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기고] 누가 그들을 땅으로 내려오게 할 수 있는가?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10일 오전 굴뚝 고공농성장인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에서  공장 정상화, 단체협약 이행 등을 촉구하며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소를 향해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10일 오전 굴뚝 고공농성장인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에서 공장 정상화, 단체협약 이행 등을 촉구하며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소를 향해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5명 고용 승계해달라는 너무나 소박한 요구

파인텍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굴뚝농성 ‘408일을 넘길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십시일반’의 심정으로 오체투지를 펼쳤다. 가장 추웠던 2018년 12월의 겨울날 5일간의 오체투지 행진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드리고 싶어 몇 명의 수녀들이 첫째 날과 마지막 날에 차마 땅에 엎드려 부복하지 못하고 묵주기도로 대신하며 함께 걸었다.

12월 6일 낮 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오체투지 기자회견을 기다리면서, 함께 했던 수녀님이 기자회견문의 ‘우리의 요구’가 너무나 소박해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렇다. 기자회견문에는 세 개의 문장이 있었지만 요지는 5명의 파인텍 노동자들을 모기업 스타플렉스로 고용을 승계해달라는 것이었다. 500명도 50명도 아닌 5명의 노동자들을 스타플렉스가 모기업으로서 책임을 지고 받아 달라는 호소를 하기 위해 두 노동자가 75m 굴뚝 위로 온몸을 던져 외치고 절규하며 몸부림을 치는데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돈을 버는 기업 스타플렉스는 400여일이 되도록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유기된 고양이나 강아지도 발견하면 먼저 구한 후 돌봐줄 주인을 찾아주는 사회가 아닌가! ‘사람이 먼저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문재인 정부조차도 냉혹하리만큼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음 앞에 나도 울컥 눈물을 삼켜야 했다.

당시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체투지가 시작되자 경찰이 길을 막았지만 30~40분 실랑이 끝에 선두에 선 문규현 신부님께서 길을 뚫고 오체투지로 기어서 나가자 이내 경찰은 길을 내주었다. 연대의 마음으로 달려온 시민사회 활동가분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한 몫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체투지 행진에 연대한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동행했던 수녀님과 나도 오체투지 목적을 알리는 프래카드를 들고 차로로 들어가 차선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걷던 중 어떤 분이 조끼를 입으면 좋겠다며 건네주는 것은 사양하게 되었다. 조끼 앞면에는 ‘스타플렉스 약속을 지켜라’, 뒷면에는 ‘노동악법 해체하라’ 라는 구호가 새겨진 검정색 조끼였는데, 겉으로는 아닌 척 했지만 내심 그 구호가 부담스러웠던 까닭이었다. 수도자인 나는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며 눈치를 보았던 것일까? 연대의 마음을 보태기 위해 길거리를 찾아 나섰지만 그들의 목소리에 수도자의 목소리를 보태는 것이 부자유스럽고, 교회 내에서 노동자들의 처우도 그리 당당하게 자랑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평소의 생각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움츠러드는 마음에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 오체투지를 위해 참가자들이 ‘민복’으로 갈아입는데, 어떤 분이 수녀님도 민복을 입으라며 옷을 몸에 감아 주는 것을 장난인 듯이 살짝 밀어냈던 기억도 나서 수녀원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도 아팠다.

문정현 신부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문제해결 촉구 및 끝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하던 도중 행진을 막는 경찰들의 다리 사이를 뚫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문정현 신부가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문제해결 촉구 및 끝장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체투지 행진을 시작하던 도중 행진을 막는 경찰들의 다리 사이를 뚫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김슬찬 기자

사장을 위해 쫓겨나야 하는 노동사회의 현실

수녀원으로 돌아와 공동체 끝기도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오체투지 행렬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제대 위의 십자가를 가렸다. 오체투지 행렬에서 몸에 둘러 준 ‘민복’을 물리치고, 조끼도 손사레치며 밀어냈던 일이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해 길에서 삼켰던 눈물이 쏟아졌다. 하얀 민복을 입은 20여 분이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를 향해서 합장을 하고 북소리에 맞추어 오체투지를 하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그 보다 더 성스럽고, 절박하며, 간절한 기도가 또 어디 있을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은 생존 그 자체이다. 그래서 기업이 노동자의 일자리를 박탈하는 것은 살인행위에 가까운 것이다. 아니 분명 사회적 살인행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김세권 사장도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이사이다. 파인텍 굴뚝농성 역시 일자리를 빼앗긴 다섯 명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의 이익을 위해서 쫓겨나야 하는 노동사회 현실의 반영이다. 작금 노동사회의 현실에 대해 온몸을 던져 외치고 있는 저 굴뚝 농성자들을 누가, 어떻게 땅으로 내려오게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묻는다. 나도 물었고, 우리 수녀님들도, 아주 드물게 굴뚝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도 묻는다. 왜 굴뚝에 올라갔습니까? 언제 내려오나요? 오체투지는 왜 합니까? 단식농성은 왜 합니까? 들을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우리 수도자들도 기도를 빼면 할 수 있는 일이 저 굴뚝에 올라가 있는 두 분의 노동자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매주 금요일 저녁 5시에 밥을 올려드리고 밑에서 농성천막을 지키고 있는 세 분의 노동자들과 함께 저녁밥을 먹는 일뿐이다. 지난 음력 설날 어느 수도회 수녀님들이 떡국 나눔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시작한 일이 해를 넘기려 한다. 2~3개월이면 되겠지 하고 시작했던 금요일 저녁 밥 나눔, 몇몇 수도회가 당번을 정해서 하니 한 달에 한번 밥을 준비하면 되는 일이지만 쉽지 않았다. 중간에 펑크가 난 일도 있었다. 고작 한 달에 한번 밥 나눔을 하는 일도 날수가 길어질수록 쉬운 일이 아니구나 라고 서로 말하는데, 굴뚝 위에서 408일을 이미 견디어 냈고, 또 다시 410여일을 견디고 있는 두 분의 노동자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는가! 그분들이 땅에 발을 딛고 노동사회의 구성원으로 숨을 쉬며 살아갈 권리를 찾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 아니 정부가 나서기 전에 김세권 사장이 기업대표로써 책임을 지는 용기를 보여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에서  공장 정상화, 단체협약 이행 등을 촉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에 앞서 굴뚝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박준호 노동자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스타플렉스(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1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에너지공사에서 공장 정상화, 단체협약 이행 등을 촉구하는 오체투지 행진에 앞서 굴뚝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홍기탁, 박준호 노동자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김세권 사장, 기업대표로써 책임지는 용기 보여달라

요즈음 흥행하고 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아티스트들의 아프리카 난민을 돕기 위한 ‘Live Aid' 공연에 감동하여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참여하는 모습은 오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바로 어제 베트남 축구 감독으로 활동 하고 계시는 박항서 감독도 베트남 우승 축하금 10억 달러를 베트남 축구 발전을 위해 기부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공인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기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나눌 용기를 가진 이들이 마음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자신이 가진 것의 아주 작은 일부를 나눌 뿐이다. 김세권 사장도 노동자들이라는 이웃이 없었다면 어떻게 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 될 수 있었겠는가. 기업이 성장한 만큼 노동자들의 희생이 비례한 결과일 것이다. 박항서 감독처럼 김세권 사장도 수년전 대화로 408일의 굴뚝농성을 멈추게 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노동자들과 일자리를 나눔으로써 무한 감동을 선사해주기를 바란다. 아무런 힘도 없는 수도자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최연엽(수녀.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