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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소소하고 개인적인 송구영신

“또 한 해가 간다.”

이 말을 내가 얼마나 많이 했던가. 언제부터인가 오는 해를 맞는 마음보다 보내는 해에 대한 감정이 깊어진다. 한 해를 이렇게(?)라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신년을 맞는 마음도 설렘보다는 심란함이 더 깊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연말연시도 그냥 365일의 하루일뿐이야”하고 초연한 척해본다. ‘365일 중 하루일뿐’이라는 태도는, 연말연시에 의례히 갖는 부담을 내려놓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그럼에도 몇 가지 의식은 진행된다. 그 중 하나가 송년회 모임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맘때면 갖는 송년회를 통하여, 경조사 외에는 만나기 힘든 친구를 만난다. 특별히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야 할 만큼 친밀감은 없으나, 안부가 궁금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일 년에 한번 만나는 동창 송년회는 사는 것이 팍팍해지는지 참가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나누는 이야기도 밝지 않다. 누군가가 자신이 겪는 고통, 어려움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뒤이어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어두운 이야기가 계속된다. 결국 오래된 친구들의 송년모임은 신세타령, 한풀이를 하는 자리가 된다. 모든 모임이 ‘끼리끼리’ 만나는 것이어서 그 고민과 상황이 비슷하니 감정이입이 쉽게 일어난다. 중년의 고통과 고민은 끝이 없다. 현재의 고민거리가 사라지면 다른 고민이 비집고 들어온다. 괴롭히고자 작정한 것들이 줄을 지어 대기하고 있는 양.

시간이 흐르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온라인 커뮤니티

이런 울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 엄살이 아니나, 우리가 쓰라림의 파고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없을까? 정말 우리는 좌절, 실패만 했는가? 우리는 이런 모임에서 왜 기쁜 일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가? 우리는 힘든 일을 나누는 것도 서툴지만, 즐거운 일을 함께 하는 일도 서툴다. 겸양의 마음에서 자신의 행복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 나눌 기쁨의 종류는 적어지고, 그 내용도 대단히 빈약해지는 데 비해, 괴로움은 가지 수가 많고, 내용도 구체적이고 풍부하다. 불행이란 이름을 붙일 수는 없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다양하다. 주택문제, 가족의 건강문제, 가족의 죽음, 가족 불화에서 나아가 이웃과의 불화, 직장에서의 어려움, 사소한 질병과 교통사고 등이 포함된다. 상당부분이 경제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렇게 오랜 친구들의 모임 화제가 기쁨보다는 슬픔과 걱정이란 방향으로 쏠리는 현상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일상 속 사소한 부딪힘에도 온 몸에 화가 치미는 위태로운 상태에 놓여 있다. 피해를 받고 있다는 억울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러다 보니 사소하고 잔잔한 기쁨이 쉽게 지워진다. 계량화할 수 없겠지만 기쁨의 크기는 스트레스보다 크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절망으로 꽉 차 있는 듯하다. 절망적 기분은 종종 삶의 무의미함으로 등치되기도 한다. 그런데 절망적인 이 날들을 버틸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그건 역설적으로 희망이며 매일매일 경험하는 사소한 기쁨이지 않을까.

우리는 가난하고 약하다. 정작 힘든 것은 실제적인 일보다는 마음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소소한 기쁨의 파동은 걱정과 스트레스라는 파동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은 우울함의 냄새와 파동을 크게 느낀다. 그렇지만 소소한 기쁨의 파동은 계속되고 있으며 우리 몸에 쌓이고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다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는 작은 파동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한해를 보내면서, 서로 곁이 되어 고민을 나누는 자리는 얼마나 소중한가. 그 소중한 시간에 이런 이야기도 해보면 좋겠다. 올해 일어난 일 중 자신을 감동시킨 말들, 소중했던 감정,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얼굴과 풍경 등등이다. 나는 작지만 소중한 순간, 너무 당연해서 중요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찾아내는 일을 해보려 한다. 이것은 현재의 괴로운 사실을 회피하는 정신승리적 태도가 아니다. 짓누르고 있던 복잡하고 힘들고 짜증스런 마음의 저편, 늘 보던 것 이외의 다른 쪽을 보는 것이다. 온 몸으로 부딪혀 온 지난 1년을 찬찬히 그대로 보려 한다. 생각한 것보다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새해에 희망이란 풍선을 띄울 수 있는 숨은 자산이 있을 것이다.

“또 새해가 온다.”

언제부터인가 새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직장, 직업적 계획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내 계획이라기보다 집단의 계획이며, 해야만 하는 의무의 나열이다. 나를 성장하게 하고, 만족감을 갖게 하는 계획이 아닌 경우가 많다. 새해 계획을 갖지 않은 이유 중 큰 것은 내 삶의 계획이 아닌 다른 계획에 묶여 바쁘다는 이유, 또는 내 계획이 실패한 좌절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래서 “매년 하는 일이다. 잘 안 될 것이다”라며 신년 계획 세우기를 하지 않았다.

새해를 맞으면서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새해 계획 짜기, 그리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려 한다. 그 생각만으로 긴장되고 비장해진다. 늘 염원하면서도 진정으로 원하는지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온전히 내 꿈으로 만들려 한다. 실패할까 두려워 겁을 먹은, 그래서 나태해진 여린 마음과 정신에게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만 실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고 위로해보려 한다. 나를 응원할 수 있는 제일 큰 후원자는 나 자신이다. 실망과 포기는 더 많은 두려움을 만들고, 좌절에 무덤덤해지게 한다. 그리고 ‘또’라는 무서운 말만 내뱉을지 모른다. 절망이 포개지는 ‘또’, 희망도 전망도 없는 ‘또’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던 故 김용균 씨.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던 故 김용균 씨.ⓒ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올해에 있었던 일을 돌아볼 준비를 하는 데, ‘아름다운 청년 김용균’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봤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철폐를 촉구하는 인증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온 몸이 떨렸다. 나도 모르게 외마디가 튀어나왔다. “또 다시!” 겨울에 일어난 불행은 더 몸서리를 치게 한다. 어떤 죽음이 애통하지 않겠냐만, 자신의 마지막을 혼자 견디어야 했던 그 무서움과 외로움이 차가운 바람의 영향으로 더 매섭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죽음 이어 진행될 절규와 투쟁이 찬바람 속에 지속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나 작은 희망이라도 품게 하는 새해의 정신을 같이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참담하다.

애통한 죽음 소식은 연말연시를 ‘365일 중 하루’가 아닌 다른 하루로 만들기 위한 내 사소한 일정, 연말연시의 성찰과 신년 계획, 버킷리스트 세우는 일을 주춤하게 한다. 그럼에도 절망과 희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고, 그런 일에 내가 마음을 보태는 계획을 세운다.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내가 곁에 있어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2018년을 보낸다. 나의 2019년은 조금 덜 좌절하고, 조금 더 위로하는 자신으로 성장하는 해를 만드는 계획을 세운다. 보내는 해에 김용균의 얼굴이 있고, 새로 맞는 일 년에도 그와 그 동료들의 목소리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내적 삶에는 그가 포함된 사회의 온갖 감정의 추이가 모두 압축되어 있다. 한 사회에는 거기 몸담은 한 인간의 감정이 옅지만 넓게 희석되어 있다. 한 인간의 마음 속에 뿌리 내린 슬픔은 이 세상의 역사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믿어야 할 일이다. 한 인간의 고뇌가 세상의 고통이며 세상의 불행이 한 인간의 슬픔이다. 그 점에서도 인간은 역사적 동물이다.”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중)

김애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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