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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순박하고 정직하고 우직한 사랑 노래가 던지는 질문
포크 싱어송라이터 권나무
포크 싱어송라이터 권나무ⓒ권나무

음악의 무게는 얼마쯤일까. 창작자의 삶만큼, 창작자의 고뇌만큼일까. 그/그녀가 얼마나 진실하게 살아왔는지, 얼마나 성실하고 치열하게 연습하고 만들었는지에 따라 음악의 무게가 확연하게 달라질까. 혹시 그들이 산 시대의 공기와 역사가 음악의 무게를 늘리거나 줄일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악기를 사용하고, 얼마나 많은 뮤지션과 자본이 개입했는지에 따라 음악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을까.

실제 음반의 무게는 바이닐 음반이나 카세트 테이프, 시디 정도라 무겁지 않다. 하지만 음원 파일이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무게를 재는 일은 불가능하다. 음악이 흐를 때 허공으로 흩어진 소리의 무게를 재기도 불가능하다. 다만 음악이 누군가의 귀에서 가슴으로 옮겨갈 때 쌓이는 울림의 무게는 항상 다르다. 노래하고 연주하고 녹음해 담을 뿐인데, 달팽이관 어디에도 음악의 흔적이 남지 않는데, 음악의 무게는 천차만별이다. 진지하다고 무겁고, 신난다고 가볍지 않다. 어쩌면 음악의 무게는 음악을 듣는 이의 마음의 무게일지 모른다. 그런데 다른 장르에 비해 악기를 덜 사용하는 편인 포크 음악은 더 맑고 투명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더 가볍다고 여긴다. 반면 더 솔직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더 묵직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권나무의 세 번째 정규 음반 ‘새로운 날’
권나무의 세 번째 정규 음반 ‘새로운 날’ⓒ권나무

권나무의 목소리와 노래에 윤리와 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

2019년 1월 1일 세 번째 정규 음반 [새로운 날]을 발표한 포크 싱어송라이터 권나무 음악의 무게는 어떨까. 우선 12곡을 담은 음반 수록곡 수는 튼실하다. 2016년부터 발표한 두 장의 정규음반에서 권나무는 늘 맑고 정직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포크 싱어송라이터 중에 맑고 정직한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은 뮤지션이 있느냐고 묻지 말기를. 권나무는 그동안 어쿠스틱 기타와 건반, 바이올린 정도의 단출한 편성으로 식물성 사운드를 만드는데 충실했다. 리듬 악기를 최소화한 채 이름처럼 나무에 맨 줄을 튕기고, 현을 떨게 하면서 노래해 만든 곡들은 찌르지 않고 독하지 않았다. 모든 나무가 그러하듯 제 목소리로 서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권나무는 삶을 속이지 않으며 곧이곧대로 말하듯 노래했다. 투박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음악은 순박하고 정직하고 우직한 노랫말과 함께 권나무 음악의 본성을 이루었다. 권나무의 노래에는 1970년대 김민기나 메아리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정직함과 진실함이 있다. 그 진실함은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해 과장하거나 꾸미지 않는 진실함이다. 아름답다고 공인하는 관습에 길들거나 주눅 들지 않아야 비로소 가능한 진실함. 바로 자신이 느끼는 설렘과 기쁨, 가난과 절망을 피하지 않고 꾸미지 않으며 고스란히 기록하는 진실함이다.

이해와 타산을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 좋아하고, 눈 들어 어둠과 상처를 바라보는 권나무의 목소리와 노래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지키고 감당해야 하는 윤리와 배려 없이는 불가능하다. 좋을 때 아무 조건 없이 좋다 말하고, 불편할 때 침묵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남들이 좋아한다 말할 때, 비로소 자신도 좋아한다 말한다. 이미 남들이 좋아한다고 하는 무언가를 뒤따라가며 좋아한다 말한다. 그러나 어둡고 캄캄한 자신의 내면과 사회의 허방 앞에서는 눈감는다.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 절망을 마주하게 하는 일 앞에서는 금세 발걸음을 돌려버린다. 권나무가 김민기와 메아리를 닮았다 할 수 있는 이유, 그의 목소리와 노래에 윤리와 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가 그들처럼 절망을 응시하기 때문이며, 응시한대로 기록하기 때문이다. 권나무는 번듯한 미사여구를 끌어오지 않는다. 오직 자신이 느낀대로, 자신이 생각한대로 말한다. 권나무가 노래할 때 그는 자신의 생각이 나아간 만큼만 말하고, 자신의 생각이 나아가지 못하고 멈춘 지점에서 주저앉는다. 그리고 그 순간 보이는 벽과 절망을 기록한다. 맨몸뚱이로 걸어가는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두려움과 절망마저 숨기지 않은 이의 노래는 누구도 외면할 수 없다. 그 노래는 모두의 질문으로 멀리멀리 날아가 꽂힌다.

