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국산 xx녀’로 소환될까 죽어서도 부르지 못한 그 이름
지난 30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등 주최로 불법촬영 및 비동의유포 피해자들을 위한 ‘이름 없는 추모제’가 진행됐다
지난 30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등 주최로 불법촬영 및 비동의유포 피해자들을 위한 ‘이름 없는 추모제’가 진행됐다ⓒ민중의소리

“그 애는 2017년 8월 xx일 새벽에 죽었습니다. 그 애의 방은 그 애가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창문에는 깼다가 다시 테이프를 붙이고, 그걸 다시 깼다가 또 테이프를 덧바른 흔적이 무수했습니다. 방 안 모든 물건이 그랬습니다.”

“그 애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했다가 살아보려고 하기를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애가 그날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애는 그해 5월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죽임당해 그날 마지막 숨이 끊어졌을 뿐입니다.”

웹하드에서 자신의 동영상을 발견하고 스스로 목숨을 거둔 친구를 옆에서 지켜본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아직 제대로 추모하고 애도한 적이 없다”라고 고백했다. 장례식조차 갈 수 없었던 이유는 친구의 죽음을 지켜만 본 국가를 향한 분노였다.

‘맛있어 보인다’, ‘저런 xx를 입고 다니는 x들은 걸레더라’, ‘내가 본 국산 탑10에 든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어느 학교 애다’ 등. 그는 “살고 싶었던 그 애를 매일매일 죽이던 것들을 기억한다”라며 국가는 그들이 그 애를 죽이고 내 일상을 파괴하도록 왜 방관했냐고 따져 물었다.

담담해 보이던 그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린 건 친구의 이름 앞이었다. 그는 “어차피 늘 숱하게 일어나는 일,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새삼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너의 이름을 말하고 싶다”라며 잠시 멈췄다 떨리는 목소리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지난 30일 불법 촬영 및 동의 없는 유포 피해로 죽음에 이른 이들을 위한 추모의 촛불이 광화문 광장을 밝혔다. 온라인에서 이들은 ‘국산 야동 xx녀’라 불렸다. 이들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모든 이의 기억에서 이들이 지워지길 바라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등 주최로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가 진행됐다.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에서 한 시민이 헌화를 하고 있다 .'이름 없는 추모제'는 불법촬영 및 불법촬영물 유포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을 택한 피해자를 기리는 자리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웹하드의 불법촬영물 유통 문제를 방관했다고 주장하며, 웹하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를 요구했다. 2019.01.30.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이름 없는 추모제'에서 한 시민이 헌화를 하고 있다 .'이름 없는 추모제'는 불법촬영 및 불법촬영물 유포로 인해 안타까운 죽음을 택한 피해자를 기리는 자리다. 추모제 참석자들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웹하드의 불법촬영물 유통 문제를 방관했다고 주장하며, 웹하드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재를 요구했다. 2019.01.30.ⓒ뉴시스

살아남은 여성들은 국화꽃과 촛불로 얼굴 없는 영정사진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우리의 삶은 그들의 포르노가 아니다’, ‘더는 한 명의 자매도 잃을 수 없다’, ‘몇 년 전 한 줌의 재가 된 내 친구는 어째서 한국 남자들의 모니터 속에 xx대 xx녀로 살아있는가’ 등의 메모를 남겼다.

주최 측은 “또다시 ‘국산 xxx’로 소환될까 이름을 알아도 부를 수 없는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라며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지금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 사회는 당신의 죽음을 재해석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사이버 성폭력 피해경험자의 죽음을 다시 명명할 것이다”라며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자 1’로 집계됐을 당신의 죽음은 타살이다”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국가가 불법 촬영물을 유통해 돈을 번 온라인 공간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사람들이 피해자를 향해 손가락질하지 않았다면,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됐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사성 활동가 이효린 씨는 추모사를 통해 “그동안 연락이 잘 되던 피해경험자가 갑자기 전화를 받지 않으면 저도 모르게 죽음을 떠올리며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라며 “이 사람의 죽음을 가장 경계하던 제가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모순적이면서도 사실적이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씨는 “막지 못한 그의 죽음이 너무 아파서 말하기 힘들어도 나와 같았던 한 여성이 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새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라며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것조차 또 다른 고통이었을지 모를 이름 없는 그들을 마음 깊이 추모하며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 싸울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마지막 추모의 말을 남겼다.

