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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낙담한 이들을 위한 치유, 구술생애사에 빠진 김은화 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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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본인의 책은 어떤 의미일까'

이런 궁금증을 갖게 한 책이었다.

그녀가 작가로 참여한 책 <오늘은 맑음>은 유명인의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지도, 세상의 잣대에 기대 누군가의 삶에 충고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해온 망원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그중에서도 여성 상인들의 생애를 담고 있다. 유명인도 아닌,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유는 뭘까. 그리고 그 책을 쓴 작가는 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을까.

그래서 <오늘은 맑음>을 함께 쓴 여러 작가들 중 김은화 씨에게 만나자고 연락했다. 그녀를 선택한 것은 그녀의 글이 흥미로워서였다. 글이 빠르게 소비되는 세상에서 그녀의 글은 곱씹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했다. 마치 맛있는 밥알을 천천히 꼭꼭 씹어 단맛을 충분히 느끼고 싶은 심정이랄까.

김은화 씨가 참여한 책 이름
김은화 씨가 참여한 책 이름ⓒ제공 = 김은화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야 할까' 낙담한 이들을 위한 치유

지난 4일 합정동에 위치한 책 카페에서 김은화 씨를 만났다. 깔끔한 회색 티에 짧은 파마머리를 한 그녀는 세련된 인상을 풍기는 동시에 오래 읽은 책처럼 편안한 느낌도 가진 사람이었다.

나는 묵혀놓았던 궁금증을 그녀에게 드러냈다. "왜 여성 상인 생애구술사를 쓰신 건가요?"

그녀가 망원시장 상인의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구술생애사 수업을 들으면서 였다고 한다. 9명의 상인의 생애사를 쓰게 됐는데, 이를 한 작가가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단다. 그래서 합류해 쓰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 그녀도 의아했다고 한다. '왜 여성 상인일까' 그런데 그 궁금증은 이내 해결됐다고 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밤 12시가 넘도록 일만 했다. 시장 일도 고된 데, 집에 와도 가사노동을 해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50대쯤, 문득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살까'하는 자괴감이 드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이끌어왔음에도 말이다.

"사실 구술생애사를 시작한 건 저희 어머니 때문이었어요"

그녀는 망원시장의 여성 상인들과 똑같은 자괴감을 느낀 여성이 보았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18살 때, 남편과 이혼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도박으로 벌어온 돈을 모두 탕진했다. 참다못해 어머니는 그녀와 그녀의 오빠를 데리고 뛰쳐나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는 그녀가 취업한 바로 다음 해에 쓰러졌다. 그것도 희귀병에 걸렸다. 약도 없다고 했다.

"어머니께서 요양보호사 일을 10년을 하셨어요. 어머니 몸을 봤는데 왼쪽 어깨에 한 환자가 물어서 생긴 흉터가 아직도 남아 있더라고요"

암 환자들이 간혹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요양보호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성의 체구로 남성 환자를 번쩍 들어 이동시키고, 목욕시키다 보니, 어머니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그렇게 살아온 어머니가 한 말이 그녀의 마음에 남았다. 어머니 스스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한 말이었다. 남편이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이혼을 낙인처럼 가슴에 새기고 있었고, 가난의 상징인 반지하에서 살고 있다고 낙담했다.

"저는 어머니가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존심을 되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를 여태껏 먹여 살린 어머니가 대단하잖아요"

그래서 결심한 게 있다고 했다. 망원시장 여성상인의 생애구술사 책을 썼던 것처럼 '어머니 구술생애사' 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 다음 해 3월 발간 예정으로, 책의 제목은 '나는 엄마가 먹여 살렸는데_여성 생계 부양자 이야기'다.

"책을 쓰기 위해 인터뷰를 하면서 어머니의 눈빛이 또렷해지고,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어머니는 당신의 삶에서 자랑스러웠던 순간, 자식들을 위해 일했던 순간들을 말로 정리해 풀어내면서 삶에 대한 자존심을 회복한듯했다.

"저는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본인의 위치에서 담담히 삶을 이끌어온 이들이 문뜩 자신의 삶에 회의감이 들었을 때, 그녀는 책을 통해 위로를 건네고 싶었던 건 아닐까. 당신의 인생도 충분히 멋있다고, 눈 부시게 아름답다고.

망원시장 여성상인들 생애구술사에 집필에 참여한 김은화 씨
망원시장 여성상인들 생애구술사에 집필에 참여한 김은화 씨ⓒ제공 = 김은화

치열하게 살았던 삶, 그리고 책 한 권이 바꾼 인생

책을 쓰는 작가로서, 출판사에 잠시 몸담았던 그녀에게도 '인생 최고의 책'을 꼽아달라고 했다. 그녀는 거침없이 책 한 권을 이야기했다.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심지어 인생을 바꿔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읽은 그녀는 충격에 휩싸였다. 책 내용 때문이었다. 책은 한 야구단의 이야기다. 광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던 주인공은 갑자기 '번아웃'(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무기력을 경험하는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그때 그는 일을 그만두고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었던 동네 친구들과 야구단을 꾸린다. 그런데 이 야구단은 좀 독특하다. 동네 야구단 간의 게임이라지만, 본인이 치고 싶을 때만 공만 쳤다. 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야구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녀는 '어떻게 저렇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치열했던 그녀의 삶을 비춰봤을 때, 어쩌면 당연했다.

"한 부모 가정은 가난과 친한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목숨 걸고 장학금 받으려 애썼고,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어요"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그녀는 등록금을 낼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만으로는 매 학기 등록금과 생계비를 동시에 해결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집에도 얼마 정도 생활비를 가져다줘야 했다. 매일이 압박의 연속이었다.

4년간 그녀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무려 3천만 원이다. 등록금, 생활비를 제외한 1천만 원은 집에 가져다줬다.

한 번은 죽어라 노력했는데도, 장학금을 못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학점 4.3이 되어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녀의 학점은 4.18 이었다. 다 포기 하고 싶었다고 했다. 매일 쩔쩔매며 사는 것도 지겨워질 참이었다.

그 때 한 지인이 '총장에게 찾아가 보라'고 권유했다. 마지막 희망을 품고 총장을 찾아갔다. 그녀는 '이렇게 하면서까지 대학을 못 다니겠다'고 처음 본 총장을 붙들고 한참을 얘기했다. 눈물도 났던 모양이다. 이야기를 듣던 총장이 대뜸 사탕 하나를 내밀었다. "이거 하나 먹어라"

그 학기는 총장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가용금액을 들여 장학금을 줬다. 그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10명도 함께 장학금을 줬다. 그녀는 그 시기를 이렇게 기억한다. '기적'

그녀의 퍽퍽한 인생을 듣다 보니, 문득 그녀의 현재는 어떨까 궁금했다. 지금은,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삼미슈퍼타즈의 마지막 팬클럼>처럼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을까.

김은화 씨가 지난 4일 합정동의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은화 씨가 지난 4일 합정동의 모 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그녀는 내 질문에 빙그레 웃었다.

"지금은 많이 행복해요. 전에는 목표하는 지점이 있어서 막 달려갔어요. 그러다 안되면, '난 왜 이것밖에 안될까'하고 자책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넘어져도 괜찮다'라고 생각해요. 저도 <삼미슈퍼스타즈 마지막 팬클럽>처럼 치고 싶은 공만 치면서 생각하는대로 살고 있어요."

3년 다닌 직장에 당당히 사표를 내고, 쓰고 싶은 책만 내며 살고 있다는 그녀는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 어떤 상황에도 자신을 학대하지 말자고요."

장재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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