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인터뷰] 학생들 얘기하다 ‘울컥’한 전교조 위원장 “학교가 많이 아픕니다”

1시간 30분여의 인터뷰가 끝났다. 전날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마치고 새벽에 숙소로 들어간 그를 출근하자마자 인터뷰했다. 사진 촬영도 끝나고 노트북도 닫고나서 내내 궁금했던 걸 툭 물었다.

“학교에선 어떤 선생님이셨어요?”

뻔한 질문인가 싶었는데 그는 눈빛과 표정이 달라졌다. 조금 피곤해하던 얼굴에 웃음기가 번졌다.

“애들이 수업시간엔 별로 열심히 안 했어요. 그래도 나 좋아했어요”

인기가 많았냐는 말에 신이 나서 털어놨다.

“학교 가면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을 순회하는 애들 있어요. 어떤 애들인지 압니까? 외로운 애들. 아무도 끼워주지 않으니까 괜히 와서 선생님 집적거려요. 그래서 제 책상 제일 큰 서랍엔 항상 사탕 채워져 있습니다. 애들 오면 하나씩 주는 거야. 애들이 너무 많이 와 떠드니까 옆자리 선생님들이 일을 못한다고 했어요. 하하하”

신이 나서 학교 이야기를 풀어놓던 52세 아저씨의 눈이 느닷없이 새빨개지더니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하이고 학교 얘기하니 갑자기 눈물나네”

지부장 돼 학교 떠난 지 6년, 법외노조 통보로 해직교사 생활 3년째
그리운 학교와 학생들 뒤로 하고 전교조 위원장 된 ‘권정오 선생님’

권정오 신임 전교조 위원장. 2013년 울산지부장이 돼 학교를 떠난 뒤 박근혜 정부의 ‘노조 아님’ 통보로 2016년 해직돼 3년째 해직교사로 남아 있다. 그는 돌아가고 싶은 학교를 뒤로 하고 정이 안 간다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 앞엔 지금 전교조 변화와 교육혁신이라는 막중한 책임이 놓여있다. 그래도 그에겐 ‘권정오 선생님’이 가장 어울리는 호칭일 듯 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1월 1일부로 2년 임기를 시작한 전교조 권정오 집행부는 여러모로 교육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6년간의 집행부를 담당한 이들과 결이 다른 점도 그렇고, 3팀이 나선 경선에서 조직력의 열세를 뒤집고 1차에 과반 득표로 당선됐다는 점도 그렇다. 집행부 임기 첫 해인 올해는 창립 30주년이어서 전교조의 행보에 더욱 각별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권정오 위원장을 29일 아침 전교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권 위원장은 여러 차례 학교 공동체가 파괴되고 교사가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묻지마 살인’, ‘흉악한 폭행’ 등 사건 굉장히 많지 않은가. 그런 모습이 학교에 그대로 있다”며 “학교 공동체는 파괴되고,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주체 간의 갈등이 폭발 직전이 됐다”고 진단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권 위원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의 이른바 ‘5·31 교육개혁’을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적했다. 신자유주의 교육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오랜 기간 국가권력과 교육관료에 의해 권위주의적으로 ‘통치’되던 학교는 1980년대 전교협과 전교조로 이어지는 교사들의 참교육운동에 힘입어 점차 민주화됐다. 그러나 1995년 ‘5·31 교육개혁’으로 인해 교육이 서비스 제공자(교사)와 소비자(학생, 학부모) 간의 계약과 거래라는 개념으로 뒤틀렸다.

“교육에 경쟁논리를 전면 도입하고 국가의 책임을 최소화한 것이 5·31조치의 핵심이었어요. 그래서 이후 경쟁을 강화하는 쪽으로 일제고사도 도입됐죠. 협력과 공동체 대신 경쟁과 배제의 논리가 20년 넘게 학교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체벌과 뇌물 사라진 학교에 들어선 경쟁과 배제의 논리
공동체 파괴돼 구성원들 상처받고 있다

1989년 전교조 결성 이후 학교에서 체벌과 촌지(뇌물)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와 비리는 크게 줄었다. 그러나 어느새 교사와 학생 또는 학생간의 공동체는 무너졌다. 당연히 학생들도 ‘학교 공동체 파괴’의 피해자가 됐다.

