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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도 살지 않는 75m 굴뚝서 426일만에 내려온 파인텍 노동자의 외침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 전 지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소회를 밝히던 도중 눈물을 삼키고 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 전 지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소회를 밝히던 도중 눈물을 삼키고 있다.ⓒ김슬찬 기자

11일, 새들도 살지 않는 75m 굴뚝 꼭대기에서 426일을 버틴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박준호가 땅을 밟았다. 사측이 애초 약속만 지켰어도 오르지 않아도 됐을 굴뚝이었다. 두 사람은 오랜 고공농성과 10일간의 단식으로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황에서, 안전줄을 묶고 구급대원의 보호 하에 자력으로 내려왔다. 두 노동자는 들것에 몸을 기댄 채 발전소 입구로 나와,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연대단체 관계자들과 시민들을 만났다.

먼저 마이크를 든 사람은 홍기탁 씨였다. 수척한 얼굴을 한 그는 말했다.

“고맙습니다. 부족한 저희 5명에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준 것 같습니다. 박준호 동지와 많이 싸우기도 했고. 위에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나라가 노동조합 하나 지키는 게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긴 역사 속에서 20년 넘게 지켜왔던 민주노조인데, 그걸 지키는 게 이 사회에서 왜 이리 힘든지. 진짜 더러운 세상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라고. 배지만 달고 돌아다니는 국회의원, 재벌들, 권력기구들. 하… 한 번 힘차게 외쳐 보겠습니다.”

홍기탁은 있는 힘을 다해서 외쳤다.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 홍기탁 박준호를 기다렸던 동료 노동자들과 활동가, 시민들이 함께 외쳤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 전 지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 전 지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슬찬 기자

이어서 박준호 씨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고맙다는 말씀부터 드리겠다. 파인텍 5명의 동지들이. 5명밖에 안 남은, 지금까지 함께했던 그 어떤 가족애보다도 동지애로 이렇게 왔습니다. 그리고 저희들 투쟁을 위해서, 밑에서 고생한 차광호, 김옥배, 조정기 동지 너무 고맙습니다. 위에 올라가 있던 것 말고, 동지들에게 힘이 못 되어준 것 같아서 참 많이 미안합니다. 그리고 저희들 투쟁 함께 해 주신 많은, 단식까지 하면서 계속 투쟁을 응원해주고 관심 가져주신 많은 분들에게, 그리고 연대로 함께 해준 수많은 분들에게 이 자리 빌어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다시 시작인 것 같습니다. 저희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도 함께해주신 동지들 마음 받아 안고 올곧게 나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밑에서 33일간 동조단식을 하고, 수일간 사측과 밤샘 협상을 했던 차광호 파인텍 지회장도 짧게 감사의 마음을 밝혔다.

“오늘 두 동지가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동지들이 함께 해주신 덕분입니다. 건강하진 않지만, 그래도 무사히 내려와서 다행이고, 같이 연대해준 모든 동지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이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이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김슬찬 기자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사무장과 홍기탁 전 지회장이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전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와 포옹을 하고 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사무장과 홍기탁 전 지회장이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전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와 포옹을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홍기탁 조합원이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가운데 단식 농성을 이어오던 차광호 파인텍지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눈물을 머금고 있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홍기탁 조합원이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가운데 단식 농성을 이어오던 차광호 파인텍지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눈물을 머금고 있다.ⓒ김슬찬 기자

408+426일의 고공농성, 그리고 단식
“애초 합의가 지켜졌다면…이럴 일 없어”
“대한민국에 약속한 것…반드시 지켜져야”

파인텍 노사는 1박2일에 걸친 교섭 끝에 11일 아침 합의에 이르렀다. 교섭결과는 이날 오전 8시5분 경에야 발표됐다. 지난 10일부터 이어진 6번의 교섭의 결과였다. 1월부터 6개월 간 5명의 파인텍 노동자들에게 유급휴가를 준 후, 오는 7월1일부터 공장을 정상 가동해, 5명 모두 업무에 복귀시킨다는 내용이다. 5명에 대한 고용은 2019년 1월부터 향후 3년간 보장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 원활한 생산 활동을 위해 적정 인원을 고용키로 했다. 이 외에도 임금과 노동시간, 단체협약 시기 등도 구체적으로 정했다.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이날 두 노동자가 농성을 풀고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내려와 땅을 밟기까진 8시간 가량의 시간이 걸렸다. 두 노동자를 설득하고, 구조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데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결국 오후가 되어서야 두 노동자에 대한 구조작업이 시작됐다. 구급대원과 동료 노동자가 올라가 두 사람을 조심스럽게 밑으로 내려 보냈다. 박준호부터 안전 줄을 묶고 수직 사다리를 천천히 내려 왔다. 그리고 계단에 와서는 부축을 받으며 땅으로 내려왔다. 이어서 홍기탁도 안전하게 땅을 밟았다. 이렇게 두 노동자가 땅을 밟은 시각은 오후 4시를 넘겼다.

