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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와 평화 올 때까지 함께” 수요시위 참여 시민들의 다짐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3일째인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72차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할머니를 외치고 있다.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3일째인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72차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할머니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김복동 할머니가 고통의 짐 내려놓으시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 편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별이 되어 지켜보실 것이라 믿겠습니다. 할머니께서 꿈 꾸시면 평화가 올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고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장 벽에 붙어있는 '나비 메시지' 중 일부)

인권·평화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수요집회가 열렸다. 시민과 학생들이 나비떼처럼 소녀상 주변에 모여 이 땅의 평화와 정의를 말씀하신 고인의 뜻을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지켜보듯, 김복동 할머니께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소녀상의 오른편에 놓였다.

정의기억연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 메모리아 주관으로 30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372차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가 열렸다. 김복동 할머니와 이 할머니를 배웅하기 위해 400여명의 시민들이 자리했다. 수요집회는 1992년부터 시작돼 27년째 이어지고 있다.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3일째인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72차 수요집회에서 수녀님들과 참석자들이 슬퍼하고 있다.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3일째인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72차 수요집회에서 수녀님들과 참석자들이 슬퍼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김복동 할머니가 벌여온 평화와 인권운동을 이야기하며 고인의 뜻을 기렸다.

한 사무총장은 "할머니는 나비가 되셔서 세계를 날아다니셨다"면서 "할머니께서 평소에 그러셨다. 당신이 다니는 곳마다 나비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여러분도 나비가 되달라고 했다. 그것은 이러한 문제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한 사무총장은 "고단한 삶을 마감하시면서 일본의 공식 사죄와 배상은 받지 못했지만, 그 뜻을 우리가 이어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이 모습을 아신다면, 훨훨 날아가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 입구에 할머니를 기억하는 추모객들의 추모글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 입구에 할머니를 기억하는 추모객들의 추모글이 빼곡하게 적혀있다.ⓒ민중의소리

그러면서 한 사무총장은 전날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 1500여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조문객들이 김복동 할머니의 죽음을 추모하며 장례식장 벽에 붙였던 '나비 메시지'를 가져와 읽었다.

"할머니 되게 멋졌어요. 많이 고생하셨고, 그만 쉬세요. 너무 고생하셨어요. 저희가 무거운 책임을 지고 살아가겠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1993년부터 할머니를 지켜보았습니다. 제주에서 온 초등학생 친구들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자장면 사주게 예약하라고 윤미향 대표를 찾으셨죠. 이제 그 친구들이 그 사랑 잊지 않고 그 뜻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편히 안식하소서."

"1000차 수요집회에서 뵈었던 그 모습을 아직 기억합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정의를 이야기 하시고 또 삶을 얘기하셨던 그 용기를 기억합니다. 비록 그 꿈 아직이지만, 이미 함께입니다. 반드시 이루고 가르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한 사무총장은 "김복동 할머니 사랑합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라고 힘차게 외쳤다.

김복동 할머니를 기억하는 시민들의 자유발언도 이어졌다.

마리몬드 팬클럽 '로즈마리' 회원 홍소연 씨는 "어제 김복동 할머니 조문을 다녀왔다"며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조문객들에게 건넬 때마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고, 아무말 없이 오랜 시간 앉아계신 길원옥 할머니와 잘가라고 인사하신 이용수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눈물도 나고 화도 났다"고 고백했다.

홍 씨는 "이 추운 겨울날, 한 시간도 가만히 서 있기 힘든데 수 십 년간 봄을 맞이하지 못한 우리 할머님들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며 "할머님들의 빼앗긴 시간 아니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할머님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발언을 마치고, 자신이 가져온 꽃을 할머니들의 사진 앞에 올려 두었다.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3일째인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72차 수요집회에서 한 학생이 고 김복동 할머니 영정 헌화하고 있다.
고 김복동 할머니 별세 3일째인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72차 수요집회에서 한 학생이 고 김복동 할머니 영정 헌화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대학생 동아리 충청 평화나비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이상민 씨는 "사실 나비들(평화나비 회원들)에게 김복동 할머님은 할머님이 하셨던 말씀처럼 앞장서서 날아오르는 '할매 나비'이자 뒤에서 저희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분이셨다. 마지막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울먹였다.

그는 "할머니께서 오래 걸어온 길만큼, 함께 하는 나비들이 그 자리에 많았기에 웃으면서 할머님께 인사드릴 수 있었다"고 빈소에 조문갔을 당시의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지난 학기 충청평화나비네트워크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모은 100만 원을 할머니께서 만든 장학재단 '김복동의 희망'에 기부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김복동의 희망'은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재일조선인학교 학생들을 위한 장학재단이다. 김 할머니께서 떠나시기 직전까지 하신 활동이기도 하다.

이 씨는 "김 할머니께서는 당신 자신의 고통을 딛고 세상 밖으로 나오셔서 문제 해결 움직임에 크게 기여했다"며 "또 그에만 그치치 않고 당신의 고통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보고, 먼저 다른 피해자들에게 손 내밀어주신 강하고 용기 있는 분이셨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나비들도 할머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더 많이 배우고 많은 이들과 연대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김복동 인권운동가의 뜻을 따라 저희 평화나비도 열심히 날아오르겠다"고 다짐했다.

시민들은 전쟁범죄에 대해 공식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는 일본 정부를 규탄했다.

근현대사 역사동아리연합 '역동' 소속 강부희 씨는 "아직도 전범기를 사용하고 자위대를 창설하려는 일본의 만행을 끝까지 규탄하고, 다시는 그 제국주의 습성이 부활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막아내야 한다"면서 "이땅 곳곳에 소녀상을 세워 많은 시민들이 소녀상을 바라보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게 하고, 일본에게 전쟁범죄를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할 것임을 똑똑히 보이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김 할머니의 말씀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수많은 전쟁범죄 피해자 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 우리 세대의 과제와 몫이 남아있다"며 "여성, 소외된 이들에 대한 김복동 할머니의 따뜻한 시선과 손길, 일본에게 당당하게 제대로 된 역사 청산을 요구하는 굳건한 마음과 신념을 이어받아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목소리 높였다.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마련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고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이날 수요집회에 참여한 오현성(14)군은 "일본이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께 저지른 만행을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 처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수요시위에 참석하게 됐다"며 "23분 남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일본에게 사죄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참석자 권 모(70) 씨는 "전날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 다녀왔다"며 "내일도 빈소에 가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수요집회에 참석한 이유를 묻자, "아는 분 중에 정신대에 끌려갔다가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오신 분이 계신다. 끌려갈 당시 결혼도 하시고 아이도 있었는데, 물 길러 가는 길에 일본 놈들한테 끌려 갔다고 하셨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처럼 고통 속에서 생활하셨다고 한다. 사는 동안 몸도 마음도 병드셨는데, 그 분 돌아가시고 나서 시간이 날 때마다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씨는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밝히는 분보다 숨어서 아파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며 "수요집회에 나와 할머니들의 아픔을 잊지않고 기억해주는 젊은 사람들한테 너무 고맙다"고도 덧붙였다.

양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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