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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행복한 나라’ 스웨덴에서 ‘미투’가 일어나자 벌어진 일들
수잔나 딜버
수잔나 딜버ⓒ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국제연합(UN)이 OECD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하는 ‘행복지수’에 따르면 스웨덴은 매년 상위 10위 안에 드는 등 우리에겐 ‘행복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곳이다. 스웨덴은 행복지수 조사에서 2015~2017년 단기 평균 9위를 차지했고 2005~2017년 장기 평균 순위에서도 8위를 기록했다. 480일 유급 육아 휴직을 보장받은 뒤 회사로 돌아오더라도 법률적으로 공평한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한국에선 남녀 급여 차이도 큰 편이지만 스웨덴은 그렇지 않다. 또 직장, 집안, 일상 등에서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남녀평등 문제는 법률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처럼 행복한 국가, 전 세계 성평등지수 상위권 국가로 알려진 스웨덴에서도 ‘미투’가 일어났다. 스웨덴 미투 운동을 이끈 수잔나 딜버 스웨덴공연예술부문 배우연맹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문해 ‘미투’로 용기 있는 폭로와 지지선언을 했던 한국의 공연예술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성폭력’과 이에 대항하는 ‘미투’ 운동이 벌어질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스웨덴에서 벌어진 성폭력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수잔나 딜버에 따르면 스웨덴 미투 운동이 시작된 것은 2017년 ‘펄프 픽션’, ‘굿 윌 헌팅’, ‘나의 왼발’ 등을 제작한 미국의 헐리웃 영화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이 공개된 후 미투 해시태그가 번져나갈 무렵이었다. 스웨덴 여배우들은 페이스북 비밀 그룹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피해 상황을 공유하며 똘똘 뭉쳤고 해당 여배우들 수는 약 5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러한 운동은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이름도 익명인 채로 진행됐다. 이들은 피해자들을 지킬 수 있는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스웨덴 언론과 기사를 작성했다. 피해자 개인의 가해자 개인을 상대로 한 싸움이 아니라, 500여 명의 사람이 동시에 한 목소리를 내며 움직이자 사회적 반향은 컸다. 수십여 개 여성단체의 행동을 이끌어 냈으며 ‘명시적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파타(fatta)법이 지난해 7월 1일 발효되도록 만들었다.

2019년 2월은 한국 공연계에 ‘미투’가 일어난 지 1년이 되는 달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스웨덴 미투 운동은 한국 미투 운동에도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다. 1년 전 자신들의 작업 환경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지만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도와줄 자발적 연대체나 보호 규약이 없어 분노의 눈물만 흘려야 했던 공연예술인들은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과 같은 연대체를 만들어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 또 성폭력 위계 구조가 발생한 배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모색하고 다음 과제를 진척시키기 위한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모임 활동가들
국제개발협력 미투운동모임 활동가들ⓒ김철수 기자

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다음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조건은 성범죄를 발생하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를 분석하는 일이다. 각 직종과 일상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단순히 특정한 사람의 범죄 행위를 넘어서서 잘못된 사회 구조 속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윤택과 오태석이 특수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성범죄는 법, 체육, 무용, 직장, 공공기관, 휴양지 등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폭력, 물리적 폭력, 성폭력이 발생할 기반을 만들어 주는 사회적 구조는 무엇인가. 폭력은 견고한 위계질서가 자리 잡은 구조 속에서 발생한다. ‘나보다 낮은 계급’, ‘나보다 약자’라는 수직 구조가 자리 잡았을 때 폭력은 매우 쉽고 자연스럽게 이빨을 드러낸다.

수잔나 딜버 역시 가부장제 등 위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인식의 변화를 강조했다. 최근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함께 제작한 책 ‘불편한 연극’에도 위계 속에서 자행된 폭력 사례들이 공개돼 있다. 공연계에서 발생한 사례지만 전혀 다른 직종의 사람들도 피해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구조 속 위계’를 짚어냈기 때문이다. 미투는 성별의 싸움이 아니라 구조와의 싸움이다. 성평등한 사회 구조가 만들어졌을 때 남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를 분석하고 바꾸는 작업과 병행해야 할 일이 또 있다. 바로 피해자들과의 연대다. 지난해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양의 성폭력 피해 사례들이 쏟아져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들과 연대했다. 그리고 일부 범죄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공연계의 경우 지난해 9월 이윤택이 징역 6년을 선고받았고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이명행은 지난 2월 1일 1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그동안 법의 판결은 피해자의 특정 상황을 이해하는 것보다 가해자 중심, 가해자 입장의 판단이 많았기 때문에 앞선 두 사람의 판결 소식은 반갑다. 하지만 판결 내용과 별개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보통 대중들의 관심이 유명 인사의 성범죄에만 쏠린다는 점이다. 유명인사뿐만 아니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가해자들도 정말 많다. 이름 없는 가해자들에 대한 모니터링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름 없는 피해자들과 연대도 지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연대가 이름없는 피해자들에게 자신이 당한 부당함을 고발하며 함께 싸울 힘을 얻게 한다. 연대를 통해 힘을 얻고, 스웨덴 미투 운동처럼 500명이 동시에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우리 사회도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신여자대학교 정문에서 성신여대 사학과 대책위원회 회원들을 비롯한 재학생들이 집회를 열고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성신여대 교수의 파면과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성신여자대학교 정문에서 성신여대 사학과 대책위원회 회원들을 비롯한 재학생들이 집회를 열고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성신여대 교수의 파면과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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