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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H.W. 부시 : 제국주의의 최고 사령관
워싱턴 대성당에서 열린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 트럼프 대통령과 오바마, 클린턴 전 대통령, 아들이자 전직 대통령인 부시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2018.12.5
워싱턴 대성당에서 열린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장례식. 트럼프 대통령과 오바마, 클린턴 전 대통령, 아들이자 전직 대통령인 부시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2018.12.5ⓒAP/뉴시스

미 언론이 고(故) 조지 H.W. 부시의 삶과 유산을 되돌아보며 주저 없이 그를 떠받들고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존 맥케인 상원의원 사망 당시에도 미 언론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인 전쟁 범죄나 인종말살적인 폭력은 완전히 묻어버리고 “전쟁 영웅”이라는 뻔한 이야기만 해댔다.

언론은 대체적으로 미국의 전 대통령과 다른 저명 인사들을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자로 묘사한다.

하지만 부시 미 대통령의 임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언사가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부시는 노골적으로 (특히 미국의 중동 정책에서) 힘의 정치를 추구하며 미 제국주의의 세력을 확장하려 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그를 세계를 지키는 영웅이자 구세주로 미국을 묘사하는 현실에서는 이런 불편한 사실이 외면돼 버리고 만다. 미국의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 바로 등장하는 칭송 일색의 전기를 우리가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다.

부시 정권은 특히 1991년 이라크 정권을 거치면서 근대 역사상 가장 뻔뻔하고 거짓으로 점철된 선전전을 벌였다.

촘스키나 허만의 말을 빌리자면, 미국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동의를 형성하는데, 미국의 공식적인 노력과 미 언론의 노력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부시의 성공적인 선전전을 보면 알 수 있다.”

쿠웨이트 침공:미국 선전전의 시작

부시는 1991년 걸프전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각종 전선에서 선전전을 벌였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이웃 국가인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부시 정권은 재빨리 후세인을 세계적 위협이자 골칫덩이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모두 주요 산유국인데다 미국은 세계 원유 매장량의 1/4을 차지하는 지역에서 후세인이 확장주의 정책을 펼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예전부터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펼쳤다. 그는 이란을 침공했고 1980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아가며 전쟁을 벌여 결국 교착상태로 사태를 마무리했다. 당시 각국의 사망자 추측치는 수십만 명부터 백만 명에 이른다.

후세인이 이란을 침공한 이유는 1979년의 이란 혁명이 이라크의 다수를 차지하는 시아파로 하여금 소수 수니파 지배 층에 대항하도록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와 국경 분쟁 때문이었다.

후세인은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수많은 이유를 들어 쿠웨이트에게 관심을 돌렸다.

쿠웨이트가 사선으로 시추를 해 이라크 남부의 원전에 손대고 있다는 점, 원유를 세계 시장에 과잉 공급해 유가를 떨어뜨린다는 점, 이란-이라크 전쟁 때 이라크에게 준 지원금 800억 달러를 상환하라고 독촉한다는 점, 이라크와 쿠웨이트 사이의 국경이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임의적으로 그어졌으며 후세인의 주도로 이라크와 쿠웨이트가 합병 돼야 아랍계의 통일에 한 발 다가간다는 점 등을 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도 미국을 설득하지 못했다. 미국은 쿠웨이트가 원유 매장량이 많기 때문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고 봤다.

1988년 대선에서 승리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바바라 여사가 텍사스의 행사장에서 지지자들에게 답하고 있다. 1988.11.8
1988년 대선에서 승리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 바바라 여사가 텍사스의 행사장에서 지지자들에게 답하고 있다. 1988.11.8ⓒAP/뉴시스

이에 미국은 전쟁을 시작했다. 부시는 여러 이유를 들어 전쟁이 필요하다고 국민을 설득했다.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써 국제법을 어겼고, 후세인이 자기 국민도 죽이는 무자비한 독재자이며, 쿠웨이트에서 인권 말살 정책을 펼쳤고, 이라크가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게 그 이유들이었다.

부시의 수사에서 핵심적인 주제는 인권이었다. 부시는 후세인이 반정부 인사를 사형시키거나 일상적으로 고문했다며 그를 “히틀러의 환생”이라 불렀다. “세계는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부시가 인권을 강조할 때 특히 주목 받았던 것은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병원에 있는 미숙아들을 잔인하게 죽였다는 이야기였다. 이 주장은 1990년 10월 미국 의회에서 “이라크군이 총을 들고 병원에 들어오는 것을 봤다. 그들은 인큐베이터에서 미숙아들을 꺼냈고 인큐베이터를 들고 가 버려 아기들이 차가운 바닥에 죽도록 내버려뒀다”고 한 15살 짜리 쿠웨이트 소녀의 증언에 기반한 것이었다.

