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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낮에는 화장품 광고, 밤에는 철거촌 현장 - 단편 ‘편안한 밤’ 이준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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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밤' 감독 이준용
'편안한 밤' 감독 이준용ⓒ제공 = 이준용

그를 만난 건 지난 11월,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열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뉴필름메이커’ 부문 프로그램에서였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을 묶어 상영한 후 감독과의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첫 작품을 내놓는만큼 감독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마음 속으로 저 영화가 낫느니 저건 어떻느니 하는 가름을 하던 도중 객석에서 한 사람이 일어났다. 파란 색 옷을 입은 감독이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 ‘편안한 밤’을 연출한 이준용 감독의 요청에 객석에서 조한정 씨가 일어나 관객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했다.

‘편안한 밤’은 서울 성북구 장위 7구역 배경이다. 장위 7구역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뉴타운 계획을 발표한 이래 재개발이 시작된 곳이다. 조한정 씨는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감정평가금액을 입증했지만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그는 강제집행되던 2017년 11월, 할복을 시도했다.

'편안한 밤' 주인공 조한정 씨
'편안한 밤' 주인공 조한정 씨ⓒ제공 = 이준용

#편안한밤, 조한정이라는 문학적 캐릭터

‘편안한 밤’은 조한정씨의 집을 30여 년 간 지켜온 감나무 사진으로 시작된다. 화면 속 조한정 씨는 한밤 자택 옥상에서 “용역도 없고 강제철거도 없고 공사 소음도 없는 밤은 편안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 감독은 조 씨의 문학적 면모가 자신을 빨려들게 했다고 말한다.

“다큐멘터리는 어쩔 수 없이 소외된 이들을 향해 카메라를 돌리게 되거든요.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선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피해자임을 강조하게 돼요. 카메라라는 게 사람을 배우로 만들거든요.”

“그런데 조한정 씨는 달랐어요. 침착하게 자신이 느껴온 감정을 이야기했어요. 다큐 제목도 그분 이야기를 듣다가 따온 거에요. ‘밤이 오히려 편안하다’, ‘강제철거도, 용역도, 공사 소음도 없는 밤이 편안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의 언어를 주워 담은거죠. 다큐멘터리는 현장에서 채집된 언어들을 유기적으로 짠 것이거든요. 주인공 덕분에 이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죠. 저는 이분의 캐릭터에 빠져 이 다큐를 만들게 됐어요. 만난지 3일만이었을 거에요.”

‘용산 참사 때와 달라진 건 밤에 철거하러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정도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든 의문은 ‘캐릭터’라는 말이었다. 휴먼다큐가 아니고서야 현상을 중시하지 인물을 중심에 놓는다는 발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가 장위동 근처였어요. 철거촌을 돌아다니며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었죠. 그러던 도중 조한정 씨를 만났어요. 저희 아버지 또래인데도 겸손하시고, 젊은 사람들에게도 베푸는 분이었어요. 또, ‘억울합니다’를 넘어서는 언어들이 매력적이었죠. 이 분 아니었으면 ‘편안한 밤’도 없었을 겁니다.”

‘주인공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는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극 영화는 영화 속에서 어떻게든 갈등이 해소되지만 다큐멘터리의 경우 대부분이 그렇지 않다. 카메라가 거두어져도 고통은 지속된다.

“촬영하면서는 조한정 씨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죠. 끝낼 시점을 못 잡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계속 들이대도 주인공은 여전히 고통받기 때문에 작업을 빨리 끝내고 세상에 알리리라 마음 먹었죠.”

그런 그는 최근 서울 모처에서 자신의 편견과 맞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민자들로 가득한 한 동네에서 카메라를 켜고 그곳을 담고 있다. 그는 “나조차도 무섭다고 생각하며 카메라를 켰는데, 그곳에도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뉴스로, 통계로 보고 듣는 것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문화예술의 힘이란 정말 최고다”라고 말했다. 뿌듯해하는 입가에 자부심이 느껴졌다.

영화 '편안한 밤' 타이틀
영화 '편안한 밤' 타이틀ⓒ제공 = 이준용

낮엔 화장품 바이럴, 밤엔 철거촌… 하지만 생계보다 힘든 건

그리 말하던 그는 대뜸 “그런데 힘드네요”라고 내뱉었다. 힘든 건 아무래도 생계 때문일까 싶어 조심스레 ‘편안한 밤’을 만들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물었다.

“하루 일당 받는 촬영 알바 하며 ‘편안한 밤’을 만들었어요. 독립영화든 단편이든 다큐든 자기 작업이 바로 돈이 되지 않는 판이에요. 웰메이드 다큐라며 극장에 걸려도, 이슈에 걸맞는 다큐라도 그걸로 돈을 버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아니 아예 없어요. 그래서 여타 다른 생계유지 수단을 찾게 되죠.”

이준용 씨는 세 가지 일로 ‘편안한 밤’을 만드는 동안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하나는 인연으로 알게 된 영화의 촬영부 일, 또 하나는 바이럴 광고 촬영, 나머지 하나는 출강이었다.

낮에는 화려한 광고 촬영, 밤에는 조명조차 사치인 철거촌을 돌아다니는 삶의 대비는 꽤 컸다. 혹시 자괴감이 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긍정적으로 답했다.

“제가 어디 우익 단체 일을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웃음). 화장품 광고 촬영 감독 일은 촬영 스킬을 키울 수도 있고, 제 삶을 지탱하는 것이니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덕에 ‘편안한 밤’ 만들었고, 외장하드 영화에 그치지 않고 영화제 출품도 했잖아요.”

