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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여보세요! 여기 북조선인데요”… 분단 무너뜨리는 영화적 상상력
영화 ‘판문점 에어컨’
영화 ‘판문점 에어컨’ⓒ스틸컷

“여보세요!” 전화가 울리고 정은에게 낯선 목소리가 들린다. 익숙하지 않은 이북 사투리에 보이스피싱인줄 알고 끊었지만 곧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 전화 속 주인공은 자신이 북조선 사람이라고 말한다. 실향민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정은은 북한에 사는 낯선 목소리의 주인공과 친구가 된다. 영화 ‘여보세요’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이게 말이 되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영화에서나 가능하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부가 생이별을 한 채 수십 년을 생사조차 모른 채 헤어져야만 하고, 형제가 갈라져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전쟁을 벌여야만 했고, 65년 동안 대치하고 있는 분단은 어디 말이 되는 현실이란 말인가.

말이 되지 않는 현실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면서 언제부터인가 통일은 비현실적인 상상처럼 여겨졌다. 실패한 예언처럼 공허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언제 어떻게 올지 기약 없는 메시아를 이미 죽어버린 신에게 기원하듯 부질없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불가능한 걸까? 북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고, 평양으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바람은, 그렇게 분단을 뛰어넘어 통일의 새날을 여는 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일까? 분단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선 오늘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지난 7일 끝난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기간 동안 통일기획전 부문에 상영된 영화들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영화적 상상력과 통일로 나아기가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언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줬다.

부지영 감독의 영화 ‘여보세요’는 갑자기 북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나누다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전화를 받은 정은은 처음에는 경계하고, 꺼려졌지만 북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부탁을 받고 남한에 있는 탈북한 아들의 소식을 알아봐 주려고 동분서주한다. 정은에게 전화를 걸어온 북한의 친구는 남한에 살고 있는 실향민인 친구의 어머니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치매에 걸린 친구의 어머니는 지금은 죽어버린 자신의 동생을 그리워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탈북 주민들이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중국에서 개통한 전화를 통해 연락을 하는 경우가 중국 접경 지역에선 자주 있다고 한다. 갑자기 북한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대화를 나누다 비슷한 나이의 그와 친구가 되는 이야기는 불가능한 상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런 신고 없이 북한 주민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상상에는 국경도, 휴전선도 없지만 분단 국가의 상상은 항상 법과 분단의 테두리에서 멈칫거린다.

영화 ‘여보세요’
영화 ‘여보세요’ⓒ스틸컷

분단의 장벽에서 멈칫거리는 건 ‘사랑’도 마찬가지다. 김서윤 감독의 영화 ‘기사선생’은 개성공간의 식당에 날마다 식자재를 납품하는 남쪽의 운전기사 청년과 북측 관리원 여성 노동자의 미묘한 로맨스를 담고 있다. 남쪽 남자와 북쪽 여자의 만남이라는 설정을 빼고 나면 이 둘의 만남은 평범하다 못해 아무런 재미가 없는 연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단 상황은 어쩌면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못한 두 사람의 연애 아닌 연애가 이루어질 수 없는 판타지로 보이게 한다. 지금은 문을 닫아버린 개성공단은 남북이 만나며 서로를 알아나가는 작은 통일이 매일 이뤄지는 곳이었다. 그런 개성공단이 문을 닫은 지금 영화 속 이야기는 비현실적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남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은 오늘을 떠올려보면 그리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가볍게 미소가 인다.

통일을 상상하고, 함께 어울리는 걸 상상하는 건 어쩌면 분단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분단의 현실은 어이없게도 아주 사소한 것조차 커다란 다툼으로,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태훈 감독의 ‘판문점 에어컨’은 이런 분단 질서가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판문점 회담장에 설치된 에어컨을 고치기 위해 출동한 에어컨 수리기사는 에어컨 실외기가 북한에 설치됐다는 사실을 알고 화들짝 놀란다. 몸에 줄을 묶고 실외기를 고치러 북으로 넘어간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실수로 인해 그만 실외기가 불타고, 이로 인해 남북이 서로 총을 겨누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극 중 남한 장교는 북측의 장교에게 에어컨 기사를 가리키며 “우리가 못 고친 걸 고치러 왔다”고 말한다. 분단의 세월이 70년을 향해가며 못 고친 게 어디 한두 가지랴.

