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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자신만만하고 진심 어린 재즈 만화, 블루 자이언트

‘블루 자이언트(Blue Giant)’는 재즈만화다. 하지만 블루 자이언트는 재즈의 역사를 설명하지 않는다. 유명 재즈 뮤지션의 삶을 소개하지도 않는다. 이 작품은 세 명의 10대 재즈 뮤지션 지망생이 일본에서 재즈 뮤지션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극화이다. 각 권마다 에필로그처럼 담은 이야기는 주인공의 성공을 미리 알려주지만 그렇다고 김이 새지는 않는다. 이 작품에는 10대 테너 색소폰, 재즈 피아노, 재즈 드럼 연주자가 재즈를 배우고 연주하는 이야기가 있고, 재즈의 생태계인 재즈 동호회, 재즈 클럽, 페스티벌 이야기가 있다. 음반사 이야기가 있다. 재즈 팬들과 기획자 이야기도 있다. 나름대로 성공한 뮤지션 이야기가 있고,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뮤지션 이야기가 있으며,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작품은 현재의 재즈를 구성하는 생태계를 비교적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생태계 속 사람들이 어떻게 꿈꾸고 좌절하며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블루 자이언트 1권
블루 자이언트 1권ⓒ대원씨아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구체적인 묘사와 함께 그들 모두의 진심을 고루 보여주는 점이다. 누군가는 잘난 체 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며, 꼼수를 부리기도 하지만 결국 머리를 숙이고 서로를 진심으로 대한다. 주인공이 있고, 스쳐가듯 나오는 인물들이 있지만 누구의 삶도 함부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음악과 삶이 다르지 않고, 음악과 삶 앞에서는 모두 진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끈질기게 하는 작품이다. 음악과 함께 깊어지는 삶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블루 자이언트는 자신만만하다. 주인공 미야모토 다이만이 아니다. 그와 함께 트리오 ‘Jass’를 결성하는 재즈 피아니스트 사와베 유키노리와 드러머 타마다 준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극중 주인공들이 모두 10대라 세상 무서운 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작품 속에서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재즈의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들 중 누구도 스타가 아니고, 누구도 쉽게 음악을 하지 않는다. 홀로 도쿄에 온 주인공 미야모토 다이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곧장 공사장에 가서 다시 일을 한다. 있는 집 자식 같은 유키노리마저 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타마다는 뒤늦게 재즈에 꽂혀 대학 수업을 팽개치고 발버둥 치듯 드럼을 친다.

블루 자이언트 3권
블루 자이언트 3권ⓒ대원씨아이

이렇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만만하고 열정적인 세 주인공의 모습은 강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장치일 수 있다. 특히 잠시도 멈추지 않고 시종일관 돌진하는 미야모토 다이의 모습은 수많은 만화 속 무모한 천재들의 모습과 닮았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조금만 노력해도 금세 성공하는 천재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다이는 확실히 남다른 재능이 있다. 냉정하고 자신만만한 유키노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10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원숙한 왼손 플레이를 들려준다. 심지어 뒤늦게 드럼을 시작한 타마다 역시 금세 제 역할을 해낸다.

하지만 블루 자이언트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가 매순간 다른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며 쉽게 성공하는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는다. 미야모토 다이는 아직 데뷔하지도 못한 채, 세계 최고의 재즈 연주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수도 없이 곱씹는다. 그리고 자신이 항상 최고의 연주를 하고 있다고 믿으며 돌진한다. 정신승리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이는 대학을 포기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한다. 그야말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색소폰을 분다. 연습실도 없어 폭염과 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강둑과 다리 아래에서 색소폰을 분다. 그리고 다이는 테너 색소폰을 더 잘 연주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재즈 클럽을 돌며 다른 연주자들의 공연을 본다. 그저 재즈가 좋아서이고, 세계 최고의 재즈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이다.

다이의 성격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진심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작가는 재즈를 잘 하기 위해서는 이론도 알고, 연습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진심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심은 오직 음악만을 위한 노력이다. 돈을 벌거나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한 순수하고 치열한 노력을 다할 때 소리가 달라지고 좋은 음악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곡이나 즉흥연주에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다이가 그 이야기를 대신하는 주인공이다. 직선적이고 솔직한 다이는 눈치도 없고 요령도 없다. 대신 재즈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활활 타오른다. 재즈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재즈가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오직 음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다 쏟아 붓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바뀌지 말아야 할 예술가의 원형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처럼 열정적인 주인공의 모습은 수많은 컨텐츠들이 유혹하는 현실임에도 그 무엇도 재즈의 매력을 대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재즈연주자들이 내는 소리의 질감, 함께 만드는 앙상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달하는 즉흥연주의 아름다움은 눈부시고 아득하다. 그래서 극중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재즈의 궁극적 아름다움 앞에서 좌절하면서도 다시 듣고 연습하고 연주하며 서로 돕는다.

블루 자이언트 8권
블루 자이언트 8권ⓒ대원씨아이

인쇄 만화이다 보니 별도의 OST가 없고, 읽으면서 음악을 들을 수도 없다. 하지만 클로즈업과 선을 활용한 극화 방식은 재즈의 스윙과 무아지경 같은 즉흥연주를 눈으로 빠져들어 듣게 만든다. 아무런 대사도 없이 그림만으로 연결하는 컷들임에도 라이브 콘서트장에 온 듯 음악의 힘과 연주자의 노력을 박진감 있게 전달하는 연출이 압도적이다. 스케일, 애드리브, 코드, 프레이즈 등의 음악 용어와 재즈 거장들의 이름, 제목으로 쓴 수많은 명곡들도 반갑다. 가끔 불편한 장면들이 껴 있지만 작품의 미덕과 장점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노다메 칸타빌레’와 ‘피아노의 숲’을 읽고 감동받았던 음악팬들이라면 놓칠 이유가 없는 작품, 읽다보면 재즈를 듣고 싶어지고, 더 뜨겁게 살고 싶어지게 하는 작품 1부 10권이 끝났다. 새 음반 같은 2부가 빨리 이어지기를.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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