그런데 권나무는 그 순간에도 뻐기지 않고, 쉽사리 낙담하지 않는다. 고통을 기록하고 절망 앞에서 다시 묻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의지와 신뢰가 필요하다. 세상이 엉망이고, 내일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지라도 오늘 오늘만큼 기뻐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혹은 최소한 자신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행여 믿음이 부족하고 어렵게 느껴질 지라도 내가 할 일은 한다는 윤리적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권나무의 음악에 담은 윤리와 배려가 돋보이는 이유는 그의 노래가 적극적인, 때로 필사적인 의지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긍정적이거나 착하기 때문에 노래하지 않는다. 그는 긍정하고 착하려는 의지의 안간힘으로 겨우 노래한다. 그의 노래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그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간절한지 드러나기 때문이다.

엄격함과 낙관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노래

세 번째 정규 음반 [새로운 날]에서도 권나무는 순박하리만큼 순수하게 기뻐하고, 정직하게 절망한다. 첫 곡 ‘빛이 내리네’는 사랑에 빠진 이의 설렘과 기쁨을 어쿠스틱 기타와 바이올린으로 진솔하게 표현한다. 투명한 연주음 위에서 흐르는 목소리는 빛 사이에 들떠 있을 만큼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하다. ‘자전거를 타면 너무 좋아’도 삶의 기쁨을 노래하는 예쁜 곡인데, 권나무는 그 순간에도 다른 존재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멀어지는 오래된 골목들의 고독과/멀어지는 버려진 가구들의 죽음/멀어지는 술 취한 간판들의 피로와/멀어지는 헛된 꿈”을 어쿠스틱한 사운드로 기록함으로써 자신의 웅숭깊은 시선과 태도를 드러낸다. 어쿠스틱 기타와 바이올린의 이중주에 코러스를 연출해 멋을 더한 ‘춤을 추고 싶어요’ 역시 설렘과 기쁨의 연속이다. 권나무는 이 따뜻한 감정을 소박한 편성의 연주로 만들어냄으로써 일관되게 순정한 태도를 드러낸다. 기쁨과 설렘의 연작은 타이틀 곡 ‘새로운 날’로 이어진다.

그런데 ‘거짓말은 없어요’에서 권나무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때에는/널 사랑한다” 말한다.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느리게 부르는 노래에서 권나무는 마음이 엇갈리는 순간마저도 사랑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태도를 노래한다. 곱게 노래하는 목소리와 어쿠스틱 악기의 앙상블은 순수한데, 이번 음반의 여러 수록곡에서 줄기차게 표현하는 사랑이라는 태도는 권나무의 윤리와 배려가 사랑을 지키고 실현하려는 의지의 표현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너를 생각하는 이유를 몰라”라고 노래하는 마음이 사랑 아닐 리 없다. “정말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했을 때 모든 것을 하고 말”았던 일을 노래하는 마음도 무관하지 않다. 불안과 걱정, 의심과 회의에도 꿋꿋이 질문하고 부탁하는 태도는 ‘빛나는 날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의지로 낙관하는 노래 ‘사랑을 찾아갈 거야’ 역시 사랑을 향한 낙관과 다짐을 대표한다. 몽롱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덧붙여 다른 질감을 만드는 솜씨가 돋보이는 곡이다. 기쁨과 감사를 노래한 ‘그대 곁에 있으면’ 또한 이번 음반의 주제를 잇는다.

특별한 관계의 사랑을 노래한 곡이 다수인데 ‘깃발’에서 권나무는 세상으로 눈을 돌린다. “아무런 울타리도 없는 저 명분의 세상에서”도 “사람은 사람을 말해야 하지 않겠소”라고 돌직구 같은 신념을 던진다. 당위와 의무에 가까운 신념일지라도 권나무의 치열한 노랫말과 간절한 목소리는 한 곡의 노래를 묵직한 무게로 완성한다. “아무도 없는 높은 곳에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으려는 윤리와 어떻게든 화답해 깃발 같은 노래를 흔들려는 배려는 세상 곳곳에 여전한 눈물을 위로하는 감동적인 노래가 되었다. 실패를 부정하지 않는 정직함과 어려움에도 사랑하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우직한 끈기는 음반의 마지막 곡 ‘Love in Campus’에서도 뜨겁다. 금세 오아시스에 닿을 수 있다고 헛된 환상을 이야기하지 않는 노래, 정직하게 고백하고 자신의 삶이 짊어져야 할 몫만큼의 책임을 다하는 노래는 오늘의 인간다움을 묻는 질문으로 오롯하다. 취향이 윤리와 책임을 앞서는 세상에서 권나무의 노래만큼 엄격함과 낙관으로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노래가 얼마나 있는가. 어떤 노래는 결국 묻기 위해 존재한다. 이 노래들을 피하지 않는 일, 이 노래의 질문들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 우리의 숙제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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