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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그룹에 대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오로지 국민 위해 판단해야”
수백억대 상속세 탈루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위해 출석하고 있다.
수백억대 상속세 탈루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위해 출석하고 있다.ⓒ임화영 기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데 이어 한진그룹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논의하기로 한 가운데, 국민연금이 수탁자 원칙·지침에 따라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사회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포섭돼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나서지 않으면 경영 정상화가 요원하다는 배경도 제시된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논의한다. 이날 논의에서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기금위 산하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가 검토를 거쳐 기금위가 최종 결정한다.

주주권 행사 방식은 오는 3월 예정된 주주총회에 쏠려 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임기가 오는 3월 17일부로 만료되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연임에 반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조 회장 일가가 맡고 있는 다른 이사직에 대해 임기만료 전에라도 해임을 제안하는 방법도 있다. 조 회장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임기는 2021년까지다. 조 부자는 한진칼 등기이사로도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임기 만기일은 모두 2020년 3월이다. 현행법상 주주제안은 상장사 지분 1% 이상을 최소 6개월간 가진 주주면 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에 대해 주주제안 요건을 모두 갖췄다.

한진그룹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요구는 총수일가의 연이은 방만 경영에서 촉발됐다. 조 회장은 지난해 10월 국제조세조정법, 특정경제범죄법, 약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조 사장은 대한항공 상징인 태극문양 상표권을 지주회사로 넘겨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등 배임 혐의로 지난해 고발됐다. 총수일가가 주주가치는 뒷전으로 밀어둔 채 일감몰아주기와 회사자금 유용 등으로 자신들 배만 채웠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진그룹 방만 경영은 각종 비인권적 만행으로까지 이어진다. 총수일가는 2014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을 비롯해 지난해에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과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폭력 영상’으로 국민 공분을 샀다. 최근 세모녀는 고가명품을 밀수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지난해 말 브랜드 가치 평가회사 브랜드스탁이 발표한 ‘2018 대한민국 100대 브랜드’를 보면 대한항공은 전년보다 19계단 떨어진 32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 발표에서는 전분기 대비 27계단 하락해 36위에 머물기도 했다.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전 이사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전 이사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국민연금, 원칙·지침 따르면 주주권 행사 안할 이유 없어

지난해 7월 정부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선언하면서 ‘국민연금이 특정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기금 주인인 국민을 위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달리 말해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함에 있어 ‘경영권 개입’이니 ‘연금 사회주의’니 하는 이념적 논쟁에 휘둘리지 말고 주주가치 제고를 최우선에 두라는 얘기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 활동에 대한 원칙과 기준, 절차를 제시한다. 국민연금은 이미 현행법 상 보장된 의결권과 이사 해임·추천 등 주주권을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의미를 가지려면 국민연금이 원칙과 기준에 따라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면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수탁자 원칙)’과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활동에 관한 지침(수탁자 지침)’을 발표했다. 이들 문서를 보면 국민연금이 한진그룹에 대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수탁자 원칙은 ‘기금은 충실한 수탁자 책임 활동을 위해 투자대상기업의 재무요소 외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비재무적 요소도 주기적으로 점검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수탁자 지침은 ESG 등과 관련해 예상치 못한 주주권익 침해 우려가 발생한 경우 수탁자 책임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해 7월 대한항공 ESG 등급을 C등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C등급은 7개 등급(S·A+·A·B+·B·C·D) 중 6번째 등급이다. 당시 기업지배구조원은 “사회책임경영 측면에서 회사 지속 가능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사안이 발생해 등급에 반영했다”며 “대한항공은 외형적인 사회책임경영 체계는 갖췄지만 총수일가 전횡으로 이해관계자 전반에 대한 책임경영 체계가 양호하게 기능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법령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를 훼손하거나 주주권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안’을 올해 중점관리사안으로 정하기도 했다. 수탁자 지침에는 법령 위반 사항으로 횡령·배임, 부당지원, 경영진 사익편취 등이 명기돼있다. 국민연금은 중점관리사안에 대해 비공개 대화와 서한발송 등이 가능하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대한항공에 공개서한을 보내 “최근 귀사 경영진과 관련한 여러 국가기관의 조사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대한항공에 대한 신뢰성 및 기업 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으로 사료된다”며 면담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항공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의례적 답변을 보냈을 뿐이었다. 이밖에 국민연금은 2015년, 2017년, 지난해에 걸쳐 총 3차례 비공개서한 발송했다.

국민연금이 단계적으로 경영정상화를 요구했음에도 대한항공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근거는 이미 마련돼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발표하면서 임원의 선임·해임 등 경영참여 주주권은 제반여건이 구비된 후 시행하되, 그 이전에라도 기금위가 의결하면 시행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물벼락 갑질 논란’으로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오전 서울 강서구 강서경찰서에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서 출석해 고개를 숙인채 쥐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물벼락 갑질 논란’으로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오전 서울 강서구 강서경찰서에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서 출석해 고개를 숙인채 쥐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정의철 기자

국민연금이 나서지 않으면 조씨 일가 방만 경영 못 막는다

한진그룹 경영이 정상화되지 못한 이유로 이사회 독립성 훼손이 지적된다.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 이사회 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경영진을 감시·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데 있어 조 회장 입김이 작용할 수 있으며, 조 회장 입맛에 맞게 구성된 이사회는 회사 전체의 이익보다 각자 자리보전으로 위해 조 회장에 유리한 판단을 내릴 우려가 있다.

또다른 견제 장치인 소액주주 주총 참여도 저조한 수준이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일부 기업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으나 투표율은 4% 미만으로 여전히 저조하다. 기업들이 3월 특정일에 주총을 개최해 주주개인이 여러 기업 주식을 갖고 있는 경우 주총에 참석하지 못하는 일도 많다. 2017년 주총 개최기업 수가 많은 3일에 주총을 개최한 기업 비중은 70%를 넘어선다. 주식보유 기간도 약 6개월(2017년 코스피 기준)에 그칠 정도로 짧아 주총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측면도 있다.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방만 경영에 맞서기 위해 국민연금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8.35% 가진 3대 주주다. 대한항공 경우 11.56%를 보유하면서 2대 주주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양사 모두 30%에 육박하는 총수일가 지분에는 못 미치지만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따라 일반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를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지난해 말 새로이 한진칼 지분 10.81%를 취득한 KCGI가 한진그룹 지배구조와 대외 신인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어 국민연금의 결정이 갖는 파급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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