두 노동자가 내려오는 동안, 발전소 앞에선 동료 노동자들과 연대 활동가·시민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기자회견엔 연대단식 농성을 펼쳤던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송경동 시인, 박승렬 목사와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 수많은 이들이 함께 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사무장과 홍기탁 전 지회장이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병원으로 이송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사무장과 홍기탁 전 지회장이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병원으로 이송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김슬찬 기자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사무장과 홍기탁 전 지회장의 426일 굴뚝 고공농성 종료를 앞둔 11일 오후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 아래에서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굴뚝농성 종료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사무장과 홍기탁 전 지회장의 426일 굴뚝 고공농성 종료를 앞둔 11일 오후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 아래에서 차광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굴뚝농성 종료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김슬찬 기자

우원식 의원은 “까마득한 굴뚝에서 까마득한 시간과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408일+426일, 정말 까마득한 날이었다”고 했다. 우 의원은 “첫 번째 합의가 지켜지지 않으면서 발생했던 갈등이, 더 많은 고통과 까마득한 날들을 보내게 했다”며 “이번 약속만큼은 절대 깨져선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만들어낸 중요한 사회적 합의인 만큼 반드시 관철되어야만 한다. 합의가 잘 이행될 수 있도록, 끝까지 감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측을 설득하기 위해 사장 자택까지 찾아갔다는 윤소하 의원 또한 “이건 단지 파인텍 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전 사회, 대한민국 국민 앞에 한 약속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래군 소장은 “헌법에 보장된 작은 권리 하나 확보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써야 한다는 게 서글프다”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굴뚝에 오른 노동자들을 더 이상 내버려 둘 순 없다는 마음으로 연대 단식을 했다. 저희가 단식을 하긴 했지만, 언론과 수많은 시민들이 정확히 보도해주고 알려줬기에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의 합의가 반드시 이행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경동 시인은 “다시는 저 높은 굴뚝에 오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더 평등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 시인은 “오늘 이 자리가 1%의 특권 자본가를 위한 사회가 아니라 평범한 서민·노동자 모두가 주인 되는 그런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결의를 모으는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친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사무장, 홍기탁 전 지회장이 지상으로 내려가던 도중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 아래에서 전 조합원 및 참가자들이 응원의 함성을 보내고 있다.
11일 오후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친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박준호 사무장, 홍기탁 전 지회장이 지상으로 내려가던 도중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 아래에서 전 조합원 및 참가자들이 응원의 함성을 보내고 있다.ⓒ김슬찬 기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소장 박승렬 목사는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었던 것에 기쁘게 생각하지만, 걱정이 있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지금까지 협상 과정을 보면, 사측과 노동자 사이에 깊은 갈등과 분노, 불신 이런 게 있다”며 “오늘로 문제가 해결됐다가 아니라, 앞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노사 양측이 평화롭고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깊이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회사가 양보한 것이 아니냐 묻는 기자들이 있다. 결코 양보한 게 아니다. 원래 합의가 지켜지기만 했었어도 이런 상황이 연출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동지들이 투사도 아니고, 결코 자신을 내세우겠다고 저곳에 올라간 것도 아니다. 살고자, 살아보겠다고,약속을 지키라는 말을 하고자 올라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는 “에너지공사 대표이사를 만나 정중히 사과드릴 것도 드리고, 함께 마음 모아준 점에 대해서도 얘길 하려고 했으나, 일정상 도저히 안 된다고 해서 에너지공사 노조위원장만 만났다”며 “위원장을 통해서 진심으로 마음 써 준 점에 대해 인사를 나눴다”고 말했다. 그리고 목동주민들, CBS 앞 상인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오늘 아침 이 소식을 들었을 우리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환호의 마음보단, 정말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이라며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이 투쟁의 맨 앞에 서있던 동지들, 그리고 그 동지들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마저 함께하겠다는 결의로 단식을 해준 시민사회동지들, 지역주민 분들, 무릎 꿇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며 앞장섰던 금속노조 동지들에게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 전 지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전 파인텍지회 조합원에게 신발을 선물받고 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온 홍기탁 금속노조 파인텍 전 지회장이 11일 오후 서울 양천구 열병합발전소에서 전 파인텍지회 조합원에게 신발을 선물받고 있다.ⓒ김슬찬 기자

한편, 이날 발전소 입구에 모인 동료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두 노동자가 내려오는 동안 “홍기탁 힘내라”, “박준호 힘내라”, “우리가 함께할게” 등의 구호를 외치거나, 응원의 노래를 부르며 두 노동자가 무사히 내려오길 기다렸다. 또 이들은 두 노동자에가 땅에 내려오자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가 선물한 신발을 신겨줬다.

두 노동자는 발전소 입구에서 연대해온 이들의 환영식을 받은 뒤 곧바로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두 사람의 건강은 매우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8일 두 노동자의 건강을 살피러 굴뚝에 올랐던 의료진은 “두 노동자가 몸이 이겨낼 수 있을지 매우 우려스럽다”며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친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이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소방관들의 부축을 받으며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
426일간의 굴뚝 고공농성을 마친 박준호 금속노조 파인텍지회 사무장이 양천구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소방관들의 부축을 받으며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다.ⓒ김슬찬 기자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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