“안타까운 게 몇몇 학생들은 자기 진로가 분명하죠. ‘스카이 캐슬’ 나오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도 부모에 의해서 강제된 선택이죠. 그런데 나머지 99% 학생들은 방치돼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몰라요. 이걸 찾아주는 게 교육인데 그러려면 학생과 교사 숨 쉴 여유가 있어야 하고, 형식·절차 구애 받지 않고 해보는 과정 필요한 거죠. 그런데 그걸 다 막아놓았어요.”

권 위원장은 만나는 기자들마다 하도 물어봐서 ‘스카이 캐슬’을 3편까지 봤다고 말했다. 그가 전하는 학교의 현실이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한 장면과 겹쳤다.

스카이캐슬의 주인공 이수임(이태란)은 중학생 제자 송연두의 죽음을 잊지 못한다. 이수임은 수업 도중, 책상에 엎드려 있던 연두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연두의 팔에서는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런 연두를 담임선생님도, 부모님도 방치한다. 연두의 위험한 시그널을 알아차리고 손을 내민 건 이수임이었다. 하지만, 연두는 이수임을 만나러 길가로 뛰어들다 트럭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다. 연두의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에는 생전 수임에게 보냈던 마지막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선생님, 도와주세요. 저 살고 싶어요” 카메라는 연두의 손목도 함께 보여준다. 빨간 줄이 여러 줄 그어진 작은 손목을.

어쩌면 ‘스카이 캐슬’은 드라마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 했다. 권 위원장은 “예를 들어 학생이 수업시간에 잔다. 자는 것을 방치하면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깨우면 욕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면서 “과거에는 1년에 한두 건 일어날 일이 지금은 일상다반사다”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할지 모른 척 놔둬야 할지 교사들은 수시로 괴로운 고민에 빠진다.

또 “학부모들이 마음에 안 드는 담임을 바꿔달라고 학교에 요구하는 곳도 있다”면서 “교사들이 이런 점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눈치 보게 된다”고 전했다. 특히 학교폭력의 경우 과거와 달리 교사가 사실상 수사관 역할을 하고, 학교폭력위원회가 판결을 내리게 되면서 업무와 스트레스가 폭증하는 원인이 됐다. 정신과 치료나 심리상담을 받거나 명예퇴직을 하는 교사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라는 설명이다. 실제 최근 광주시·전북도·강원도교육청에 교원치유지원센터 등이 설립됐다. 교사들로서는 자기보호를 위해 학생들을 소극적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럼에도 갈수록 학교의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이에 따라 교사의 수업 외 업무 하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권 위원장은 지적했다. 그는 “예전엔 교사가 수업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급식, 방과후학습에 심지어 비만 관리까지 한다”면서 “초등돌봄 등 대통령선거 한번 할 때마다 학교에 일을 새로 떠맡겨놓고, 비정규직을 늘려 일을 시키고 그 관리는 교사에게 맡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실태는 학교 밖의 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교사 개인의 범죄나 일탈이 크게 보도되면 교사 전부가 매도된다. 그러면서 교사들의 교육권 보호 요구가 ‘배부른 소리’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지난해 선거 과정에서 조직력이 열세이던 권정오 위원장이 예상 외로 큰 지지를 모으며 당선된 것도 일선 교사들의 교육권 보호 열망이 모여서라는 분석이 많다.

“조합원들은 아우성치는데 전교조는 관심 가지지 못했다
SNS 소통 강화하고 조합원 총투표도 활용할 것”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교원단체인 전교조는 얼마나 역할을 했을까. 권 위원장은 전교조가 합법화 이후 몸집이 커졌는데 과거의 조직문화에 안주했다고 털어놨다.

“1999년에 전교조 합법화가 이뤄질 당시 9천명이던 조합원이 2003년에 9만3천명이 됩니다. 10년 간 10배로 늘어난 거죠. 소수 활동가 중심에서 대중조직으로 변한 겁니다. 그런데 활동방식은 변하지 않았어요. 활동가들이 의제 설정하고 계획 수립한 뒤 조합원에게 따라오라고 한 거죠. 처음에는 맞는 말이니까 따라오다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이제는 쳐다보지 않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조합원과 현장의 어려움을 사고의 출발로 삼는, 180도 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희망’을 함께 말했다.

