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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전쟁은 여성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방글라데시 ‘환향녀’ 비랑가나
책 ‘작전명 서치라이트- 비랑가나를 찾아서’
책 ‘작전명 서치라이트- 비랑가나를 찾아서’ⓒ이프북스

서울 마포 성산동 한적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나온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이 박물관은 전쟁과 여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간절함 바람을 담고 있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 내부에 있는 계단 벽에는 할머니들의 유언이 사진과 함께 새겨져 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지 못했을 거예요.”, “내가 살아남은 게 꿈 같아 꿈이라도 너무 험악한 악몽이야.”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또는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할머니들의 지난 시간은 아픔 그 자체였다.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었지만 할머니들은 오랫동안 침묵해야만 했다. 돌아온 고향에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깊은 침묵을 깨고 고 김학순 할머니가 지난 1991년 8월 14일 국내 거주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하면서 많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용기를 내 자신이 겪은 피해를 밝혔다. 많은 이들이 이들의 용기에 힘을 보탰지만 사회 한편에선 차가운 시각이 여전했다.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은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에 세워질 예정이었지만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반대 목소리 때문에 이곳으로 옮겨 지난 2012년 문을 연 사실은 이런 시각을 보여준다.

수십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곱지않은 시선과 싸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실은 전쟁으로 인한 여성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여실히 느끼게 한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수많은 내전과 강대국의 침략 등 그 역사의 이면엔 강간당하고 외면당한 여성들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모두가 외면한 여성들의 처절한 역사는 방글라데시에도 있다. 바로 ‘비랑가나’들이다. 비랑가나의 본래 뜻은 “용감한 전사”라는 의미다.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1971년 3월 26일에 발발한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 사이에 발발한 전쟁. 이 전쟁으로 서파키스탄은 파키스탄으로,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분리됐다.)을 승리로 이끈 방글라데시 정치 지도자, 세이크 무집이 독립 후 연설에서 “당신들은 우리들의 어머니, 용감한 비랑가나입니다”라고 칭송의 의미로 사용한 단어였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창녀’의 의미로 사용됐다. 우리나라에서 병자호란 당시 청에 끌려갔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들을 뜻하는 ‘환향녀(還鄕女)’가 원래 뜻과는 다르게 ‘화냥년=창녀’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독립전쟁이 끝난 후 국가적 차원에서 이 비랑가나들의 결혼과 재활을 위한 사업을 실시했지만 그 어느 것도 비랑가나 개개인들에게는 성공적인 결과를 안겨주지 않았다.

결국 비랑가나 개개인들은 자신들이 비랑가나였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거나 혹은 비랑가나로 창녀가 되거나, 국가가 주도하는 재활사업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버티며 개인적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전범들에게 사죄와 위자료를 받는다는 것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이런 비랑가나들의 한 맺힌 이야기를 담은 소설 ‘서치라이트- 비랑가나를 찾아서’가 출간됐다. 이 소설은 방글라데시 소설가 샤힌 아크타르가 쓴 다큐소설이다.

방글라데시 언론에 지난 2016년 보도된 비랑가나 관련 기사. 비랑가나들은 정부에 의해 자유의 투사로 인정을 받았지만 사회 속에선 여전히 경멸의 시선을 받는 등 여전히 차별받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 언론에 지난 2016년 보도된 비랑가나 관련 기사. 비랑가나들은 정부에 의해 자유의 투사로 인정을 받았지만 사회 속에선 여전히 경멸의 시선을 받는 등 여전히 차별받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인터넷 캡쳐

소설 속에 등장하는 비랑가나들은 그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쏟아낼 수 있는 회담,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끼리 살아낼 수 있는 연대와 전범재판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흥미에 맞게 부각되고 잊혀지는 일이 반복되며 결국은 잊혀지는 슬픈 운명을 보여준다. 소설의 주인공은 매리엄이다. 매리엄은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대학생으로 지식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동생을 고향에 보내고 혼자 다카에 남아 있다 적군인 파키스탄 군인에 붙잡혀 ‘비랑가나’가 된다.이렇게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무려 20만명에 이르렀다.

이 소설은 철저하게 매리엄의 시각과 목소리로 방글라데시의 독립전쟁, 공산주의, 민주화 운동 그리고 산업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쟁의 시기에 남성들은 영웅이 되거나 전범이 되거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반면 굶어 죽을 걱정 없고 배운 만큼 배운 지식인을 포함한 얼마나 많은 다양한 여성들이 어떻게 ‘비랑가나’에서 ‘창녀’로 전락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승리한 남성들만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전쟁이라는 무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서 어떤 남성들은 어떻게 사라지고 또 몇몇은 어떻게 위장해 살아남는지, 살아남은 이들은 무엇을 잃은 채 살아냈는지 여성의 시각으로 담백하면서도 신랄하게 이야기한다. 그런 까닭에 매리엄은 그 자체로 방글라데시를 상징한다. 두 강국에 의해 착취당하고 독립과 자주를 이뤄냈음에도 가족과 연인 등 가까운 모든 관계에서 소외당하거나 배척되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홀로 생존할 수 없이 외롭고 위태로운 존재, 매리엄. 지금 대한민국의 뜨거운 미투 열풍 속에서 2차 가해 등 온갖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성범죄 피해 여성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아시아 페미니즘 연구자인 최형미 여성학 박사는 “서구 페미니즘만 아는 것은 반만 아는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식민지 경험, 빈곤, 인종 차별, 여성 노동착취 등, 이중 삼중의 억압 아래 있다. 그래서 많은 아시아 여성들은 가족을 소중하게 여겼고 강한 모성으로 자식과 공동체를 지켰으며, 자신을 이용하고 배제하는 국가와 민족해방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서구는 이런 아시아 여성들을 연약한 피해자로 읽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빅시스터를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아시아여성들을 만나야 한다. 이 책 ‘작전명 서치라이트- 비랑가나를 찾아서’는 1971년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봉쇄하려는 파키스탄군에게 강간당하고 남편, 가족 그리고 공동체에게 학대받고 버림받으며, ‘밖으로 쫓겨난 20만 시스터’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며 “비랑가나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숨에 위안부 할머니, 환향녀, 기지촌의 양공주, 광주 민주화운동 여성피해자들, 그리고 우리의 얼굴을 보게 된다. 우리 여성들은 살아남았으며, 피맺힌 기억은 미래의 나침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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