는 상황에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또 마포구청이 서울시의 공문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가 10월 29일, 11월 2일에 '강제철거 금지를 어긴 조합에 대해서는 철거 중지 및 인가 취소 행정조치를 취하라'는 공문을 마포구청에 보냈는데, 이를 받고도 구청 측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단체들은 '10여년 전 용산 학살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며 "지금도 변함없이 국가는 철거민들을 죽이고 있다. 용산참사 10주기를 앞둔 지금 살인적인 강제수용, 강제철거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원순 서울시장
박원순 서울시장ⓒ김철수 기자

한편,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박 씨의 죽음에 "책임을 통감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5일 빈민해방실천연대는 마포구청에서 유 구청장과 면담을 가졌으며, 이 자리에서 아현 제2구역의 재건축 강제 철거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면담에 참석했던 최영찬 빈민해방실천연대 위원장은 "유 청장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현장을 점검하고 용역도 빼겠다고 약속했다. 지켜 봐야 하겠지만 일단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현재, 박 씨의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동신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상태다. 유 구청장은 5일 밤 9시 30분 경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유가족 등과 10여분간 면담을 한 후 침통한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5일 밤 7시50분쯤 수행원 1명만 대동하고 빈소를 찾았다. 조문을 하고 유가족을 위로한 그는, 빈소에 있던 전철연 회원 30여명과 아현 2구역 재건축 강제철거 문제를 논의했다.

면담 후 박 시장은 취재진에게 "동절기만이라도 대법원과 사법부에 협조를 구해 철거 진행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비사업 관리·감독권한을 가지고 있는 서울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근거해 동절기 법원의 인도집행을 포함한 강제철거 일체를 금지하고 있다. 지난 2월엔 '정비사업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을 시행하고, 겨울철 시민의 주거권과 생존권 보호를 위해 12~2월 동안 뉴타운·재개발 지역 등의 정비사업 강제철거를 금지했다.

이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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