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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그 자체로 완성이고 전부인 리좀 같은 음악
엡마의 두번째 음반 ‘Shapes, Textures, Rhythms and Mood’
엡마의 두번째 음반 ‘Shapes, Textures, Rhythms and Mood’ⓒ엡마

비평가는 옹호하거나 비판한다. 비평가는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흔들리며 아름다움과 가치를 옹호한다. 자신이 발견하고 확신하는 아름다움과 가치의 편에서 아름다움과 가치에 이른 작품을 쓰다듬으며 작품이 걸어온 길을 되짚는다. 걸음마다 피어난 향기를 기록하고, 미처 이르지 못한 작품의 발걸음을 냉정하게 옮겨 담는다. 옹호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비판하는 이유를 주장한다.

하지만 때로 옹호해야 하는 작품을 놓치기도 하고, 비판해야 하는 작품에 눈 감기도 한다. 이미 많은 이들이 호평해 대세가 된 작품과 트렌드를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한 세상이다. 나 역시 굳이 다들 모르는 작품, 알아주지 않는 작품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싫은 소리하는 수고를 감당하지 않을 때가 있다. 지난 해 3월에 엡마가 발표한 음반 [Shapes, Textures, Rhythms and Mood]에 대해 이제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이다. 이 작품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주목했거나 혹평했는지는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음악이 내 귀에 와 묵직하게 눌러앉았다면 비평가는 그 무게에 대해 말할 의무가 있다. 얼마나 무겁고, 어떻게 얼얼한지 설명할 책임이 있다.

엡마의 두번째 음반 ‘Shapes, Textures, Rhythms and Mood’
엡마의 두번째 음반 ‘Shapes, Textures, Rhythms and Mood’ⓒ엠마

자유롭고 거침없으면서도 조화로운 프리재즈

소리헤다라는 이름으로 두 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한 재즈/힙합 프로듀서 김광규는 2017년 엡마(Aepmah)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음악을 발표했다. 이 음반은 엡마의 두 번째 음반이다. 음반에는 딱 두 곡뿐이다. ‘Side A - Shapes, Textures, Rhythms and Moods’와 ‘Side B – 화(火)’는 각각 14분과 8분 길이의 곡이다. 무슨 곡이 이렇게 길까 싶은데 재즈, 그 중에서도 프리재즈라면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재즈의 심장 같은 즉흥성을 더욱 강건하게 밀고 나간 프리재즈의 역사는 이미 40년 이상이다.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지뢰처럼 프리재즈 연주가 터졌다. 복제할 수 없고 재현할 수 없는 연주는 그러나 더 이상 새롭지 않고 놀랍지 않다. 엡마의 음반에 참여한 엠마와 김오키도 완전히 새롭거나 놀라운 연주를 선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연주는 여전히 자유롭고 거침없다. 자유롭고 거침없으면서도 조화롭다. 드럼 연주로 시작하는 ‘Shapes, Textures, Rhythms and Moods’에서는 드럼, 색소폰, 노이즈, 베이스 연주 등을 마구 뒤섞는다. 일정한 비트가 없고, 테마도 없다. 한 악기가 튀어나와 놀다 불쑥 다른 악기와 협연하고, 다른 악기가 튀어나왔다가 돌연 사라진다. 혼돈으로 아우성치는 음악은 갑자기 숨을 골랐다가 홀연히 융기한다. 곡은 14분에서 멈췄지만 그대로 계속 연주한다면 한 시간을 채우는 일도 어렵지 않을 즉흥연주다. 기승전결 구조를 가진 음악이나, 테마와 즉흥연주를 교차시켰다 다시 테마로 돌아오는 재즈와는 다른 프리재즈 곡은 그저 거침없이 태어나며 소멸해 영원해진다.

곡 안에서 사용하는 소리들은 곡의 제목처럼 모양과 질감, 리듬과 분위기 뿐이다. 각각의 악기가 순간적으로 즉흥적으로 뿜어 만드는 소리를 발산하는 사운드는 살점 하나 없는 뼈 같은 찰나의 모양과 질감, 리듬과 분위기뿐이다. 곡에는 한 순간도 반복이 없다. 반복이 없으니 구조도 없다. 튀어나오고 점멸하며 명멸하는 소리의 퍼레이드는 단발마 같은 소리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소리들로 곡은 채워졌다 비고, 당겨졌다 느슨해진다. 밀면 당기고 당기면 더 당기다가 느닷없이 도주한다. 조였다가 풀고 조이면서 풀고 풀었다가 다시 조인다. 그 순간에 충실하거나 순간을 탈주하는 소리의 쉴 새 없는 전복으로 합을 맞추는 연주는 비거나 채우거나 어지럽거나 고요한 소리들을 무의식처럼 넘나들며 누빈다. 이것이며 저것이고 저것이었다가 이것이며,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변화는 변화로 통일되어 어느새 그 자체로 구조를 만든다. 어긋나서 조화로운 음악. 한결같은 변화로 완성하는 음악은 생성과 소멸과 탈주의 경계조차 무의미하게 만든다.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쏟아내면서도 절묘하게 맞는 긴장과 균형

김오키의 색소폰을 전면배치한 두 번째 곡 ‘Side B – 화(火)’는 색소폰과 드럼의 응전이 더 불붙는다. 드럼이 주도하는 리듬과 색소폰이 주도하는 음계는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터트리듯 쏟아내면서도 절묘하게 긴장과 균형을 맞춘다. 소리로 불을 피우듯 두 악기는 서로 비비고 문지르고 부딪치고 타오른다. 프리재즈처럼 자유롭게 연주하는 듯한 곡은 각각의 연주가 독립적으로 자유로우면서 충돌하고, 충돌함으로써 더욱 자유로워진다. 이 자유로움은 상대의 소리에 대한 긴밀한 연관과 대응이며, 조화와 부조화의 리좀이다. 미리 기획하고 의도했거나 하지 않았거나가 중요하지 않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 무한한 생명력,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며 서로가 서로를 부추기고 살리며 자신도 모르게 뻗어나가는 곡의 무정형 에너지야말로 이 곡의 핵심이고 의미이며 가치이다.

이렇게 다른 음악, 치밀한 음악이 있어 한국 대중음악에서 계속 다른 소리의 방법론과 쾌감을 들을 수 있다고, 다른 상상력과 생명력의 가능성과 가치를 잊지 않을 수 있다고 쓴다. 하지만 상상력을 훈련하게 하고, 다양성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음악이라고 쓰려다가 멈칫하는 이유는 어떤 음악도 다양성을 채우기 위해 일부러 전체의 일부로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음악은 그 자체로 완성이고 전부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경외할 것. 차이와 개성으로 특별하게 만들지 말 것.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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