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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지만원 스타로 만들어준 자유한국당

주말에 광화문을 가보면 종종 기묘하고 스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광화문 사거리를 기준으로 각 방면마다 중소규모의 보수 시위대들이 포진하고 시위를 벌인다. 이들의 주장은 대동소이하다. 박근혜 석방, 김정은 답방 반대, 문재인 퇴진(구속이나 사형도 있다) 등등. 영상으로는 6.25전쟁과 새마을운동이 나오고 각양각색의 현수막과 깃발 가운데는 박근혜와 박정희 초상도 있다. 어김없이 성조기도 휘날린다.

이상한 점은 적게는 몇십에서 많게는 몇천 명씩 흩어져 있다는 것이다.(간혹 청계천이나 덕수궁 앞에도 같은 시각에 시위가 벌어지곤 한다.) 많아 보이려는 산개작전인가 싶었는데 꼭 그런 것 같진 않다. 현수막에 적힌 단체 명칭에는 국민총동원본부나 범국민연합 등이 붙어 있으나 그들 내부의 총동원과 연합도 쉽지 않은 듯 하다. 어디든 타인이 보기엔 별 거 아니어도 당사자들에겐 절실한 문제가 있는 법이다. 지만원과 조갑제 사이에 일종의 ‘원조-사이비’ 논쟁이 있다는 말도 광화문의 태극기 시위대를 보며 미루어 짐작이 됐다.

극우인사 지만원씨
극우인사 지만원씨ⓒ뉴시스

태극기 시위대 어느 한 켠에 마이크 잡고 있었을 지만원씨가 제1야당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포털 검색어로 등장하는 호사를 누렸다. 자유한국당의 전임 김성태, 현직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중인환시리에 쌍욕을 퍼붓고 나이를 들먹여도 누구 하나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국회 5.18진상조사특위 위원으로 그를 추천할지를 두고 여러 날 논란을 거듭했다. 처음엔 예능으로 치부되던 ‘지만원 특위 추천’이 어느새 다큐가 됐다. 보수의 ‘뒷방 노인’에게 의원 112명의 거대야당이 머리채를 잡힌 꼴이다.

지만원씨는 ‘5.18 배후에 북한이 있으며, 남파된 북한군이 직접 개입해 무장폭동을 일으켰다’는 환타지급 주장을 하며 여러 차례 고소고발돼 형사처벌도 받고 배상금도 물게 됐다. 변희재와 함께 ‘양대 ATM기’라는 놀림도 받는다. 이런 인사를 거명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자유한국당 안에 지만원씨처럼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의심을 품은(또는 확신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만원씨 추천에 앞장선 김진태, 이종명, 이주영 의원 등이 극우적 신념을 가졌다면 그건 본인 자유다. 그러나 참여정부 정책실장 출신 김병준 비대위원장, 상도동계 막내라 할 김무성 의원, 한국노총 사무총장으로 평양 방문 경험도 있는 김성태 전 원내대표 등이 과연 북한군 개입 여부를 의심할까? 아닐 것이다. 그들의 양식을 믿어서가 아니다. 5.18 북한군 개입 주장은 지동설을 버리고 천동설을 다시 믿는 수준의 문제다. 말죽거리잔혹사류의 학교 체벌을 허용하자는 것과도 비교될 수 있다. 그래서 나경원 원내대표도 지만원씨를 두둔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왜 자유한국당은 단호하게 지만원을 내치지 못할까? 적어도 내년 총선까지 이른바 태극기세력을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지율 25% 박스권’에 갇힌 상황에서 집토끼는 구명보트와도 같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청계천, 덕수궁까지 조각조각일지언정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그야말로 난파(라고 믿고 있)다. 이순자의 “전두환은 민주주의의 아버지” 망언에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평가를 피해간 것도 이런 맥락이요 당대표 출마 예상인사마다 태극기 부대를 칭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면 다음 대선도 ‘태극기 색깔’로 치를 생각일까.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자유한국당이 20년 야당생활을 각오하지 않는 한 다음 대선에서는 미련없이 ‘태극기’를 버릴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온 박근혜 이상으로 ‘안면몰수 대선’을 치르지 싶다. 사람은 매일반인데 당협위원장을 물갈이 하네, 공개오디션으로 뽑네 하는 것도 그런 몸부림이다. 어쨌든 새 깃발을 들 때까지는 태극기세력을 데리고 가야 한다. 이 틈에서 스타 지만원이 탄생했다.

지만원씨가 하도 논란이 되니 다른 사람을 물색하나 본데 이름만 지만원이 아닐 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이들이 거론된다. 결국 5.18 진상조사마저 정략적으로 방해하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 깜박하고 잊은 것이 있다. 잘 살게 해주겠다는 이명박과 가짜 경제민주화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건 모두 ‘촛불’ 이전의 일이다. 촛불을 거치며 국민들의 기억력이 아주 좋아졌다. 지금의 행태가 다 기록되고 계산될 것이다.

고희철 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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