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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지 감수성’ 강조되자 가해자 진술 의심한 법원
대법원
대법원ⓒ민중의소리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무죄를 인정한 것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판결이라며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된 사건에서 가해자가 유죄를 선고받았다.

대전고법 형사8부(부장판사 전지원)는 강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38)씨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과 달리 징역 4년 6개월과 함께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폭력조직원인 박씨는 2014년 4월 충남 계룡의 한 모텔에서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남편과 자녀를 해칠 것처럼 위협해 친구 부인인 A씨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박씨의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수사기관에서는 성관계에 대해 부인했으나 뒤늦게 인정하는 등 진술을 번복하고 경험상 납득하기 어려운 진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부는 박씨가 파기환송심에서 제출하기로 한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은 점 등과 함께 “30년 지기 친구가 출국한 틈을 이용해 그 아내를 성폭행하고도 피해 회복 조치 없이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노력이 없어 엄히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성범죄 사건에 대한 피해자 대처 양상은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한 대법원의 환송판결 취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박씨의 성폭행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로 대전고법에 돌려보낸 데 따른 것이다.

앞서 1심은 A씨의 모습이 ‘성폭행 피해자 답지 않다’는 이유로 박씨의 강간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씨는 폭행 혐의 등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강간에 대한 직접증거는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데,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 당시 모텔 주차장 폐쇄회로(CC)TV에 박 씨와 함께 찍힌 A씨의 모습이 피해자라고 보기에 지나치게 자연스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피해 직후 박씨의 담배를 피우고, 가정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는 A씨의 진술에 대해 피해자의 행동이라 보기 어렵다는 등을 지적하기도 했다. 아울러 피해자가 범행 현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이 같은 판단에 A씨 부부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난해 3월 전북 무주의 한 캠핑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의 죽음에도 2심의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실제 박씨가 피해자를 폭행·협박했고 이로 인해 피해자 항거가 불가능하게 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돼 간음에 이른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고인이 된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항소심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 내용은 수사기관에서부터 1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될 뿐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박씨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을 뿐 아니라 진술 자체로 모순되거나 경험칙상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특히 재판부는 “원심이 성폭행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성인지 감수성을 결여했다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 문화와 인식 등으로 인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 가해자와의 관계나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성폭력의 책임을 ‘거부하지 않은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성폭력 피해자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며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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