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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하다 맞거나 생명 잃는 의료진들.. 환자 안전에도 ‘빨간불’
정신과 진료 상담 중이던 의사가 환자에게 흉기에 찔려 사망한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경찰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정신과 진료 상담 중이던 의사가 환자에게 흉기에 찔려 사망한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경찰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뉴시스

"진료 중인 의료진은 버스운전을 하고 있는 운전기사와 같습니다. 만일 누군가 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기사를 때리면, 승객들의 안전은 무사할까요?" (최원영 서울대학교병원 간호사)

병원에서 '의료진의 안전'은 '환자의 생명·안전'과 직결돼 있다. 의료계에서는 의료진을 향한 폭력을 막지 못하면 다른 환자들이 위험에 처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병원의 경우에는, 대체 인력이 없거나, 대체 시간 동안 환자들의 생명이 달린 긴급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 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환자가 의사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의료진에게 안전한 진료 환경을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병원 내 의료진 폭행을 근절하기위해 개정된 '응급의료법'이 올해부터 시행되지만,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중의소리는 3일 현장 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의 목소리를 통해 의료진의 안전문제를 되짚어봤다.

서울대병원에서 근무하는 최원영 간호사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저도 폭행을 당해본 적이 있다. (의료진이) 따귀를 맞거나, 환자가 임신한 간호사의 배를 때리는 일도 일어난다"며, "단지, 사건화 되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의료진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환자나 보호자 등을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드물었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응급실 의료진 폭행 방지법', 응급실 외에서 발생하는 폭행은?

응급실 자료사진
응급실 자료사진ⓒ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응급실 내 의료진 폭행' 이 이슈화 되면서 안전한 진료환경 마련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다. 지난달 27일엔 응급실에서 응급의료종사자를 폭행할 시 처벌을 강화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하, 응급의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통과된 '응급의료법'은 응급실에서 응급의료종사자에게 상해를 입히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중상해의 경우 3년 이상의 징역, 사망의 경우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또 음주 상태에서 폭행·기물파손 등 응급의료 방해행위를 할 경우에도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법은 '응급실 안 폭력행위'만 처벌된다는 한계가 있다. 故 임세원 교수 사건의 경우에도 환자는 진료실 안에서 의사에게 흉기로 위협을 가했고, 몸을 피한 의사를 병동 복도까지 따라와 흉기로 수차례 찔렀다. 지난해 7월 6일엔 조현병으로 진료를 받아온 40대 환자가, 다른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의사의 진료실로 들어가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가방에서 망치를 휘두르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처럼 의료진에 대한 폭행은 응급실뿐만 아니라, 병동과 진료실 등 병원 내부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 폭행과 협박 시, 가해자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응급의료법'과 달리 피해를 입은 의료진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라 실제 처벌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이외에도 응급실 외 장소에서의 폭력행위 가중처벌 법안이 발의되어 있으나, 국회에 발이 묶인 상태다.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의원 등은 소방대원이나 의료인 등에게 폭행·협박 등을 행사하여 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을 가중처벌 하도록 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으나, 현재 이 법률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잠들어있다.

지난해 11월 진료실 전반을 범위로 의료진 폭행의 가중처벌을 확대 적용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논의됐으나, 이견이 적지 않아 통과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법무부와 일부 의원들은 의료기관의 범위, 진료과목·의료행위 종류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처벌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의료진 폭행, 개인이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일 아냐"

이같은 처벌 강화도 필요한 일이지만, '사후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장에서는 지금 당장 실효성 있는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의사협회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진료현장에서 분명한 폭행의 의도를 가진 사람의 접근에 대해서 의료진은 무방비 상태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절대 개인의 힘으로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살인 사건의 경우, 진료실 내부에 대피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CCTV 확인 결과, 임 교수는 진료실 옆 다른 진료실로 갈 수 있는 문으로 몸을 피한 뒤, 다른 진료실에서 복도로 빠져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최원영 간호사는 "(병원에서) 따로 어디로 대피하라고 되어 있는 것은 없다. 빈 방으로 도망가야 한다"며 "환자가 난동부리면 비상벨을 누르긴 하는데, (경비인력이) 상주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 칼을 휘두르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칼맞은 다음에 오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든다"고 말했다.

