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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자신을 고백하고 다른 이를 다독이는 용기 있고 다정한 노래 모음
하비누아주의 음반 ‘새벽녘’
하비누아주의 음반 ‘새벽녘’ⓒ하비누아주

새벽은 어떤 시간인가. 잠들거나 잠들지 못하는 시간. 하루를 끝내거나 끝내지 못하는 시간. 혹은 서둘러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새벽은 하루의 시작과 끝이 맞닿은 시간이다. 하루를 끝내는 새벽은 그 날의 모든 사건과 경험과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 일시불로 곱씹으라 요구한다. 오늘 자신은 어땠는지 돌아보다보면 빙그레 웃게 되기도 하지만,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는지 씁쓸해질 때도 많다. 다 하지 못한 일들과 깔끔하게 마무리 하지 못한 감정들은 새벽마다 상념과 꿈으로 밀려들 듯 귀환한다. 새벽은 홀로 하루의 그림자를 감당하는 시간이다. 제멋대로 뻗어가는 생각들을 멍하니 지켜보는 시간이다. 나만 아는 나를 만나며 자신을 비로소 인정하는 시간. 사람은 새벽을 통과하며 고독하고 정직해져 새로운 내일을 맞을 수 있다.

새벽녘의 대기와 빛과 소리를 노랫말과 음악으로 재현한 음반

혼성팝밴드 하비누아주의 정규 2집 [새벽녘]은 바로 그 새벽의 기록이다. 2018년 즈음 새벽을 통과하는 젊은/여성/한국뮤지션의 기록인 음악이며 팝이다. 음반에 담은 10곡의 노래들은 새벽을 맞이하고 머물고 보내면서 떠오르는 생각과 휩싸인 감정들만 노래하지 않는다. 하비누아주는 새벽녘이라는 시간에 감도는 대기와 빛과 소리를 노랫말과 음악으로 재현한다. 새벽, 가득한 어둠과 서서히 스미는 빛의 파장을 연주로 만든 소리의 파장으로 재현한다. 첫 번째 곡 ‘너에게’에서부터 신디사이저로 만든 소리의 울림은 마음에 밀려드는 생각의 파장만이 아니다. 하비누아주는 어둠 속에서 희미해진 빛과 고요의 앙상블을 재현함으로써 음악으로 새벽을 만들어낸다. 새벽 같은 소리, 새벽에 젖어들 수밖에 없게 하는 소리 덕분에 듣는 이들도 새벽으로 함께 진입한다.

눈부신 태양이 사라지고 어둠마저 깊어진 시간의 속도는 느리고 깜깜하다. 그래서 하비누아주 음악의 템포도 느리고 악기연주 역시 어쿠스틱할 뿐 아니라 잔잔하다. 하비누아주는 요동치는 마음을 표출하는 보컬을 이따끔 폭발하듯 터트리지만, 신디사이저와 피아노를 중심으로 하는 악기 연주는 대체로 담담하게 절제하며 여백을 만들어 차분함을 잃지 않는다. 답답하고 막막한 순간의 이야기를 전할 때에도 그 이야기를 증폭시키지 않는 연주의 편곡은 홀로 생각하고 묻고 답하는 새벽의 고요를 닮았다. 그리고 하비누아주는 기타, 건반/피아노, 드럼, 베이스에 현악기 이상의 악기를 덧붙이지 않고 그 악기들을 적절하게 넣고 빼면서 활용한다. 최소한의 악기만을 활용해 만들어내는 연주의 단순함과 투명함 역시 새벽의 빈 공기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하비누아주는 ‘너에게’와 ‘파란’, ‘왜’ 같은 곡에서는 풍성하고 강렬한 연주를 더해 감정을 끌어올리며 곡의 진실함을 부각시킨다. 하비누아주는 이렇게 제목으로 가리킨 시간과 그 시간 속 마음을 소리로 고스란히 옮긴다.

하비누아주는 절제한 소리 위에 더 많은 새벽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지금은 새벽이지만, 새벽에 엄습하는 이야기는 모두 지나간 일들이다. 아니, 지나갔으나 다 지나가지 않은 이야기. 과거이며 현재인 이야기는 끝이며 시작인 새벽의 중의성과 흡사하다. 첫 곡 ‘너에게’에서 하비누아주는 과거의 소중했던 누군가 혹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미소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출발. 하지만 “어스름 푸르고 흐린 빛/희미한 안개 흩어지고/적막한 방 침대 위로/무심히 쏟아지는 빛‘을 느끼는 새벽 홀로 있는 방에서 미소만 짓기는 어렵다. ”어지러운 고민들“, ”일렁이는 마음“, ”불안“은 ”새벽녘 나의 노래“라는 노랫말로 인해 하비누아주 자신의 자화상이 된다.