서은아 감독의 ‘러브레따’는 분단이 앗아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열 여덟 어린 나이에 결혼한 옥자는 한국전쟁 때 군에 간 남편과 헤어지고 어린 자식을 키우며 평생을 살아왔다. 한글교실에서 한글을 배우는 옥자는 한글교실에서 열리는 글짓기대회에서 그동안 글을 몰라 보내지 못했던 ‘러브레따’를 남편에게 보낸다. 옥자의 글에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절절한 그리움이 담겼다. 그리고, 옥자의 그 편지는 신기하게도 1950년대 전장의 남편에게 배달이 된다. 옥자의 편지에 남편은 잘 있다고 말하고, 옥자는 남편을 하늘에서 만나자 다짐한다. 슬프게도 옥자의 기억 속에서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남북의 대결과 전쟁은 언제 끝날 수 있을까?

서동수 감독의 ‘그 아이’는 그 가슴 뜨거운 상상을 담았다. 정수는 피난시절, 천막학교 친구 ‘그 아이’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밤잠을 설친다. 이북에서 피난 온 친구는 이북말씨 때문에 ‘빨갱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정수와 친구들에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였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친구들을 하나둘 만나지만 친구들도 워낙 오래전 일이라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친구의 이름을 다른 친구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정수는 어린 시절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른 친구들과 함께 기차역으로 향한다. 기차역에서 받아든 기차표에 선명하게 찍혀있는 ‘평양’. 헤어진 이산가족들과 친구들을 평양에서 만나는 그날이 곧 올 수 있을까?

영화 ‘러브레따’
영화 ‘러브레따’ⓒ스틸컷

통일과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우리는 정말 하나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최미경 감독의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그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이 영화는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온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아이들은 남한에 와서 혹독한 심문을 통해 자신이 간첩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 힘겨운 질문을 강요당한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그가 무언가 물어보려 해도 가르쳐주는 이들조차 없다. 북에서 왔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숨겨야 하고, 남한 사회의 일원이고 싶지만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기도 한다. 탈북자들을 우리 사회는 불쌍한 대상으로, 우리가 도와줘야 할 대상으로만 여길 뿐이다.

함께 산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합치는 결혼생활과 같다. 강이관 감독의 ‘우리 잘 살 수 있을까?’는 통일의 과정을 결혼에 비유해 발랄한 이야기로 전달하고 있다.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은 번번이 티격태격한다. 여자가 파인애플을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남자는 자신이 먹고 싶은 파인애플이 들어간 피자를 시킨다. 가구를 조립하다가도 티격태격하는 둘은 과연 함께 잘 살 수 있을지 모든 게 의문이다. 그런 둘이 화해를 위해 춤을 춘다. 상대방에게 “한 번만 나 따라 해주면 안 돼?”라고 질문을 던진다. 둘은 춤을 함께 춘다. 통일은 어쩌면 그렇게 내가 하기 싫은 그 무엇일지라도 상대방을 따라가 주는 과정이 아닐까? 그렇게 따라가 주고, 상대방의 리듬에 몸을 맞추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따뜻한 마음을 안고 영화를 본 뒤 극장을 나서는데 스마트폰 뉴스앱에서 뉴스 알림이 울린다. 대북 사업을 펼치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업가의 부인이 남편의 결백을 호소하는 편지를 재판부에 보냈다는 기사와 청와대 앞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대형그림이 설치됐다는 뉴스가 한꺼번에 보였다. 통일과 화해로 가는 물결 속에서도 아직도 한쪽에선 국가보안법이 위력을 발휘하며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북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평양을 가는 기차표를 끊는 영화 속 상상보다 북을 적으로 규정하며 우리의 머릿속까지 탄압하는 국가보안법과 남북 정상의 악수를 한꺼번에 만나야 하는 현실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비현실적인 분단의 시대와 어처구니없는 분단의 질서가 지나가고 통일은 과연 언제쯤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을까?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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