흉기 등 위해 도구를 병원에 가지고 오지 못하도록 보안 검사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재 서울대병원의 경우 하루 외래 환자만 1만여 명 정도로 추산되고, 환자랑 동행하는 보호자까지 더하면 숫자가 더 늘어나, 실효성 있는 대책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최 간호사는 "공항처럼 모두 보안검색을 하거나 통제한다면, 진료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환자를 접촉하며 진료를 하는 업무의 특성상, 가림막을 설치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8일 방영된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한 장면.
지난달 8일 방영된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한 장면.ⓒjtbc 화면 캡쳐

의료진 폭행에 관대한 사회...인식부터 달라져야

의료계에서는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에 대해, 사회 전체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상류층의 자녀 교육을 주제로 한 한 드라마에서는 수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칼을 들고 의사의 뒤를 쫓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여 방송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최 간호사도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의료진 폭행 장면을 언급하며 "그런 장면이 가능한 이유는 의료진 폭행에 대해 사람들이 거부감이 없는 것"이라며 "'너무 아프니까', '환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돌아가신 교수님은 47세 나이로 의사로서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경험과 노하우가 축척돼 있고, 체력적으로 왕성한 나이다. 그 분이 보던 환자가 얼마나 많았겠나"라며, "의료인을 해하는 게 개인에게도 엄청난 불행이지만, 그 사람이 치료하던 많은 환자들한테도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드라마 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대기줄이 길어서', '의료진이 불친절해서', '진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의료진에게 폭행을 가해지고 심지어는 살인 사건도 발생한다. 병원에서의 폭력이 용인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회적 의식 점검이 필요하다.

2일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 의사협회 최대협 회장과 진행부, 대한병원협회 임영진 회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이사장, 강북삼성병원 신호철 병원장 등이 조문했다.
2일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 의사협회 최대협 회장과 진행부, 대한병원협회 임영진 회장, 대한신경정신의학회 권준수 이사장, 강북삼성병원 신호철 병원장 등이 조문했다.ⓒ의사협회 제공

의료계·정부, '안전한 진료환경' 위한 대책 마련 고심

의료계는 의료진과 환자의 안전한 진료 환경을 위해 예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이하, 의학회)는 사건 당일인 지난달 31일, 고 임세원 교수 애도성명을 발표하며 "의사에게 안전한 치료환경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환자에겐 지속적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정신보건의료 제도 하에서 이러한 사고의 위험은 온전히 정신과 의사와 치료 팀 스텝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남아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의학회는 2일 추가로 발표한 애도성명에서 "현 이사장과 차기 이사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며 "학회 홈페이지에 추모 공간을 개설하고 안전하고 완전한 진료 환경 구축을 위한 현황 조사 및 정책 방안들을 논의하고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의사협회 최대협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임세원 교수의 빈소에 조문한 후 "진료공간의 폭력문제를 논의할 사회적 합의기구 설립을 의협이 주도해나가겠다"며 "복지부와 관련 기관, 의료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동참해 반드시 이 문제를 근절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차기 임시국회에서 꼭 개정돼야 한다"며 국회의 역할을 촉구했다.

정부와 국회도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박능후 복지부장관도 이날 빈소에 방문해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법들은 모두 사후적인 처벌을 규정하고 있고 예방 부분은 부족하다"며 "예방을 위해 어떤 장치를 만들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연구해 이른 시일에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또 "정신과에 한정된 문제는 아닐 것"이라며 "사고 유형별, 진료과별 특성별로 예방책이 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3일 '안전한 진료를 위한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신경외과 전문의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윤일규 의원이 TF 팀장을 맡는다. 윤 의원은 강북삼성병원 진료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유명을 달리한 고 임세원 교수의 이름을 딴 '임세원법'을 대표 발의하기로 했다. 임세원법은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을 총칭하는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이날 "응급실 외 진료실서 발생한 폭력은 개정 전 수준에 머물고 있고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해 처벌 여부도 불투명하다"며 "응급실 외에서 발생한 의료인 폭행에 대해서도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신건강복지법 개정도 필요하다"며 "퇴원 이후에도 지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외래치료 명령제를 강화하고 전문가가 필요하다 인정하면, 동의 없이 퇴원사실을 지역 정신건강보건센터에 알리도록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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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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