부시는 이 이야기를 수없이 많이 했다. 부시는 몇 주간 최소한 10번 넘게 반복했고 원유보다 인권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의 관심사는 원유가 아니다... 우리는 선과 악, 옳고 그름 앞에 있다”며 쿠웨이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상황을 강조해 댔다.

부시는 후세인이 화학무기를 사용해 왔으며 핵무기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는 후세인이 1988년 이라크 북부 할랍자 마을에서 쿠르드족 6,800명을 화학무기로 죽였고 (사실 이는 이란군의 소행이었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국민을 고문하고 죽였다고 주장했다. “세계가 손을 놓고 있는 동안 후세인은 현재 있는 화학무기에다가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위험한 핵무기까지 개발하려 한다”면서 말이다.

쿠웨이트 침공 이후,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대대적인 제재를 가했고 전쟁에 대비해 미군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과 동맹세력은 1991년 1월 17일 침공을 감행해 재빨리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고 완전히 섬멸했다.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의 이라크 민간인이 사망했다. 그리고 미국의 제재 때문에 이라크가 종전 이후 전력망과 정수 시설 등 필수적인 기반 시설을 복구하지 못하면서 수십만 명의 이라크인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

부시도 침공 전에 “이라크가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로 세계 원유 매장량 2위”임을 언급하며 “미국이 소비하는 원유의 거의 절반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가 안보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세계의 대부분이 수입된 원유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라크의 위협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는 끝끝내 원유가 아닌 인권과 국가 안보, 국가의 주권을 운운하며 걸프전을 정당화했다.

부시의 호전적인 수사로 전쟁에 대한 미국 국민의 지지가 1990년 가을과 겨울을 거쳐 계속 높아졌다. “전쟁을 치를 만하다”고 믿는 미국인이 1990년 8월에는 45%였으나 11월에는 51%, 그리고 이라크 침공 이후인 1991년 1월 말에는 무려 71%였다.

정부 인사들과 언론의 호전적인 수사가 실질적인 군사적 충돌과 맞물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라크 전쟁:수사와 현실의 차이

부시가 사용했던 고고한 수사는 미국-이라크 관계의 현실과 무척 동떨어진 것이었다.

정계의 엘리트들과 언론이 무시했던 불편한 진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큐베이터 얘기다. 캐나다방송이 그 이야기에 어떤 근거도 없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그렇다면 15세 소녀의 미 의회 증언은 어떻게 된 것일까? 알고 보니 그 소녀는 미국 주재 쿠웨이트 대사의 딸로 이라크에 의해 축출된 쿠웨이트 정부의 지원을 받은 미국 홍보 회사의 지시에 따라 증언을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국제엠네스티는 부시를 강력하게 비판했으나 전쟁 지지 분위기를 바꿔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라크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또 어떤가? 1991년 걸프전쟁 전에 이라크에 핵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에 그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진척됐는 지에 대한 증거는 거의 없다. 미국의 주장과는 달리, 핵 위험이 있었는지에 대해 부시가 알 방법이 없었다는 얘기다.

부시는 이라크가 사우디와의 국경에 엄청난 수의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면서 이라크와 사우디의 잠재적 군사충돌 가능성만으로도 이라크와 싸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1990년의 위성사진을 보면 당시 그런 일도 전혀 없었다.

후세인과 히틀러를 비교하는 것 또한 부시의 선전에 불과했다. 물론 후세인은 억압적인 독재자였다. 하지만 후세인과 역사상 가장 불법적인 권위주의 정권을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후세인은 세계적인 위협이 되지 못한 반면, 나치는 미국의 존재 자체를 위협했던 세력이었다.

이라크가 1990년에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군대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라크군의 기술적 수준은 미국에 비해 75년 정도 뒤처져 있었다. 이라크가 이란과의 전쟁에서 주로 썼던 전략은 참호전이었는데 그건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이 세계1차 대전 이후에는 쓰지 않았던 전략이었다.

참호에 숨어 있는 이라크군은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나 탱크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쟁기를 장착한 미국의 탱크들은 이라크군을 생매장하고 지나갔다. 후퇴하는 이라크군도 미국 전투기의 공격으로 포탄에 죽고 불타 죽었다.

