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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노래] 안전은 상품이 아니다

요즘 세상에선 돈이 최고다. 돈만 있으면 못 사는 것이 없고, 돈만 준다 하면 못 파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태안화력발전소의 24살 청년 김용균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온몸이 찢어진 채로 사망했다.

그의 충격적인 죽음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그가 죽은 것은 불행한 사고 때문이 아니다. 그의 안전 대신 돈을 선택한 ‘서부발전’때문이다. 2인 1조로 근무했었다면 김용균씨의 몸이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갈 때 동료 직원이 즉시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고 그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설령 대처가 늦어 그를 살리진 못 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탄가루가 날리는 그곳에 어린 청년의 주검을 몇 시간씩이나 방치해놓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돈때문에 안전을 사고파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에서 부착한 정시 출·퇴근 캠페인 포스터
서울대병원에서 부착한 정시 출·퇴근 캠페인 포스터ⓒ필자 제공

칼퇴근하라는 서울대병원, 알고보니

얼마전 서울대병원에서는 근무 시작시간 전에 전자의무기록 프로그램에 로그인을 하지 말라는 공지가 내려왔다.

“조기출근하지 않도록 강력 공지”
“근무 종료시간에 바로 인계하고 퇴근하는 분위기 조성”

간호사들이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일찍 출근하고, 정해진 퇴근시간보다 늦게 퇴근하는 것은 병원이 집보다 편해서도 아니고 일중독자 여서도 아니다. 바로 환자의 ‘안전’때문이다.

왜 그럴까?

지금의 인력 수준과 업무량으로는 근무시간 내에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신규 간호사들은 한두 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환자들 병력과 각종 검사, 투약 목록 등을 파악하고, 근무 중에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빨리 처리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검사나 시술 전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환자에게 줄 약들을 챙긴다. 이렇게 미리 와서 준비하지 않으면 근무시간 중에 제시간에 약을 주고 제시간에 환자에게 필요한 처치를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간호사들은 퇴근시간을 한참 넘겨서도 남아서 일을 한다. 그렇게 일찍 와서 일을 해도 근무시간 내에 일을 다 마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최대한 미뤄놓고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해결하는 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신규 간호사들은 에러를 내지 않기 위해, 사고를 치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고 막차가 끊긴 새벽 택시를 타고 귀가하곤 했었다. 물론 무급으로.

어떤 사람들은 병원이 칼출근, 칼퇴근하도록 권장하는 건데 좋은 것 아니냐 대체 뭐가 불만이냐고 생각할 것이다. 병원이 인력을 충원하고 간호사들의 노동강도를 경감시켜주기 위해 이런 캠페인을 벌이는 거라면 너무 좋겠지만, 사실 이런 공지가 내려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얼마전 병원이 지불한 시간외수당 10억원때문이다.

인력충원 없는 근무시간 조절, 환자들에게 위험하다

작년 10월 ‘간호사 첫 월급 36만원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서울대병원은 국정감사 등에서 지적받고 노동청에서 근로감독 지시가 내려와 조사에 들어갔었다.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간호사들이 시간외수당을 거의 신청하지 않은 사실을 수상하게 여긴 근로감독관들이 간호사들이 일할 때 쓰는 전자의무기록의 로그인/로그아웃 시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시간외수당 10억원이었다.

간호사들이 전자의무기록에 로그인한 시간과 로그아웃한 시간을 기준으로 시간외수당을 지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게 2017년 8월부터 11월까지 고작 4개월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10억원이 끝이 아니다. 서울대병원의 간호사는 약 3000명이다. 이 대규모 임금체불 사태에 누락된 인원에 대한 추가 지급 예정 금액도 많이 남아있다.

근로감독관에게 걸려서 4개월치 시간외수당을 지급하고 나니 억울한 마음이 든 걸까. 간호사들에게 갑자기 일찍 출근하지 말라고 하고, 늦게 가지 말라고 한다.

인력을 충원해주고 업무량을 줄여주면 어련히 그렇게 안 할까. 하지만 인력은 그대로에 환자수도 그대로인데 무작정 근무시간만 줄이라고 한다.

나는 칼출근, 칼퇴근을 하라는 공지에 대해 인력 충원 없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간호사들을 몰아세우다가는 환자안전사고가 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간호관리자는 어떤 안전사고를 말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신생아 사망 사건이 발생했던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 발생했던 양천구 이대목동병원.ⓒ뉴시스

사고는 일어나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사고? 나도 모른다.

간호사가 환자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일을 더 짧은 시간에 해내라는 압박 속에서 허둥지둥 서두르면서 일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기상천외한 사고요.

안전사고라는 것은 일어나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삼풍백화점은 무너지기 직전까지도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고 있었다.
누군가 태안화력발전소의 컨베이어 벨트가 위험해 보인다고 생각은 했겠지만 24살 청년이 그렇게 목이 잘린 채 죽을 거라고는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사망사건의 유족들 중에서 자신이 그런 일의 피해자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그 병원을 찾은 사람이 있었을까.

과연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사고는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환자에게 그런 사고가 일어나는 걸 예방하는 것이 간호사의 의무다. 이것이 예방의 역설이다. 안전상의 위험을 경고하고 온몸으로 버텨가며 그 사고들을 막아내면 ‘거봐, 아무 일도 안 일어나잖아. 오버하긴.’ 이런 냉소가 돌아올 뿐이다.

병원에게 이런 식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끔찍한 결과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간호사들이 시간에 쫓겨 허둥거리다가 환자에게 잘못된 약을 투약하거나, 감염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 하거나, 환자의 위험한 증상을 놓쳐서 환자가 악화되거나...그런데 정말 그런 결과를 보여주길 원하는 걸까.

안전은 상품이 아니다. 그러나 안전을 상품처럼 사고파는 이 나라에서, 오늘도 누군가의 안전은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

이것은 누구의 이익을 위한 거래일까. 자신의 안전이 거래되는 것에 동의한 사람은 누굴까. 적어도 구의역 김군이나 태안화력발전소의 김용균씨나 이대목동병원사건의 유족들은 아닐 것이다.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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