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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이미 나무이자 열매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씨앗
싱어송라이터 애리
싱어송라이터 애리ⓒ애리

음악은 마음을 옮긴다. 마음을 옮기고 이따금 생각을 옮긴다. 생각을 옮기며 마음까지 옮긴다. 마음과 생각이 싹트고 자라고 피고 시들고 지는 순간들을 옮긴다. 마음과 생각을 보고 기록하고 들려주는 사람을 옮긴다. 그 사람에게 묻어있는 시간과 세상을 옮긴다. 음악에 담긴 모든 것들을 끝내 다 알지 못한다 해도 마음은 생각보다 빨리 흔들린다. 설명할 수 없는 감응, 설명할 필요가 없는 공감. 그것이 음악의 감동이다.

싱어송라이터 애리 ‘Seed’
싱어송라이터 애리 ‘Seed’ⓒ애리

자신도 다 알지 못하는 마음을 최대한 드러내는 노래

싱어송라이터 애리가 지난 10월 29일에 발표한 첫 음반 ‘Seeds’의 세계는 아주 명확하지 않다. ‘어젯밤’부터 ‘비 오는 날 씨앗으로 틔우는 여정’까지 수록곡은 다섯 곡. “흩날리던 글자의 결이 시리구나/휘파람도 나를 스쳐갔어/이상한 이야기/곧 스러지는 단어의 춤/곧 미끄러질 표정들이/담벼락에서 헤매이네”라는 첫 곡 ‘어젯밤’의 노래말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완벽하게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노랫말로만 말하지 않는 음악을 들으면 노래에 담은 마음이 또렷해진다. 밤이 되어 혼자 맞는 시간. 후회와 상실감을 담은 듯한 노랫말은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의 힘으로 강렬하게 피어난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어느새 현실과 환상의 경계로 날아가버린 순간을 담은 듯한 음악의 몽롱함은 나른한 보컬의 중첩과 공간감, 느슨한 드러밍, 강렬하면서도 몽환적인 일렉트릭 기타 연주로 ‘어젯밤’이 그야말로 밤의 노래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고 통합하면서 자신도 다 알지 못하는 마음을 최대한 드러내는 곡임을 보여준다.

‘없어지는 길’에서도 애리는 지나간 시간이 남겨둔 생채기를 더듬는다. 애리가 노래하고, 일렉트릭 기타가 긁고 반복하면서 주도하는 멜로디는 아련하고 쓸쓸하다. 그런데 6분 33초의 긴 곡인 이 노래에서는 노래의 비중만큼 연주의 비중이 높다. 그리고 그리움과 상실감을 드러내는 노랫말의 마음은 애리의 노래와 밴드의 연주를 빌어 그리움과 상실감만이라고 한정할 수 없는 마음으로 건너간다. 분명 아린 마음임에도 드라마틱한 변화를 이어가는 연주는 노래 속의 마음이 그 자리에서만 머물러 있지 않다고, 계속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애리의 보컬이 담담하게 들리는 이유이며, 노래와 연주를 통해 담은 마음의 흐름과 그 흐름을 가능하게 한 시간까지 담은 곡임을 알아차리게 하는 사운드이다.

싱어송라이터 애리
싱어송라이터 애리ⓒ애리

기승전결 구조를 가진 마음의 중편극으로 완성된 앨범

이루고 피워낸 마음보다 실패한 마음을 더 오래 바라보는 애리의 시선은 ‘낡은 우편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낮게 부른 노래는 우수에 잠겨 있다. 자신도 ‘낡은 우편함’과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자의식에 담긴 마음은 막막하다. 그런데 애리는 이 막막한 마음을 영롱한 기타 연주와 사이키델릭 포크의 질감으로 노래해 아름다움으로 치환한다. 낡은 우편함에 대한 애리의 동병상련은 노래의 아름다움에 힘입어 이 노래를 듣는 수많은 이들의 공감으로 나아간다. 자신이 “철거되지 못했던 구물” 같고, “쓰임새 없이 녹슬어 간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노래는 “노란 민들레 하나”처럼 “잠시 친구 되어”준다. 녹슬고 부서진 마음을 다독이는 것은 근사한 긍정이나 찬사만이 아니다. 녹슬고 부서진 마음의 바닥에 내려앉은 슬픔을 온전히 기록할 때 슬픔은 슬픔의 아름다움으로 오롯하게 빛난다. 슬픔의 힘과 아름다움은 쉽게 훼손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독자성으로 소중하다. “노란 민들레 하나가 잠시 친구 되어주”는 것도 슬픔이 슬픔의 힘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며, 애리가 그 의미와 가치를 놓치거나 외면하지 않는 눈 깊은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과거의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마음은 ‘에덴’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스스로 치유한다. “바람이 휘이 부는 땅‘과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에서 ”바다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고, ”나무가 뿜어내는 녹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마음이 완전히 시들지 않은 덕분이다. ”돌들이 속삭이는 틈새“와 ”꽃들이 사근대는 기우뚱“에서 ”사랑의 달콤함“을 찾아낼 줄 아는 마음은 여전히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상실과 슬픔의 정서에서 위로와 평화의 정서로 바꾼다. 일렉트릭 기타가 만드는 꿈결 같은 몽롱함과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이 주도하는 리듬 변화를 교차시킨 곡의 드라마는 평화로움 속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와 치유를 소리로 재현한다.

덕분에 이 음반은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기승전결 구조를 가진 마음의 중편극으로 완성된다. 노래에 담은 마음을 사운드로 확장해 사이키델릭 포크와 밴드 사운드를 적절하게 결합한 애리, 신사론, 우기디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로서, 이 음반은 2016년부터 꾸준히 존재를 알린 애리의 단단한 출발이다. 스스로는 씨앗이라 칭했지만 이 정도의 음반이라면 이미 나무이자 열매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2018년 올해가 가기 전에 들어야 하고, 다시 새로운 음반이 나올 때까지 계속 듣게 될 음반.

싱어송라이터 애리
싱어송라이터 애리ⓒ애리

필자 개인 사정으로 예정보다 늦게 게재됐습니다. 독자분들의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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