생각해보니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광고, 웹드라마 등등 찍다 보면 ‘내가 뭘 하나’ 싶긴 하죠. 카메라를 가운데 두고 보는 세상이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요? 그래서 저희끼리는 그런 말 해요. ‘카메라 방향, 그 밸런스를 잘 맞춰야 오래 살아남는다’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카메라로 돈 벌 수 있는 게 얼마나 축복이에요. 게다가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연 영상언어의 시대에. 더 늦기 전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 해야죠. 최근에 중학교 미디어강사로 나갔는데, 콘텐츠 크리에이터나 뮤직비디오 감독이 꿈인 아이들 많아요. 영상 찍어서 컷 편집하는 수준의 제작은 다들 해봤더라고요. 그런 환경에서 카메라로 일할 수 있는 건 행복한 겁니다.”

그는 오히려 다른 게 걱정이었다. 누구라도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이었다. 그는 지금 30대 초반이다.

“지금이야 밤낮없이 촬영하고, 편집하고 다 할 수 있죠. 신나요. 정말 즐거워요. 덕업일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40대가 지나서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다큐라는 건 시간을 담는 작업이거든요. 실제로 1, 2년은 다큐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에요.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텐데, 그 때 되어서도 외주제작 하고 현장 다니는 게 가능할지. 그게 걱정이죠.”

그러면서도 그는 낙천적인 말로 이 대화를 끝냈다.

“대기업 간 친구들 50살 넘으면 아파트 자기 이름으로 된 거 사나요 뭐. 영화감독은 3040에 무르익고 50대에 절정을 맞이하고, 그 뒤에는 필모그래피로 사는 거거든요. 저는 아직도 하고 싶은 작품들이 넘쳐나니, 안정적이진 않지만 행복해요. 이런 말 하면 친구들이 저보고 ‘XX 긍정적이네’라고 하는데요, 대학 졸업할 때쯤에야 좋아하는 걸 찾아서인지 여전히 신바람 납니다.’

참고로 그는 일반 4년제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다큐 영화를 찍고 싶어 진로를 바꾼 케이스다. 금융계 취업을 준비하느라 이미 가지고 있는 자격증도 몇 개 있었다.

'편안한 밤' 감독 이준용
'편안한 밤' 감독 이준용ⓒ제공 = 이준용

요즘 다큐 트렌드는 ‘나(I)’, 학생 시절 겪은 ‘그 일’을 꼭 다루고 싶다

이준용 씨는 본지에서 꼭 이 이야기를 다뤄달라고 말했다.

군대에 다녀오니 학생회 하며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마음을 기댈 곳이 없었다고 한다. 20대의 10년을 보수정권과 보내며 촛불이 익숙했고, 변혁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함께하던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져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변화의 현장에 나가 보고는 싶고, 그러면서도 내 업을 찾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경제학과 졸업반인데도 신문방송학과 가서 다큐 관련 과목을 들으면서 준비했죠. ‘안녕들하십니까’를 소재로 만든 15분짜리 다큐로 영상 교육을 본격적으로 받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반드시 다루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

“저는 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이야기는 꼭 할거에요. 지금 4년이 다 되어가는데요, 5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전 해산당한 당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제 필모그래피가 유의미해지는 때 쯤 그 이야기를 꼭 할거에요. 지금 ‘지록위마’라는 영화 촬영부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저는 이 영화에서 다루지 않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뤄 보고 싶어요. 해산 후 당원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거나, 혹은 제 이야기를 담으려 합니다. 요즘 다큐멘터리 트렌드도 당사자로서의 이야기, 또는 나(I)의 이야기거든요. 나의 이야기 안에 현대사가 들어와 있으니까요. 통합진보당 당원으로서 함께하던 그 친구들이 지금은 사회 각계에서 그저 자기 일을 하며 지내고 있어요. 그들을 다루는 일은 저만 할 수 있는 일일 것 같아요.”

통합진보당, 이 단어가 갖고 있는 여러 선입견이 있다. 그 선입견을 대표하는 단어에는 종북과 빨갱이부터 폭력, 비민주 등이다. 부정적인 게 대부분이다. 그는 그런 편견이 반갑다고 말했다. 차라리 편견을 가져달라고 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언어는 편견을 깨는 거에요. 그래서 편견을 가져 주면 고마울 따름이죠. 영화 속에서도 말씀하신 그런 선입견들을 갖고 질문을 할겁니다. 그걸 추적해가는 과정은 영화적으로도 유의미하고, 정당정치의 기록으로서도 의미 있죠. 그리고, 그 편견이란 거는 다큐멘터리 카메라가 돌리는 현실 어디에나 존재해요. 철거촌은 안 그런가요 뭐(웃음).”

'편안한 밤' 감독 이준용
'편안한 밤' 감독 이준용ⓒ제공 = 이준용

외장하드 영화 아니어서 행복하죠 뭐

이날 대화 중 나온 ‘외장하드 영화’라는 말은 영화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 잘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기껏 제작해도 출품 또는 개봉하지 못하는 작품을 자조하며 ‘외장하드 영화’라고 부른단다.

“1년에 독립영화 씬에서만 새로 만들어지는 게 대략 1천 편 쯤 돼요. 그 중 900편은 극 영화고요, 100편 정도가 다큐죠.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는 전세계 5천 편을 모아 그 중 50편을 뽑았는데요, 그 중 뽑혔으니 기분 째지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길은 독립다큐라고 힘주어 말했다.

“저는 한국 독립다큐의 전통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사를 때려치고 나온 서른 살의 김동원 감독이 ‘상계동 올림픽’을 만든 것처럼. 소외된 사람을 향해 카메라를 돌리는 그런 감독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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