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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법, 건설현장 ‘죽음의 행렬’도 막는다

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가 당한 불의의 사고가 천신만고 끝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으로 이어졌다. 미흡한 점은 곳곳에 있지만 성과도 크다. 특히, 하루가 멀다하고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건설현장 ‘죽음의 행렬’이 멈출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는 산안법 전부 개정안의 핵심은 원청의 안전관리 책임 강화인데, 우리 건설공사는 사실상 모든 공사가 원하청 구조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건설 안전에 대한 조항이 다수 신설되면서 현장의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한 참석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 추모제에서 한 참석자가 촛불을 밝히고 있다.ⓒ김철수 기자

30일 고용노동부와 국회, 건설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산안법 개정안은 건설 안전 특례규정을 둬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 책임 상당부분을 원청이 함께 지도록 했다. 그간 건설현장은 하청이 안전관리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원청에 보고하는 구조였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보고를 받은 원청은 관리‧감독 부분에만 일부 책임을 지고 하청업체가 주로 처벌 받아왔다. 하지만 개정안은 이같은 구조를 뒤집어 발주자인 원청이 안전관리 계획 수립·집행 주체임을 분명히 했다.

개정안은 건설공사 발주자가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하도록 의무화 했다. 앞으로 발주자는 건설공사 계획‧설계‧시공 등 각 단계에 ‘기본안전보건대장’을 작성해 관리‧확인해야 한다. 의무조항 신설로 영세한 하청 업체들이 고려 할 수 없는 안전대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발주자는 2개 이상의 공사가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는 경우 ‘안전보건조정자’를 둬야하고 안전에 영향을 줄 정도로 공사비를 줄이는 위험한 공법을 강요하거나, 기간을 단축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또 하청이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공사기간 연장을 요청하는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공사기간을 연장하도록 의무화했다.

그간 건설 현장에선 콘크리트 타설시 거푸집이 붕괴해 10여명씩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빈번했다. 개정안에는 이같은 붕괴 사고에 대한 대비책도 담겼다. 개정안은 하청업체가 붕괴 등으로 산업재해 발생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원청과 발주처에 설계변경을 요청할 수 있도록 명문화했다. 원청은 요청받은 내용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명백한 경우가 아니면 이를 반영해 설계를 변경하거나 발주자에게 설계 변경을 요청하도록 의무화 했다.

한 번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산업재해로 이어지는 타워크레인에 대한 특례조항도 마련됐다. 개정안은 건설공사도급인에게 자신의 사업장에서 타워크레인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계나 기구 등이 작동되고 있거나 설치‧해체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경우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했다. 타워크레인 사고 발생의 상당수가 부실 설치‧해체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한 규제 조항도 나왔다. 산안법 개정안은 설치와 해체 사업자들을 등록하도록 하고 사업주가 등록한 업체에만 타워크레인 설치‧해체 작업을 맡기도록 의무화 했다.

건물 철거 중 붕괴사고 일어난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매몰자(하얀 헬멧)를 구조하고 있다
건물 철거 중 붕괴사고 일어난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매몰자(하얀 헬멧)를 구조하고 있다ⓒ뉴시스

산안법 위반 가중처벌
5년내 두 번 이상 형량 1/2 가중,
재범률 매우 높은 건설업계
인식변화 가져올 듯

산업재해 발생시 사업주의 가중 처벌을 신설한 것도 건설 현장에서는 큰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산안법 개정안은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근로자가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해당 범죄를 5년 이내 두 번 이상 범하는 경우 형의 1/2을 가중하도록 했다. 그간 건설업자들 사이에서는 ‘사고가 나도 벌금 몇백만원 물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가중처벌 조항이 신설되면서 ‘더이상 안전 사고는 안된다’는 인식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산안법 위반 5105건의 사건중 중 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은 고작 29건, 전체 0.5%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2016년, 사망사고에 대한 평균 벌금액은 432만원에 불과했다.

정부와 사법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은 재범률을 높였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2016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범의 재범률, 즉 전과자 비율을 살펴보면 전과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3배 이상 많다. 전체 산안법 위반사범 1873명 중, 전과가 있는 사람은 75%에 육박하는 1402명에 달하는데 반해 전과가 없는 초범은 4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만큼 재범 확률이 높다는 뜻인데, 눈여겨봐야 할 점은 전과가 있는 75% 중 전과 2범 이상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전체 전과자중 2범 이상은 70% 가량으로 943명에 달한다. 산안법 위반 전과가 9범 이상인 사람도 91명이었다.

노동부 통계는 전과자를 산업별로 구분하지 않고 있지만 건설업계는 재범 상당수가 건설업 종사자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매년 고용노동부가 집계하는 산업별 중대재해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건설업이 예외 없이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용균법’이 통과된 바로 다음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7년 중대재해 발생현황 역시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중대재해 발생 686개 업체 중 건설업체는 414개로 전체의 60%에 달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그간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대표자가 업체 명의만 변경해 입찰에 참여하고 낙찰받는 ‘모자 바꿔쓰기’가 만연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에 가중처벌 조항이 신설되면서 원청과 하청 모두 산업재해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굴삭기가 공사 현장에서 작업중인 모습(자료사진)
굴삭기가 공사 현장에서 작업중인 모습(자료사진)ⓒ제공 : 뉴시스

노동자·특수고용직 같이 근무
현실 무시한 개정안 한계도 있어
개정안 취지 시행령에 담길 수 있나?
“업계 압박 계속될 것” 우려도

산안법 개정으로 그간 건설현장 안전규제가 상당부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일부 아쉬운 점도 있다. 특수고용직에 대한 안전대책 미흡이 대표적이다. 건설현장에는 다양한 직군이 함께 작업하고 있는데 이번 개정안은 굴삭기, 덤프트럭 등 기계 설비를 운용하는 차주(특수고용직)에 대한 안전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건설현장에는 회사에 고용된 운전자와 개인 사업자로 운영하는 차주가 함께 근무한다. 똑같은 일을 하지만 신분이 다른 것”이라며 “개정안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고용된 운전자는 보호하고, 특수고용직 운전자들은 보호하지 않는 맹점이 있있는데 이는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신설될 시행령에 ‘법 개정 취지가 충실히 반영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안전보건대장이나, 안전보건조정자 등 건설현장 안전장치에 대한 구체적 항목들은 대부분 시행령에 위임되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안전보다는 건설업계의 이익이 반영돼 규제가 후퇴하면 안된다는 지적이다.

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은 그간 건설업계와 경영계의 반발로 사실상 사장될 뻔 한 법”이라며 “김용균씨 사망으로 국민적 공분이 일면서 통과되기는 했지만 시행령 신설 등 향후 논의 과정에서 업계의 압박이 꾸준히 제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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