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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법관들 구속 막아주며 ‘조직적 사법농단 범죄’ 부정한 법원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구속영장 기각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구속영장 기각 규탄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슬찬 기자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들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농단’의 핵심 윗선들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7일 기각했다. 사법농단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필두로 법원행정처장, 차장,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심의관들로 이어지는 사법부 특유의 수직·관료적 구조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법원이 사실상 사법농단 사태의 본질 자체를 부정해버린 셈이다.

박 전 대법관의 영장심사는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고 전 대법관의 심사는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각각 맡았다.

임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 혐의와 관련해 “범죄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는 점,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돼 있는 점 등을 종합해 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나 구속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고 전 대법관의 구속 심사를 맡았던 명 부장판사 역시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피의자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뤄진 점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기각 사유에서 알 수 있듯 두 영장판사 모두 두 전직 대법관들의 사법농단 연루 관계를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사법농단의 핵심 윗선인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에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20~30여개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혐의는 대부분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중대하게 훼손했다는 사법농단 사태의 본질을 관통하는 것들이다.

결과적으로 사법농단 윗선으로 향해가던 검찰 수사의 길목은 법원에 의해 더욱 촘촘하게 차단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물론이고 핵심 전직 대법관들이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다면, 기존 영장판사들이 영장 기각 사유에서 밝혀온 ‘무죄의 심증’들이 본 재판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들은 지난 5개월여 넘는 기간 동안 사법농단 관련자들의 주요 압수수색 영장 심사 단계에서 ‘죄가 되지 않는다’,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 등 사실상 본안 판단에 가까운 기각 사유를 대면서 사법농단의 본질 자체를 부정해왔다.

압수수색·구속 영장 기각률을 놓고 본다면 법원 내에서는 혐의를 부정하는 공식적 판단이 인정하는 판단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누적돼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이 상태에서 본재판에 들어가면 '피고인'들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훼손했다는 사상 초유의 사건을 대하는 법원 내부의 미온적 분위기도 이번 기각 결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일부 젊은 판사들 사이에서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종종 흘러나오긴 했으나, 고법 부장판사급 이상 고참 판사들을 중심으로는 검찰 수사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견고하게 조성됐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개입 사건 파기환송심을 맡아 법원행정처와 교감했던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가 위법하다고까지 주장하며 노골적으로 '법관들이여 단결하자'를 외쳤다. 헌법상 법원은 독립된 개별 법관들이 모인 조직이지만, 이미 사법농단 사태에서도 드러났듯 실질적으로는 그런 조직이 아니다. 그만큼 내부에서 고참 판사들의 목소리는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법농단 사건 진상규명의 길목이 봉쇄됨에 따라 법원을 향한 비판 여론이 극대화될 전망이다. 동시에 국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특별재판부 도입과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 등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경훈 기자

법조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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