“조합원들이 아프다고 아우성 치고 있었는데 전교조는 법외노조 투쟁에 ‘올인’하고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우리 삶에, 일상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이번 선거로 폭발했습니다. 위기의식도 느끼지만, 조합에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일면 긍정적으로 봅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29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주목하라 교사의 일상에’. 권 위원장이 선거에 들고 나온 ‘딥체인지’ 구호의 첫 대목이다. 전교조 내부소통 활성화가 첫번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전교조는 ‘1만여곳 학교에 6만명 조합원’이라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그간 내부소통에 무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교조의 페이스북, 유튜브, 홈페이지를 가보면 학교 현장과 관련된 내용은 거의 없다시피하고 조합원들의 참여도 찾아보기 힘들다.

전교조는 최근 집행부에 SNS소통실을 새로 만들었다. 또한 권 위원장은 자신의 발의로 지난해 대의원대회에서 신설된 온라인 총투표 방식의 조합원총회도 적극 활용하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각종 제약으로 사실상 ‘깜깜이 선거’를 만든 선거규칙도 대폭 개정해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선거를 만들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내부소통 방안은 더 마련해야 된다면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조합원의 감소와 함께 ‘고령화’는 전교조의 깊은 고민이다. 새로 교육현장에 나오는 교사들에게 전교조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인데, 이런 현상이 계속될 경우 전교조의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권 위원장은 전교조 밖의 여러 단체와 협력해 교사들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SNS 사업을 활성화 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또 지부별로 교육권지원센터를 설립하는 것도, 특히 젊은 교사들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전교조 30주년 문재인 대통령 축하 메시지 받고 싶다
법외노조 문제 해결, 정부 로드맵부터 제시해야”

올해 5월 28일로 전교조는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노태우 정권은 불법단체로 몰아 대규모 해직을 비롯한 탄압을 했고,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비로소 전교조 합법성을 인정했다. 그리고 다시 2013년 박근혜 정권 시절 법외노조로 밀려났다. 권 위원장은 “노태우 군사독재 시절 비합법노조로 탄압받으며 전교조를 결성할 때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30주년까지 법외노조 상태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면서 “2월 임시국회에 관련 법 개정안을 내놓겠다는 약속 외에, 법 통과가 어려운 현실에 맞게 ‘시행령 개정’ 등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30주년 잔치가 규탄대회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문 대통령의 축하메시지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권정오 위원장과 김현진 수석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0일 청와대 앞 농성 정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법외노조 즉각 취소와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 즉각 폐기, 해직교사들의 원상복직을 촉구하며 교원ㆍ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한 새로운 투쟁을 선포했다.
권정오 위원장과 김현진 수석부위원장이 지난해 12월 10일 청와대 앞 농성 정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법외노조 즉각 취소와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 즉각 폐기, 해직교사들의 원상복직을 촉구하며 교원ㆍ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을 위한 새로운 투쟁을 선포했다.ⓒ김철수 기자

권 위원장은 그간의 투쟁방식을 전면 혁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소수 활동가 중심의 투쟁으로는 힘을 갖지 못한다”며 “활동방식도 조합원 의사를 물어 다수가 함께 하는 전교조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에 이어 빠르게 진척될 한반도 평화, 남북화해 정세를 전교조가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4·27판문점선언 1주년 등 계기에 통일수업을 적극 실시하고 남북 교사 교류와 함께 하반기 북한 견학단 파견 등도 구상하고 있다. 권 위원장은 이를 위해 2월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 민간단체 새해맞이행사에서 북의 직총과 만나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세대라 일컫는 30년 동안 전교조는 권 위원장 말처럼, 대한민국 교육의 역사를 바꿨다. 권위주의 타파, 비리 척결, 무상교육, 혁신교육 등이 전교조에서 잉태됐고 ‘진보교육감 절대다수’ 시대를 열었다. 법외노조의 족쇄가 남아있지만 전교조는 새로운 30년의 전망을 내놓을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어쩌면 전교조의 꿈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학생들이 어리다고 해도 다 알아요. 교사들이 진정성을 갖고 다가가면 정을 줍니다. 저는 학교에 있을 때 나이도 있고, 전교조도 해서 교장 눈치 안 보고 애들이랑 하고 싶은 거 많이 했어요. 학교가 그래야 하는데...”

임기를 마친 뒤 ‘권정오쌤’은 학교로 돌아가 눈물 나도록 그리운 아이들과 사탕을 나눠먹으며 신나는 작당모의를 다시 할 수 있을까. 학교가 학생들과 교사들의 웃음이 넘치는 곳이 될 수 있을까.

고희철·장재란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