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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광화문 푸른물결 기다려져요” 그의 손에 든 수천 장의 ‘통일엽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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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동포 여러분, 남녘의 국민 여러분, 해외 동포 여러분, 전쟁 없는 한반도가 시작되었습니다."

2018년 9월 19일 평양. 지난해를 관통했던 가장 역사적인 순간이 아닐까. 전 세계가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 정상은 나란히 서서 70년 가까이 계속된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포했다. 이렇듯 남북이 자주적으로 만들어간 평화국면은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의 긴장완화를 이끌어냈고, 65년 한반도 분단사에 중대한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시간들을 벅찬 가슴 안고 지켜보는 진짜 주역들이 있었다. "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박근혜 폭정을 끝낸 촛불민중들. 한국사회 민주주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획을 그은 이들의 항쟁이 없었다면 '평화의 원년' 2018년이 올 수 있었을까.

"한국사회는 '촛불'의 전과 후가 달라요. 우리는 촛불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집결시켰고, 결국 우리의 힘으로 민주주의와 평화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남북 정상이 무엇을 선언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한반도 평화 안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봐요. 촛불시민답게 자체의 힘을 결집시키고 주도적인 활동이 동반돼야 합니다."

권순영 씨
권순영 씨ⓒ권순영 씨 제공

서울겨레하나 운영위원장 권순영(40) 씨는 어렵게 물꼬를 튼 한반도 평화국면이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일상에서의 통일'이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 자리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상적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는 통일운동"이 꿈이라는 그는, 즐겁고 자발적이며 역동적인 통일운동을 지향한다.

촛불이 다시 열어젖힌 보편적 평화의 시대. 다만 한국사회에서 '통일'이라는 단어가 갖는 역사성과 함께 다가오는 '중의성'은 그의 고민거리다. 반세기가 넘도록 이 땅의 분단과 냉전에 지속성을 부여해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반공이데올로기에 기초한 적대적 통일론이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에야 비로소 공존공영의 정신에 기반한 평화적 통일 지향이 한국사회에서 '시민권'을 얻게 된다.

"어쩔 수 없는 분단사회의 딜레마이기도 해요. '통일'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맥락에서 사용한 역사가 사실은 길지 않기 때문에, 지극히 단순한 평화담론을 꺼내들어도 '빨갱이'로 매도당하기 쉬웠던 겁니다. 민족의 아픔을 악용하는 수구세력들은 대북 흡수통일론을 은연중에 암시하면서 평화통일론을 교란하고 대중의 혼란을 조장하는 거에요. 대표적인 사례가 박근혜 '통일대박론' 아닙니까."

그가 꿈꾸는 '일상에서의 통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남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이를 환영하기 위한 서울시민환영단이 지난해 11월 14일 꾸려졌다. 과거처럼 일부 단체의 활동가들 주도하는 형태가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재능기부 등을 통한 참여활동이 이뤄지는 형태다. 권 씨는 서울시민환영단의 기획단장을 맡았다.

서울시민환영단은 서울 전역에 '서울정상회담 환영' 현수막을 게시하고 홍보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환영단 모집에 열중했다. '우리동네 환영단', '우리가족 환영단', '우리회사 환영단', '대학생 환영단' 등 다양한 형태로 시민들의 자발적 동참이 이어졌으며 거리에서의 각종 캠페인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환영엽서 쓰기 캠페인에는 12월 말까지 6천명이 넘는 시민들이 동참했다.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할머니부터 대동강변을 달리고 싶다는 자전거 라이더, 평양역에서 포장마차를 하고 싶다는 노점상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북미관계에 종속돼온 남북관계가, 서울 정상회담을 결정적 계기로 주도양상을 역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마음과 열기를 통해 활동하는 방식이 의미가 있을 것으로 봤고, 보수언론의 공격이 있겠지만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죠. 역시나 첫발을 떼는 순간부터 강력한 공격이 시작되더군요. '정상회담'을 환영하는 것과 '김정은'을 환영하는 것은 분명 다른데, 보수언론들은 의도적으로 '김정은 환영단'으로 싸잡으면서 여론 왜곡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마주친 시민들의 분위기는 그런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었죠."