상대가 안 되는 일방적인 살상이었다. 걸프전에서 약 10,000명에서 12,000명의 이라크군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군의 사망자 수는 147명이었다. 68대 1, 혹은 82대 1의 사망자수다.

1991년 걸프전과 2차 세계대전은 지속 기간에서도 현저히 다르다. 미국은 단 5주 만에 이라크를 격파했다. 반면 2차 대전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졌고 미국은 1941년 말부터 3년 반 동안 이에 참전했다.

한마디로 후세인과 히틀러의 비교는 부시의 선전전의 놀라운 승리에 불과하다.

부시 정권은 이라크의 화학 무기에 대해서도 국민을 속였다.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기 이전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이라크에게 수십억 달러의 군사적,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는 후세인 독재 정권의 지지자였다.

걸프 전쟁 이전에는 이라크의 화학 무기가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이 쿠웨이트의 인권을 우려하고 있다는 스토리와 맞물려 그것이 문제로 부각된 것이다. 그러나 이란이 화학무기를 사용할 당시에는 미국이 피해자들에 대한 어떤 우려를 표명한 적이 없다.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직접 지원했다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쿠르드 족과 이란에 대한 이라크의 화학 무기 사용과 미국이 관련돼 있다는 흔적은 곳곳에 있다.

부시는 밥 돌과 같은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힘을 합쳐 할랍자 마을 사태 이후 이라크에 대한 제재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더욱이, 2002년 뉴욕타임즈가 보도했듯, 레이건 정권은 이라크 지휘관들이 이라크-이란 전쟁의 핵심 전투들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라크가 전투 전략을 짤 때 이를 도왔다.

또, ABC 뉴스가 보도했듯, 레이건 정권과 부시 정권은 화학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이라크에 현금과 민군겸용 기술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용인하거나 부추기기까지 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미국 정부는 미국이 화학무기 개발에 필요한 부품을 이라크에 어떻게 제공했는지를 기록한 유엔 보고서에서 수천 페이지를 삭제했다. 거기에는 미국의 레이건 정권과 부시 정권, 그리고 미국의 24개 기업이 후세인 정권에게 다양한 종류의 대량살상무기와 이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훈련도 제공했다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원유가 중요치 않다는 부시의 말은 어떤가? 기밀 해제 문서에 따르면 원유는 부시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부시가 1989년 서명한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걸프만의 원유에 대한 접근성과 그 지역의 친미 국가(당시에는 이라크도 그 중 하나였다)의 안보는 미국의 국가 안보에 결정적인 요소이다. 미국은 중동지역에서의 자국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필요하고 적절하다면 미국은 소련이나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어떤 세력에도 대항해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다.”

레이건의 선거 포스터 뒤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조지 HW 부시. 레이건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포스터에 실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36년 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때 다시 등장했다. 1980.3.4
레이건의 선거 포스터 뒤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조지 HW 부시. 레이건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포스터에 실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36년 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때 다시 등장했다. 1980.3.4ⓒAP/뉴시스

위대한 인물들의 이면

부시 대통령에 대한 언론의 부고들은 명예와 투지, 그리고 결단력을 갖춘 그의 “위대함”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러나 미 제국주의를 구성하는 것은 한 개인이나 특정 유형의 성격, 혹은 의지의 힘이 아니다.

미 대통령들을 묘사할 때 등장하는 신비주의를 거둬버리고 나면, 미국 외교정책의 신식민지주의적인 야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미국 외교정책을 결정짓는 동기에는 잔인함만이 존재할 뿐 고귀한 측면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외국과의 갈등 뒤에 있는 더러운 사실들을 알게 되면 미국이 일으킨 범죄적인 전쟁을 지지할 미국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데이비드 바르샤 미안의 표현을 빌리자면, “권력에 복무하는 속기사들”인 언론의 임무는 미국 정권의 선전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언론인들은 이런 임무에 맞게 미 대통령들을 제국주의적인 조종자들로 냉담하게 평가하기 보다는 미국의 이타주의에 대한 낭만적인 얘기들을 훨씬 좋아한다.

그리고 언론은 대통령으로서 벌인 선전, 선동을 무시한 채 부시의 다른 유산만 강조함으로써 중동지역의 미국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핵심 문제들을 조용히 덮어버린다.

기사출처:Imperialist in Chief:A Critical History of George H. W. Bush’s War on Iraq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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