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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노래]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지금 페루의 쿠스코에 있습니다. 1월 20일 근무를 끝으로 저는 응급중환자실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직을 한 건 아니고, 2월부터 서울대병원 노동조합 전임활동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남미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 제가 간호사라고 소개하면 많이 의아해하곤 합니다. 간호사들은 쉬는 날이 거의 없이 일한다던데 어떻게 남미 여행까지 올 수 있었냐고.

그래서 저는 오히려 쉬는 날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저희처럼 3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직 직원들은 매월 정해진 휴일 개수만큼 쉬곤 합니다. 그리고 피치못하게 휴일에 출근할시 1.5배 가산하여 수당을 받습니다.

하지만 간호사는 그런 게 없습니다. 남들 다 쉬는 휴일에 나와서 일해도 1.5배 가산 같은 건 해주지 않습니다. 간호사는 원래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나요. 일요일도 없고 추석도 설날도 없고 여름휴가도 없습니다. 운이 좋으면 쉬는 거고 지금의 서울대병원 응급중환자실처럼 사직과 휴직이 줄을 이을 때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습니다. 모두에게 달력에 나온 개수만큼 휴일을 보장해주려면 스케줄이 안 나오기 때문에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휴일만 쉬면서 끊임없이 일해야 합니다.

정해진 휴일보다 적게 쉰 날짜만큼 오프가 누적되어 스케줄 옆에 표시됩니다. 당연히 숫자가 많이 쌓인 사람에게 오프를 줘서 밸런스를 맞춰줘야겠지만, 모두 열개 스무개씩 쌓여있으니 그 숫자가 크다고 해서 딱히 오프를 더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일은 힘들고 사직자는 계속 나오고, 사직자의 빈자리로 신규 간호사가 발령받으면 2개월 OT를 받아야 정식으로 스케줄에 포함시킬 수 있으니, 숫자는 줄어들지 않습니다.

저도 약 10개월 만에 정해진 휴일보다 10일이나 더 일했습니다, 그래서 덕분에(?) 남미 여행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부서이동 전이나 사직 전에는 누적된 오프를 다 사용하고 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3, 4월에 사직이 예정된 사람들도 한 달 전부터 거의 출근을 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응급중환자실에 오래 일했던 사람들은 누적된 오프가 20개가 넘는 사람도 있거든요. 열흘 치 누적 오프와 설날까지 더해져서 꽤 긴 오프가 나왔습니다. 만약 부서이동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면 설날에도 또 일하면서 누적 오프가 더 쌓였었겠죠.

복도에 앉아 있는 간호사들.(자료사진)
복도에 앉아 있는 간호사들.(자료사진)ⓒ필자 제공

"평범하게 밥 먹으면서 일하고 싶어요."

응급중환자실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3월 12일이었습니다.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이미 사직을 한 사람이 4명이고 지금 사직을 하기로 하고 줄 서있는(?) 사람도 네다섯 명 정도 됩니다.

사직하기로 한 간호사와 사직 시기와 임금 문제 등으로 이것저것 상담을 해주면서 자연스레 얘기가 나왔습니다. 짐작이 가는 이유이긴 하지만, 왜 사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간호사의 대답은 담백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화장실 가고 싶을 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할 때 밥을 먹으면서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허겁지겁 먹는 것이 아니라 그냥 평범하게...

14, 13, 14, 18, 9, 18, 10, 19, 20, 16, 7.....스케줄표의 이름들 옆에 쓰인 숫자에서 간호사들 고단함이 느껴졌습니다. 병원은 간호사들에게 정해진 휴일보다 훨씬 더 많이 일하게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지쳐서 완전히 번 아웃될 때까지 부려먹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돈으로 주면 될 것 아냐, 나중에 사직할 때 부서 이동할 때 누적된 오프 다 까고 가게 해주잖아.' 이런 식입니다.

저 역시 남들보다 열흘이나 더 많이 일한 덕분에 남미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만년설이 쌓인 산봉우리도 보고 아름다운 호수도 보고 사막에도 가보았습니다. 빡빡한 근무에서 벗어나 지친 심신을 달래며 좋은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도 뭔가 씁쓸한 기분입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선욱 간호사의 유품과 그 안에 남겨진 유서.
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선욱 간호사의 유품과 그 안에 남겨진 유서.ⓒ행동하는 간호사회 제공

"우리는 물건이 아닙니다."

언제부턴가 저는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것을 누릴 때면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가족이나 친구의 얼굴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2018년 2월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아산병원의 박선욱 간호사입니다. 제가 그녀의 일에 이다지도 집착하는 것은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그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남긴 유서의 마지막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루에 세네 시간의 잠과 매번 거르게 되는 끼니로 인해 점점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이렇게...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문장은 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박선욱 간호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지난 1년간 제 머릿속을 맴돌던 그 문장을 끝맺어준 것은 얼마 전 저와 상담을 했던 간호사였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요."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은 구조적 타살입니다. 만약 그녀에게 충분한 휴식과 제대로 된 식사가 주어졌더라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휴일이 보장되어 있었더라면, 그래도 그녀는 같은 선택을 했을까요?

박선욱간호사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아산병원은 박선욱 간호사의 인생에서 그녀가 누릴 수 있었던 수많은 기쁨과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하나뿐인 딸을 빼앗아 갔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저보다 더 자주 더 많이 박선욱 간호사를 떠올리겠지요.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평범하게 먹고 마시며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가슴은 무너지고 또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아산병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 병원 곳곳에는 수많은 박선욱간호사들이 있습니다. 간호사는 쉴 새 없이 가동해도 되는 기계가 아닙니다. 아무렇게나 쓰다가 버려도 되는 물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간호사연대 등이 박선욱 간호사가 일하다 사망한 서울아산병원 인근에서 촛불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간호사연대 등이 박선욱 간호사가 일하다 사망한 서울아산병원 인근에서 촛불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민중의소리

행동하는 간호사회 최원영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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