서울시민환영단에 보내온 시민들의 환영엽서들
서울시민환영단에 보내온 시민들의 환영엽서들ⓒ기타

기대를 모으던 김정은 위원장의 2018년 '연내 답방'이 미뤄졌다. 어찌 실망이 없을까. 하지만 권 씨는 "올해 안이 아니면 어때요"라며 지나가던 한 시민의 반응을 떠올렸다. 한반도 평화의 대통로가 열리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날짜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아직도 거리 캠페인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여러 조건들이 순탄치는 않지만 방향이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역사적인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토해 "내년에도 남북의 두 정상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나가자"는 뜻을 전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환영하는 우리의 마음은 결코 변함이 없다"고 화답했다. 양 정상은 새해에도 함께 어깨 걸고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환영단은 새해 서울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발표되면 집집마다 단일기를 달고 온 동네를 푸른 물결로 만들자는 구상이다. 그리고 저녁에는 손마다 단일기를 들고 광화문광장에 모여 뜨거운 환영열기를 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동참하고자 하는 시민들은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 중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앞에는 마트노동자들이 단일기를 만국기처럼 꾸미는 퍼포먼스가 열렸고, 학교에서는 단일기로 등을 만드는 수업이 진행됐다. 어느 술집 주인은 '정상회담 환영 주점'으로 컨셉을 잡아 영업을 하기도 한다. 활동력이 왕성한 젊은 층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없겠느냐"는 문의가 가장 많다고 한다. 이들은 번화가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댄스버스킹을 연다. 재능기부를 통해 만들어진 각종 '굿즈'(goods)를 비롯해 수천 점의 환영엽서를 전시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갈등과 혐오 조장하는 언론"

서울정상회담 환영엽서를 작성 중인 시민
서울정상회담 환영엽서를 작성 중인 시민ⓒ서울시민환영단 제공

인터뷰 도중 권 씨는 최근 주요 지상파 방송사가 마련한 토론회에서 뜻밖의 '봉변'을 당한 경험을 털어놨다. 주제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찬성 또는 반대하는 이유'. 김 위원장의 답방을 계기로 마련될 서울 정상회담에 대해 거대 언론사가 갈등 프레임을 짜는 기획임이 분명했다. 권 씨는 기계적 중립을 내세우는 영상 편집의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뻔히 예상됐지만, 침묵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

상대 패널은 권 씨에게 "지금 북한의 의도대로 끌려가고 있다"며 일장연설을 늘어놨고, 권 씨는 "그건 대통령과, 그 대통령을 뽑은 국민들과, 정상회담에 환영을 보낸 대다수 국민들에 대한 무시"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대통령) 안 뽑았다"는 비아냥이 되돌아왔다.

권 씨는 화가 났다. '혐오'를 자신의 존재 근거로 활용하려는 사람들, '평화' 담론이 그 존재기반을 근저부터 허물어가는 데 대해 저항하는 소위 분단주의 수구세력들. 그들과 화면을 양분하는 일익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은 그저 '재미있는 그림'으로 다룰 뿐이었다.

"언론은 환영단과, '김정은 반대'를 외치는 극우단체를 한 컷 한 컷 보여주면서 갈등을 조장하고 있어요. 그럼 시민들은 이를 분란으로 받아들이고 평화담론을 사회혼란의 영역으로 치부할 수 있는 거에요. 반대론자로 그럴 듯하게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평화'가 사회의 주요 이슈로 다뤄지는 것 자체가 불쾌하고, 그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도 싫은 거죠. 과거 적대적 환경으로의 회귀를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되찾기를 원하는 세력들과, 평화와 통일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소박한 활동을 같은 선에서 놓고 보는 게 온당한가요?"

'촛불' 들던 광화문에서 '단일기' 푸른물결을 기다리다

권순영 씨
권순영 씨ⓒ권순영 씨 제공

권 씨에게는 모든 것이 경험적으로 익숙한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슈에 대한 언론의 무능하고도 선정적인 보도, 이해관계가 밀접한 정치세력의 사악한 음모적 행태.

권 씨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이들에게 "너희들은 필요 없다!"고 일침하며 '검은 티셔츠 행동' 운동을 제안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구조를 하라니깐 구경을 하고, 지휘를 하라니깐 지랄을 하고, 보도를 하라니깐 오보를 하고, 조사를 하라니깐 조작을 하고, 조문을 하라니깐 연기를 하고, 사과를 하라니깐 대본을 읽고, 책임을 지라니깐 남탓을 하니, 하지를 않으려면 하야를 하라' 문구로 유명한 그 티셔츠다.

권 씨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면서 나는 밥을 먹고 있었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평범한 카페를 운영하던 그는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협상으로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시민행동을 제안하며 이를 온 몸으로 막아낸 바 있다. 천생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하는 '으쌰으쌰'가 체질인 모양이다.

"세월호 검은티 행동 때도, 소녀상 지킴이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뭔가를 주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항상 많지 않아요. 그저 '분명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을텐데…'에서 시작되는 거죠. 혼자서는 하기 힘들지만 누군가 손을 내밀면 맞잡을 사람들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저는 행동을 제안하고 공간을 만든 것밖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지금 제가 열심히 하고 있는 '일상의 통일운동'도 마찬가지의 영역이에요. 일상의 즐거움과 함께하는 통일, 그런 열망을 가진 시민들과 함께 실천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제게도 즐거운 일상이죠."

2019년 새해에도 평화의 시곗바늘은 멈춤 없이 돌아간다. 광화문광장의 넘실대는 단일기 물결 속에서, 권 씨와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감격에 겨워할 그 '어느 날'은 언제쯤일까.

서울시민환영단 활동 모습
서울시민환영단 활동 모습ⓒ서울시민환영단

신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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