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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에게 준 희망을 침묵하지 말자”
파울 게하르트 교회 이영빈 목사 후임이었던 우를리케 호프만 목사가 영결식을 집례했다
파울 게하르트 교회 이영빈 목사 후임이었던 우를리케 호프만 목사가 영결식을 집례했다ⓒ이은희 재독 ‘풍경’ 발행인

해외통일운동의 원로 이영빈 목사 영결식이 지난 10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다. 영결식이 열린 파울 게하르트 교회는 한국인 이영빈 목사가 1974년부터 1991년까지 17년동안 담임목사로 시무한 곳이다.

파울 게하르트 교회 이영빈 목사의 후임이었던 울리케 호프만 목사가 영결식을 이끌었다. 호프만 목사는 "신은 우리의 근원이자 마지막 도달하는 곳"이라고 위로하며, 아픔과 슬픔을 숨기지 않고 함께 고인을 보내자고 했다. 고인이 "신학동지"라 칭한 부인 김순환 여사에게는 "순환, 당신은 당신의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이별해야 할 것"이라고 하며 위로하는 한편 "우리에게 준 희망을 침묵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고인의 생애를 회고하였다.

"사랑하고 인정하고 존경하는" 고 이영빈 목사를 이별하는 예식에는 오랫동안 해외통일운동을 함께해 온 인사들이 참석하여 애도하였다. 독일인 지인들, 감리교 신학대학 후배들이자 유럽에서 거주하고 있는 목사들, 멀고 가까운 곳의 지인들이 함께하여 고인의 마지막 길에 꽃을 바쳤다.

"재가 되고,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
"재가 되고, 흙이 되고, 먼지가 되어..."ⓒ이은희 재독 ‘풍경’ 발행인

고 이영빈 목사의 생애

고 이영빈 목사는 1926년에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에서 태어났다. 엄격한 유교 집안 8대 독자인 부친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부터 일찌기 이질적 문화 사이의 갈등을 가까이서 체험하였다.

1948년 서울 감리교신학교를 졸업하고 대전 선화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한국전쟁을 겪었다. 남과 북의 화해의 길을 모색하던 중 1955년 서독으로 유학길에 오른다.

독일에서는 히틀러 시대에 비인간적 독재에 부역하지 않은 고백교회의 전통을 만나면서 이반트 교수의 제자가 되었다. 박사학위 지도교수 이반트 교수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현장 실천의 길로 들어섰다. 이반트 교수의 신학적 태도를 "따뜻함"이라 자서전 『경계선』에서 술회한 바 있는데, 그의 삶 또한 사랑의 신, 희망의 신과 함께하며 경계를 넘나들고 평화의 다리를 잇는 삶이었다.

자서전 『경계선』에 따르면, 그는 1960년에 독일개신교 청년국 간사가 되어 그 해 빈에서 열린 '세계공산주의청년대회'에 참석한다. 이 경험에 대해 고인은 동서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비전을 갖게 되었다고 서술한다. 또, 1969년 11월부터 1974년 2월까지 4년 4개월 동안 뮌헨대학 교목으로 있으면서 인종차별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복덕방'을 운영하고 또 그 외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여 많은 일화를 남겼다.

생전 이영빈 목사와 김순환 선생. 두 사람은 동지이자 부부였다.
생전 이영빈 목사와 김순환 선생. 두 사람은 동지이자 부부였다.ⓒ이은희 재독 ‘풍경’ 발행인

고인은 재독동포사회 1세대의 구성과정에 기여를 한 인물이기도 하다. 재독한인총연합회의 발아단계였던 유학생 모임인 퇴수회의 첫 구성멤버였으며, 한국인 노동자들이 체류문제로 부부가 헤어져야 할 위기가 있을 때나 노동자 권익 문제가 대두될 때 해결사로 나섰다.

한인이주민 공동체에도 기여하고 당시로 보아서는 시대를 앞선 글로벌 인재였지만 분단의식이 강한 한인회 중심 한인사회에서는 그의 기여한 바에 비해서는 잊혀진 인물이 되어갔다.

하지만, 60년대와 70년대 고국의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고 1981년부터는 '조국통일해외기독자회'를 조직하여 남과 북, 해외동포간의 대화를 주도하여 통일운동에 기여한 고인의 삶은 후배 신학자들을 비롯하여 조국통일에 관심 있는 후진들에게 잊지 못할 어른이기도 하다.

평생의 신학동지였던 김순환 선생은 "그래도 목사님이 지난 해 남북관계 좋아지는 것 보고 떠나셨다"고 하는 인사에, 고인과 함께 걸어온 길을 회상했다.

"희망이 있다가 그냥 제자리 걸음을 한 적이 한 두 번이었어야지. 남의 나라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나가 주면 좋겠어. 우리가 한다 하면 누가 말리겠어."

희망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나눈 사람이 한 분 떠나갔다. 그 다음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라 하겠다.

고 이영빈 목사의 유해는 고인이 시무하던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골드슈타인 구역 시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순환 여사와 3남1녀 자녀 및 손주들이 있으며, 저서로 『통일과 기독교』, 『경계선』이 있다.

이은희 재독 ‘풍경’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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