두 번째 곡 ’새벽녘‘ 다음 세 번째 곡 ’파란‘은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듯한 솔직함으로 ”도망치고만 싶“고, ”더 견뎌낼 수가 없“다고 토로한다. 이 막막함과 절망감은 ”아름다웠던 우리“라는, 과거가 되어버린 관계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말하지 않은 또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하비누아주는 그 순간에도 절망에만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새벽 파란빛이/내 방을 물들일 때/그런 생각을 하기도 해/저 빛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어“라는 고백은 이 순간의 절망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거나, 새벽이 내뿜은 빛과 자신을 일치시키겠다는 삶의 의지일 수 있다.

자신이 느끼는 절망과 답답함을 숨김없이 드러낸 ‘하비누아주’

음반의 다른 곡들에서도 하비누아주는 자신이 느끼는 절망과 답답함을 숨김없이 드러낸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비누아주의 고백은 자신의 마음과 상태를 외면하거나 숨기지 않는 정직함에서 비롯한다. 스스로 가장 정직해지는 새벽, 마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스스로 감추거나 부정하지 않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꺼내 노래하기 위해서도 용기와 인내가 있어야 한다. 다른 이들이 듣지 않고 외면할 수도 있는 상황을 견디지 않고 말을 꺼내기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용기와 외면을 견디는 인내가 있을 때 고백은 다른 이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고요한 밤길을 걸어’와 ‘왜’로 이어지는 음반의 전반부 수록곡은 보편적인 고민을 고백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하비누아주는 수많은 예술작품과 소셜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고민을 좋은 멜로디와 섬세한 사운드, 유려하고 치밀한 구조의 곡으로 아름답게 표현한다. 곡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귀의 쾌감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음악의 아름다움은 곡을 만들고 부르는 이의 마음을 듣는 이에게 고스란히 옮기기 위한 노력이며 배려이고 장치이다. 아름답지 않으면 공감할 수 없다. 다른 정체성을 갖고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수많은 개인들이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고 곧장 좋은 작품이 되거나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기쁨과 슬픔을 충분히 재현하는 음악언어를 만들고, 재현의 결과물이 아름다움에 이를 때 작품을 경험하는 이들도 창작자의 마음이 될 수 있다. 그 때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작품에 비춰볼 수 있다. 위로와 치유는 그 다음이다. 그러므로 작품의 아름다움은 창작자의 책임이며 의무이고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이렇게 솔직하고 용기 있으며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작품의 창작자가 계속 자신의 우수와 비탄에만 잠겨 있을 리 없다. ‘봄바람’에서는 슬픔에 젖어 있기도 하지만, ‘그 밤’에서는 아직 따뜻한 않은 마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내 눈물을 따라 걷다보면’에서 하비누아주는 “눈물을 따라 걷”는 정직함으로 자신 같은 너, 소중했던 너를 만나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다짐한다. 눈물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을 모른 체 하지 않고, 소중한 이들과 함께 하는 이는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자신으로 함께 살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외로움과 절망을 호소하고, 상담과 치유에 매달리는 사회에서 한 사람의 고통은 그 사람만의 탓이나 잘못이 아니다. 그래서 음반의 종반부 ‘만월’에서 “작아져 버린 그대를 안아주고 싶어”라고 노래하고, “사라지지 말아줘”라고 부탁할 때 노래는 보름달과 나누는 교감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끝내 자신이거나 소중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그냥 웃어볼래요”라고 다짐하는 노래를 새벽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드러내는 이가 곁을 내주고 온기를 나누겠다는 적극적인 의지의 노래라고 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에필로그 같은 노래 ‘그리웠다고’에서도 하비누아주는 자신만큼 힘들었을 누군가를 담담하게 다독인다. 그렇게 하비누아주는 삶을 시작하는 새벽으로 나아간다. 누가 들어도 어렵지 않고 진실한 하비누아주의 팝은 누구에게든 위로가 되는 아름다운 노래로 음반의 드라마를 완성했다. 내가 왜 힘들고, 세상이 왜 우리를 힘들게 하는지 구구절절 말하지 않지만 이 다정함에 이 아름다움이면 충분하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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