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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야의 사람과 현장] 이 사회가 노동자를 부르는 이름, ‘인부’에서 ‘암적 존재’까지

JTBC 최수연 기자님.
저는 지난해 말, 가족들과 JTBC 뉴스룸을 시청하고 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 뉴스는 기자님이 보도한 ‘청담동 신축건물 공사장 화재사건’ 소식이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자님의 멘트는 대략 이랬습니다.

“청담동 신축 건물 공사장에서 불이 났다. 강북도 놀란 시커먼 연기였다. 인부들은 대부분 퇴근한 뒤였고, 건물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곧바로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물론 악의적이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순간 지나간 ‘인부’라는 표현에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악의성, 고의성이 없다고 해도 그 이유대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님이 사용한 단어 ‘인부’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난달 26일 JTBC 뉴스룸 사건 보도. 이 보도에선 ‘인부’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지난달 26일 JTBC 뉴스룸 사건 보도. 이 보도에선 ‘인부’라는 단어가 사용됐다.ⓒJTBC 캡쳐

말은 말하는 사람의 지위·계급을 반영한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인부(人夫)
막일꾼 순화 및 표준어 대상어. 노가다의 순화어 및 표준화 용어. (공사판)노동자, 막일꾼.

아마도 기자님은 건설현장에서 소위 말하는 ‘노가다’를 하는 노동자들을 ‘인부’라고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건설노동자라는 표현이 있는데, 굳이 ‘인부’라는 표현을 써야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틀린 말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구요? 아닙니다. 말을 다루는 직업인 ‘기자’이니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말은 세태를 반영하기도, 그 시대를 반영하기도, 말하는 사람의 인격을 반영하기도, 더 나아가 지위, 환경, 계급을 반영하기도 한다는 것을요.

그래서 최근 국회에서는 ‘근로’라는 말을 ‘노동’으로 고치기 위한 개정작업을 시도하고 있고,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에 ‘근로의 의무’를 ‘노동의 권리’로 개정하려 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시대에 ‘근로자’도 아닌 ‘인부’라니요.

지난 주말, 비정규노동자들이 청와대 앞 시위 도중 잡혀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한 노동자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영장의 표현이 매우 충격적이었는데요, 대한민국 90만 노동자들이 가입되어 있는 노동단체인 민주노총을 ‘암적 존재’로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업인들이 한 말도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 법을 집행한다는 사람들의 공식 문서였습니다. 이제껏 ‘노동자는 국민 아님’을 이토록 명명백백하게 공표한 공문서가 있었을까요? 박근혜 정권하에서도 노동자를 ‘암’으로 표현했던 경우를 우리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노조연대 노동자들이 가면을 쓰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폭로하고 있다.
백화점 면세점 화장품 노조연대 노동자들이 가면을 쓰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폭로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노동자 권리가 후퇴하고 있다

노동자를 위한다는 정부가 출범하고 2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정부의 노동정책은 후퇴하고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표방하는 ‘노동자가 살기 나은 세상’은 갈 길이 요원해 보입니다.

그래서 꽤나 영향력 있는 방송에서의 ‘인부’라는 표현이 단순한 실수나 부주의가 아니라, 단지 말의 후퇴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시대의 후퇴, 노동자 권리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부’에서 시작해, 자본에 종속되어 근면하게 일하는 ‘근로자’에서,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고 쟁취하는 주체적 인간인 ‘노동자’로 끊임없이 투쟁하며 발전해왔습니다. 그래서 ‘노동자’라는 말은 역사를 담고 있고, 시대를 담고 있고, 그 사회의 정치적 수준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하긴, JTBC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모든 언론들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이 사회를 대표적으로 반영하는 거울인 언론부터 ‘말’을 바꿔야 할 듯합니다. ‘인부’는 건설노동자로, ‘근로자’는 ‘노동자’로 용어를 바꾸고 통일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노동자’에게 ‘노동자’라는 제 이름을 되찾아주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요.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지위가 단번에 올라가지 않겠지만 적어도 ‘노동자’가 ‘암적 존재’ 취급은 안 받지 않을까요?

엄미야 금속노조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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