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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강제철거가 부른 30대 청년의 죽음

서울 마포구 아현동 철거현장에서 용역들에 의해 살던 집에서 쫓겨난 30대 청년이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유서에는 ‘어머니에게 임대주택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용산참사가 우리 사회를 할퀴고 간지 10년, 다시 철거민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숨진 청년은 38세의 박준경씨다. 어머니와 10년 동안 아현동의 단독주택에서 세들어 살았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인 마포구 아현2구역은 아현역에서 이대역 사이 구간으로 2천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2004년 아현뉴타운지구 개발 기본계획이 승인됐지만 주민들 요구로 뉴타운 존치지구로 지정됐다. 2011년 다시 아파트를 건설하기로 결정됐고 2016년 이후 이주가 시작됐다. 2017년 8월부터 강제집행이 시작됐다.

강제집행 과정에서 재건축조합은 48시간 전에 집행일시를 구청에 보고해야 하는 ‘강제집행 사전 통보 원칙’을 여러 차례 지키지 않았다. 통보된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집행할 때도 있었다. 이 원칙은 서울시가 현장에 인권지킴이단을 파견해 현장을 감시하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다. 결국 인권지킴이단이 없는 현장에서 강제집행이 이뤄지는 일이 발생했고 이 때 폭력행위가 있었다는 증언이 나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다.

인권지킴이가 있다고 해도 강제집행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박씨는 9월 6일 강제집행으로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그 뒤로 박씨와 어머니는 지인의 집에서 생활했지만 방이 작아 함께 잘 수 없었다. 박씨는 철거구역에 있는 빈집에서 잠을 잤다. 11월 30일에는 잠을 청하던 빈집에서도 쫓겨났다. 무단침입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보호를 받을 수도 없었다.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던 그는 4일 주검으로 발견됐다. 살고 있던 집에서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쫓겨나 장례식에 쓸 사진도 없었다.

아현2구역 재개발현장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한 용역들의 폭력은 강제집행 과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상적으로 주민들을 향해 폭언과 협박을 하고 곳곳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이 현장을 찾아 조사를 할 정도로 심각했다.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마포구청의 대처는 안일했다. 심지어 서울시가 재건축조합이 ‘강제집행 사전 통보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공사 중지 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하고 그 결과를 통보해 달라는 공문을 11월에 보냈음에도 마포구의 대처는 늑장이었다. 강제집행 사전 통보 원칙은 사업시행 인가 조건이다. 즉, 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사업시행 인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법과 제도, 행정이 아무리 마련된다고 해도 현실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제도를 무시하는 이들이 판을 친다면, 참사가 다시 터질 것이라는 10년 전의 경고가 현실로 드러났다. 마포구청은 이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 재건축조합과 용역업체의 행태는 물론이고 구청이 왜 원칙을 어기는 상황을 제어하지 못했는지 밝혀야 한다. 필요하면 서울시가 직접 나서야 한다. 그렇다고 안타까운 죽음을 되돌릴 수 없다. 이제와 임대주택을 알아보겠다는 구청장의 말이 외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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