“사이버 성폭력 피해지원자가 아닌 죽어간 당신의 자매로서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이고, 당신은 저입니다. 당신이 다시 힘을 내어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랐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지난한 고통의 과정 그 어디에도 당신의 과실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자신을 탓하며 아팠을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디 평안하세요.”

한편 주최 측은 웹하드의 범행을 방조한 방송통신위원회를 규탄하며, 불법 촬영물 유통 근절을 위한 요구안을 전달할 예정이다.

아래는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당사자의 발언문 전문을 싣는다.

그 애는 2017년 8월 1X일 새벽에 죽었습니다. 나는 그 애가 웹하드에서 자신의 동영상을 발견한 후부터 자살하기까지 3개월간, 그 애가 거의 유일하게 만났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날 새벽에 더는 안 되겠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과 동행해 그 애 자취방의 문을 따고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구급차 안에서 그 애 핸드폰으로 부모를 부르고 그 애가 숨이 끊어진 순간 병원에 있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 애 장례식에 가지 않았습니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제대로 추모하고 애도한 적이 없습니다.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이 자리에서 별로 정갈하게 그 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죽음은 나에게 마음 정리가 채 다 되지 않은 일이고, 그런 일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하고 그 의미를 따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경찰도, 법조인도, 관련 업계 종사자도 아니고 그저 디지털성폭력 이슈에 조금 더 관심이 있는 편인 일반인입니다. 사실 그 애와 절친한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그 애는 경찰, 법조인, 관련 업계 종사자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서 친하지도 않은 저에게 겨우 연락을 해왔던 것입니다. 그 애가 알고 있던 세상에서는, 그 정도로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이해하고 지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애는 왜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 했던 겁니까?

나도 그 애 장례식장에 가서 슬피 울고 추모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는 경찰도, 법조인도,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일반인입니다. 그 전 3개월 동안 그 애 옆에 있어주고 지지하고 보조자가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제 일상은 충분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나는 그 애가 죽은 날 아침에 출근하고, 그 다음 날, 그 다다음 날도 출근을 해야하는 일반인이었습니다. 나는 힘에 부치게 했는데 뭐가 모자랐던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아니 사실 내가 모자랐던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는데, 그러면 결국 나는 어떻게 해야 했던 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과호흡을 겪고 몇 번 쓰러지기도 하면서 우선 그 일로부터 거리를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비극 때문에 생업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까요. 개인 단위로는 감당할 수 없고, 개인의 일상이 망가질 만한 폭력을 왜 법과 행정이 맡지 않았던 겁니까?

마지막으로, 그 애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 애는 처음 도움 요청을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자기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알아볼까봐 불안증으로 덜덜 떨면서도 굳이 밖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그 애가 죽던 날 새벽에야 그 이유를 알았는데, 그건 그 방이 그 애가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개월 전에 봤던 방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창문에는 깼다가 다시 테이프로 붙이고, 그걸 다시 깼다가 그 위에 또 테이프를 덧바른 흔적이 무수히 있었습니다. 책상, 의자, 침대, 노트북, 벽 등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부쉈다가 테이프를 발랐다가를 반복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 애는 매일매일 죽으려고 했다가 살아보려고 했다가 또 죽으려고 했다가 다시 살아보려고 하기를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애가 2017년 8월 1X일에 죽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애는 그해 5월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죽임당해서 그날 마지막 숨이 끊어졌을 뿐입니다.

살고 싶었던 그 애를 매일매일 죽이던 것들을 기억합니다. ‘맛있어 보인다’ ’저런 XX를 입고 다니는 년들은 걸레더라’ ‘내가 본 국산 탑10에 든다’ ‘X살 있어서 좋다’ ‘아니다 싫다’ ‘질질 싸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어느 학교 애다’ ‘그 학교 다니는데 찾아봐야겠다’ 그 외에도 수천 개가 있지만 전부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은 이런 댓글을 달 수 있었던 겁니까? 누구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왜 그 애를 죽이고 내 일상을 파괴하도록 방관했습니까?

오늘 이 자리는 디지털성폭력 피해자들의 추모제라고 알고 왔습니다. 어차피 늘 숱하게 일어나는 일,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새삼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애의 이름을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오늘 XX이에게, 지금까지 너의 죽음을 어느 정도 회피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XX이의 명복을 빌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너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이들이 죗값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 이상으로 싸울 것임을 약속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석영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